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시로 출장을 떠나기 전날 밤 설은 뜻밖의 소식을 들었다. 10월 중순이었고 갑자기 기온이 떨어졌다는 느낌이드는 저녁녘이었다. 문자메시지를 받았을 때 설은 소형캐리어에 필요한 물건을 집어넣고 있었다. 발신인은 자신이 주영의 간병인이라고 밝혔다. 한주영씨가 한번 보고십다고 함니다. - P9
그들이 같이 보낸 마지막 몇 해 동안설은 주영이 무슨 말을 해도 토를 달지 않았다. 고개를끄덕이면서 내게는 너와 반목할 의지가 없음을, 우리는같은 편임을 피력하려고만 했다. 긴 시간의 힘을 믿던, 거기에 매달리고만 싶던 날들이 있었다. - P10
힘들죠? 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기가 어색해서 그저 물었을 뿐이다. 선우가 단번에, 아니요, 라고 대답했다. - P14
보고 또 봅니다. 사랑의 첫 순간에 대해 생각하면 저는 항상 이 장면이 떠오릅니다. - P25
오랜 시간 비닐 랩에 싸인 채 냉동실에서 숨죽이던 반죽 덩어리가 갑자기 셰프의 식재료로 발탁된 셈이었다. 지금은 다만 반죽의 형태로 존재했다. 막 실온에 꺼내진, 스스로도 얼떨떨한 희고 말랑말랑한 한 개의 큰 덩어리, 이제부터 길고 복잡한 과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 P29
설은 남자의 눈을 보았다. 퀭한 눈, 퀭해서 슬픈 눈이었다. 누구나 자신의 방식으로, 이 사람은 이 사람의 방식으로 풍화를 견디는 중이었다. - P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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