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도의 차이는 있으나색상과 순도純度가 없는, 있지만 없고 없지만 있는, 비존재存在있고 없음 사이에서 존재하는,
이 글은 순전히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고 너무너무 보고 싶어서 썼던 글이다. 처음 김민정 시인을 만났던 날 그는 물끄러미 내얼굴을 들여다보더니 갑자기 "명재씨는 무채색으로 글을 써보면좋겠어요"라고 했다. 그때 사실 속으로 많이 놀랐다. 나는 비구니들이 업어서 키운 아이였으니까. 매일매일 회색빛 승복을 보면서 내 무릎은 팝콘처럼 부풀었으니까. 그때부터였다. 그 말이귀한 씨앗이 되어 무채, 라는 말이 내 안에서 뿌리를 뻗었다. 결국 무채로 쓰다보니, 글이 아니라 사랑의 곳간만 열려버렸다. - P13
느껴져서 쥐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오랫동안 사랑받았다. 언젠가는 이 사랑도 비울 것이다. 그때까진 용감하게 사랑을 줘야지. 그럼 지금부터 이야기를 해볼까. 색을 열고 색을 삼키고 색을 쥔채로 나를 키운 사람들의 마음 이야기. - P15
사랑은 화려한 광휘가 아니라 일상의 빼곡한 쌀알 위에 있다. 늘어난 속옷처럼 얼핏 보면 남루하지만 다시 보면 우아한 우리의 부피. 매일 산책하는 강변의 기나긴 길과 일렁대는 강물과 버드나무 줄기들. 이 글을 쓰는 동안 나는 그런 아름다운 걸 ‘무채‘ 라고 퉁쳐서 불러보았다. 배앓이를 하듯 자꾸 보고 싶을 때 무채무채 말하다보면 좀 나아졌다 - P14
나는 절에 들러서 오만 원을 불전함에 넣었다. 며칠 뒤 동짓날 저녁 도서관에서 책을 읽다가 신춘문예 당선 전화를 받았다. - P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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