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는 마음으로 여행지를 걷다 보니 애초 이곳에 온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내 마음의 개화가 이제 비로소 시작된 것 같다.

용화사 주변을 산책하는 방법은 두 가지. 하나는 산길을 걷다가 용화사에 들러 하산하는것이고, 하나는 용화사에 먼저 들렀다가 산길을 오르는 것인데 소요 시간은 두 편 다 비슷하다.
미륵산까지 올라가서 편백나무 숲길을 걷는 코스를 추가하면 한 시간 정도 더 걸린다. 미륵산까지 오르는 길목을 택하면 통영 앞바다가 훤히 내보이는 ‘꿀 뷰‘가 선물로 주어진다. 나는 주로 산길로 진입해 동백나무를 끼고 걷다가 용화사 대웅전에 잠시 앉았다 오는 코스를 취한다.

귀를 열어 본다. 매미 소리, 새 소리,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잠시 눈을 감는다.

아이는 초등학생 때부터 피아노를 좋아했고, 중학교 다니는 내내 피아노를 치더니, 고등학교에입학하자 피아노를 전공하겠다고 선언했다. 음대 입시가 쉽지 않아 만류하고 싶었다.

아이의 쉼표까지 헤아려 주었으면 아이는 뒤에 남겨 둔 이야기까지 내게들려줬을 텐데, 그때는 그걸 해 주지 못했다. 그때 내게 하지 못한 이야기를 나는 아이가 들려주는 피아노 연주로 느끼며,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

윤이상은 음악으로 남과 북을 연결시킨 예술가다. 음악 때문에 그리워하던 고국에 오지못했고, 감옥까지 갔다. 그래서 윤이상기념관 바로 옆에, 윤이상이 생전 베를린에서 살던 집을재현해 놓은 이 집에 들어오니 마음이 무겁다. 독일에서 금의환향해 이곳 통영에서 오래 음악생활을 하고, 당신 손으로 윤이상 음악제를 만들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오래 남아 있는 것을 보면 겸허해진다. 수백 년 전 솜씨 좋은 목수가 나무 깎아 만들었을세병관 마루에 앉아 그 너머 산과 바다와 집들을 바라보니 호사가 따로 없다.

피부에 닿는 나무 감촉이 거슬리지 않고 온습도가 적당하고 시원하다. 기대거나 엎드려 책을 읽거나 담소를 나누거나 마루를 누리는 방식은 다양하지만 다들 나처럼 이곳을 떠나고 싶지 않은가 보다. 여기 앉아 있으니 굳이 뭘 보태지 않아도 될만큼 느긋해진다. 멍하니 있는 게 가능한 곳이다.

그렇게 극적으로 인터뷰를 하고 서울로 가는 막차에 오르니 잠이 쏟아졌다.
잠이 스르륵 들면서 이날을 잊지 못하겠다 싶었는데 지금도 떠오르는 걸 보니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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