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도 앞집 주인을 봤지만 역시 뒷모습뿐이었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나도 골프 가방을 끌고 다니는 키 큰 여인을복도 끝에서나 멀리서 몇 번 본 기억이 났다. 어쨌거나 우리처럼 집에만 있는 분은 아니었다. - P39
상추와 오이, 고추 같은 것들이 꽉 차게 들어 있는 비닐봉지 위에는 매직으로 쓴 숫자 네 자리와 한글 한 자뿐이었다. 비닐봉지는 우리 층 각 세대의 문고리마다 선물처럼 달려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1006호인 앞집 주인을 만날 기회는 없었다. - P41
우리가 이사온 뒤 빈집처럼 조용했던 두 달 동안 앞집은 남편을 보내고 있었다. 둘이 살려고 장만한 집에서 혼자살아 내는 시간이 얼마나 고독했을까. 그나마 골프를 함께할 수 있는 친구들이 있는 것 같아 다행이다 싶었다. 나름대로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야 했을 테니까. - P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