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술인은 나를 보고는 ‘제발 자신을 보러 와달라고치는 보석 광산과도 같은 사주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듣는동안에도 나는 내 인스타그램에 벚꽃 사진을 올리고 있었다. 사람들이 나를 좀 봐줬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서…………. - P10
어쩌면, 내게 있어 여행은 ‘휴식‘의 동의어나 유의어가아니라, 일상의 시름을 잊게 해주는 또 다른 자극이나 더큰 고통에 가까운 행위가 아닐까? 환부를 꿰뚫어 통증을잊게 하는 침구술처럼 일상 한중간을 꿰뚫어, 지리멸렬한일상도 실은 살 만한 것이라는 걸 체감하게 하는 과정일수도 써놓고 보니 (피학의 민족 한국인답게 몹시) 변태적인 발상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이 또한 나에게 가까운 진실인 것만 같다. - P15
"니 내랑 여름방학 때 배낭여행 안 갈래?" "어디?" "유럽." - P22
"우리 암스테르담에서는 호텔에서 잘래? 이카다가 니잠 못 자서 맹장염이 아니라 수면 부족으로 세상 하직하지싶다." - P31
‘우리 상황 듣더니 ‘한국 문학의 큰 별이 두 개나 지겠네‘라고 했어" - P47
성인으로서의 삶, 서울살이는 매일이 생존이고 투쟁이었다. 나는 매일 어떡하면 더 싸게 끼니를 때울 수 있을지고민했으며, 마을버스 막차를 놓치지 않기 위해 사력을 다해 달렸다. 행여 마을버스를 놓치면 역에서 30분도 넘게 산길을 걸어 산꼭대기 종점 옆에 있는 내 집, 내 방으로 향해야 했으니까. - P77
우리 사이에 잠시 침묵이 감돌았다. 떼돈을 버는 것도 아니고, 그저 글을 써서 돈을 벌 수만 있으면 되는 삶. 그것이 스무 살의 내가 간절히 꿈꾸던 삶이었다. - P95
내가 요리를 하는 사이 송지현과 초고 멤버들은 나를위해 준비했다던 위스키를 꺼내 머그잔에 따라 마시기 시작했다. 위스키의 이름은 ‘Writers‘ Tears‘였다. 나의 첫 책《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에서 영감을 받아 골라 온 술이라고 했다. 완성된 파스타를 대접에쏟아 식탁에 올려두자 세 명의 굶주린 여성들이 접시에 달려들었다. 그들은 순식간에 파스타를 먹어치운 뒤, 정말 맛있다며 감탄했다(텅 빈 그릇을 보며, 나는 새로운 파스타 레시피를 개발해냈음에 뿌듯함을 느꼈다). 나는 냉장고에서 김치와멸치볶음, 김을 꺼내 와 그들의 옆에 앉아 밥을 먹기 시작했다. - P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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