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에게 악의는 없었다. 좋은 사람이 되어갈수록 화영은 없는 사람에 가까워져갔다. - P24
석현은 야구나 농구를 제대로 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군대에 가본 적도 당연히 없었다. 총을 쥘 한쪽 손이 없었으니까. 남성성을 자랑하는 남성에 대해서라면 질색을 했다. 이차성징이 시작되기도 전부터 여자아이들이 어떤 위험에 처하는지, 매일매일 어떤 유리 천장에 부딪히며 살아가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척을 하는 숱한 남자들과 달랐다. 석현은 알았다. 행인이 몸을 훑어본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를. 세세하게 배려받는 것 같지만 치밀하게 소외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 P29
전체적인 분위기까지 파악해야 실수를 줄일 수 있었다. 칼로 자른 듯 파악할 수 있는 상황은 드물었다. 애매한기쁨과 애매한 뿌듯함, 애매한 조롱과 애매한 비아냥 애매함이 표현의 핵심일 때가 대부분이었다. - P39
이후로 버스 사장 안의 눈동자들은 필요하게 식인을 따라다났다. 어딜 가든 없었다. 석원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식인을지나가는 눈동자들 - P45
"왜 사람을 쳐요." 울먹임이 뒤섞인 목소리였다. 직원과 석현이 놀란 표정으로화영을 쳐다보았다. 화영도 자신에게 놀랐다. - P47
석현은 사람이 많은 대로변으로만 걷게 됐다. 성곽이나 골목 같은, 인적이 드문 길은 피했다. 트램 앞좌석에 앉은 승객이 석현의 몸을 훑어보았다. 석현은 불쾌했다. - P59
"시끄러워." 석현이 말했다. 화영은 석현을 보았다. 언제든 시끄럽다고말해달라고, 조용한 곳을 찾아 백 번이라도 이동해주겠다던석현의 약속이 떠올랐다. 그때 화영은 석현과 함께 한국으로돌아가기로 마음먹었다. - P61
무엇을 기대했던 걸까. 어째서 석현은 다르다고 여겨왔을까. 어째서 자신은 다를 수 있다고 여겨왔을까. 손 하나가 없는 사람과 귀 한쪽이 안 들리는 사람의 사랑은 다른 사람들과다를 거라고, 마땅히 그럴 거라고 여겼던 걸까. 석현을 사랑하게 된 것도 귀 때문일까. 한쪽 귀가 잘 들렸다면 어땠을까. 그래도 석현을 사랑하게 되었을까. - P7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