그러다 오월이 오면 고모의기일 즈음 묘 앞에 놓인 노랗게 마른 꽃잎이나 빈 통조림 캔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나는 아무도 보지 못하게 그것을 치울 것이다. 그리고 치자가 묻혀 있는 그 자리를 말없이 꾹꾹밟을 것이다. 아마도 잠시나마 우리가 우리였던 날들을 떠올리면서. - P114

전에 지원과 여행 올 때마다 자주 오래 머물렀던 마을이었다. 그때와 달리 마을의 전체적인 균형이 어딘가 흐트러졌다고 느낀 건 육지에서 복사해와 붙여넣기를 한 것 같은건물들이 늘어난 탓일까. 현우와 지원도 그런 것들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 P134

지원은 텅 빈 무덤 안을 떠올리다 도배를 반쯤 하다 말고놔둔 작은방을 떠올렸다. 아직 죽지 않은 누군가를 위해 무덤 자리를 마련해 두는 것과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기방을마련해 두는 것. 어떤 차이가 있을까. - P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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