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흔히 더러운 것들을 눈앞에서 치워버린다. 땅속으로 감춰진 채우리 발밑에서 계속 흐르는 이 더러운 물들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내보낸 배설물도 거기 섞여 있다. 그런데 맨홀을 열다 보면 희한하게 ‘향기‘가 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분명 더러운 물인데, 세제와 샴푸 향이악취마저 감추고 있는 건지. 이럴 때면 참 웃기다. 눈앞에서 사라진 폐기물이 이제는 냄새까지 잃어가고 있다. 오늘도 나는 악취인지 향기인지 모를 냄새를 맡으며 하수도를 점검했다. - P89

그런데 오늘처럼 비가 많이 내리고 난 다음 날은 감추어졌던 많은것들이 드러난다. 비 내리는 일은 인간의 의지로 어떻게 할 수 없다. 그럴 때면 하수 맨홀에서는 악취가 진동한다.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다.
마치 비가 가려진 눈과 막혔던 코를 뚫은 것처럼, 그때까지 보이지 않았던 더러움이 불쑥 고개를 들이민다. 숱한 하수와 오수가 "나 여기 있다"고 외치는 것 같다. 나도 그때 비로소 도시의 문제, 삶의 모순 등을생각하게 됐다. 눈과 코를 씻고 하수 맨홀을 다시 본다. 그건 분명 내가배출한 것들이 맞다. - P90

우유 배달은 7개월만에 그만뒀다. 매주 월·수·금 눈이 오나 비가오나 아파트 단지를 돌았는데, 모두가 잠든 시간 홀로 나와 일하는 게쉽지만은 않았다. 불 꺼진 아파트 복도가 무섭게 느껴지는 날도 있었고, 배달을 다 마치고 보니 우유가 한 개 남아서 처음부터 일일이 다시확인한 적도 있었다. 새벽 3시에 경음기를 울리며 차를 빼달라는 사람때문에 15층에서 소리 내지 않고 뛰어 내려간 적도 있었다. 몸이 힘든것보다 마음이 조마조마한 일이 더 많았다. - P93

나는 대학 졸업 후 10년 동안 단 한 번도 정직원으로 일하지 못했다. 계약직이라도 꾸준히 일하다 보면 경력이 되고 10년 뒤면 뭐라도되어 있을 줄 알았다. 억척같이 돈이라도 모아놨으면 이렇게 좌절했을까. 이제 와 후회해봐야 소용이 없다. 오늘도 모집자는 1명인데 지원자는 414명인 입사지원 페이지를 열고 기업의 열람일을 확인한다. 영원히 미열람으로 남을 것만 같다. - P100

. 그땐 호의라는게 더는 남아 있지 않았고, 결국 국가기관에 신고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말았어요. 그 말을 할 때 너무 화가 났는데, 그러자마자 처음 계약했던 전체 금액이 들어오더라고요. 그래도 메인 피디님이 법은 무섭다고 느껴서 다행이었지 뭐예요. - P104

"앗, 뜨거!" 급히 인스턴트커피를 마시다가 입천장을 데는 바람에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새벽 6시 가장 분주한 시간이 끝난 뒤 잠시 숨통을 볼 수 있는 시간이다. 화장실 청소도구함에 숨겨놓은 보물상자를 찾듯이 믹스커피를 꺼내 커피 한잔의 여유를 즐기던 참이었다. - P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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