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소리가 들리는 쪽의 손을 들어 보세요 " - P11

수술 부위의 통증 때문에 새벽에 저절로 눈이 떠졌다.
내 병상 옆 조그만 간이침대에 엄마가 몸을 웅크리고 주무신다. 일흔 살도 넘은 엄마가 40대 초반 아들을 돌보는 보호자가 되다니. 둘의 처치가 바뀌어야 보통인데 지금은 내가 수술했다는 이유로 큰 침상을 떡하니 차지하고 있다. 마음 같아서는 자리를 바꾸고 싶지만 엄마가 절대 허락하지 않을 게 뻔하다. 지금 병실이라는 공간에 나와 엄마가 같이 있다는 게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다. 약 4년에 걸친 긴 투병 생활 동안 나는 입원 기간 대부분을 혼자 지냈다. - P26

화농성 중이염이 빼앗아 간 것은 단순한 신체 기능이 아니라 타인 혹은 외부와 내가 연결되어 있다는 소속감이었다.
예전처럼 SNS로 내 생각을 표현하고 카카오톡으로 안부를 물을 순 있었지만 내가 원할 때 누군가와 직접 통화할 수 없고병원에서도 의료진과 소통하기 위해 보호자나 메모지의 힘을빌려야 하는 순간을 맞닥뜨릴 때마다 불쑥불쑥 나는 청인(聽人)을 기준으로 설계된 이 세상에 속할 수 없는 부적격자가 된것 같은 절망감에 휩싸였다. 예전의 나와 달라진 건 한시적으로 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됐다는 신체 기능 장애였지만 생존율을 따지는 치료를 하던 항암 치료 과정보다 마음은 더욱 괴로웠다. - P31

질병과 장애라는 긴 터널을 벗어나는 지난한 과정에서겪어야 할 소외감을 더 이상 환자 개인의 의지와 가족에게만맡겨서는 안 된다. 소통하지 못하고 소외된 인간은 한없이 나약해지고 자신에게 닥친 시련과 부딪칠 의지가 먼저 무너져내리기 쉽다. - P32

지금은 안마의자뿐만 아니라 정수기, 가전제품, 식기세척기, 심지어 침대도 렌털이 되는 시대인데 당사자의 녹취를주요 계약의 최종 근거로 삼는다면 청각 장애인들은 자연스럽게 렌털 시장 접근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 P55

지금은 예능뿐만 아니라 시사 등 다양한 프로그램에 자막이 삽입되고 심지어 자막 뽑는 능력 자체가 인정받고 있지만 한때는 무분별한 신조어의 주범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해다. 비장애인의 시각에서 보면 자막은 없어도 되는 양념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듣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자막은 불편 없이 프로그램을 즐길 수 있게 해 주는 필수 요소이다. - P60

태어나면서부터 청력을 잃은 작가는 어머니로부터 혹독한 사회 적응 훈련을 받는다. 쌀가마니를 배에 올려놓고 발음 훈련을 시켰던 어머니의 열정과 수어 대신 사람의 입술을보고 단어를 읽어 내며 습득한 의사소통 능력, 체육 선생님이호루라기를 불 때 변하는 배 모습을 보고 동작을 바꾸는 센스와 리듬이 들리지 않지만 외워서 추는 춤은 일부 친구들에게
‘거짓 장애인 흉내‘라는 비난과 함께 철저한 따돌림으로 돌아오기도 했다. - P71

코로나, 이사, 이민 등 다채로운 이유로 지금 만날 수 없는 대상이 있다면 일단 조용히 눈을 감고 그 사람의 목소리를떠올려 보자. 머릿속에 있던 목소리는 당신이 잊었던 그 사람과의 추억까지 되살려 낼 수도 있다. 만약 목소리가 떠오르지않는다면 시답잖은 일을 핑계 삼아 전화를 해 보면 어떨까.
목소리를 기억하겠다는 건 그 사람을 소중히 간직하겠다는뜻이 기도 하니까. 수술로 청력을 회복하게 되면 새롭게 만나는 소중한 인연들의 얼굴보다 목소리를 먼저 기억하는 데 집중해야겠다. - P79

병원을 나서 택시를 타고 가는 와중에 앰뷸런스의 날카로운 사이렌이 귀에 꽂혔다. 소리만 들리고 보이지 않았던 구급차가 잠시 뒤 차 옆으로 지나갔다. 시각보다 청각이앞서 주변 상황을 인지한 순간이었다. 청력이 돌아왔다는 안도감이 나를 감쌌다. - P99

따라서 장애와 질병을 당사자와 가족이 오롯이 책임져야 할 개인적 문제로 한정해서는 안 된다. 장애나 질병은 사구성원 누군가에게 예고 없이 갑자기 닥칠 수 있는 사건이다. 그렇기에 장애나 질병을 가진 사람도 최대한 일상생활을영위하고 경제적 자립을 할 수 있도록 직업을 포함한 포괄적사회안전망 구축은 필수다.
"질병을 앓게 됐나요? 사고로 장애가 생겼나요? 걱정하지 마세요. 질병과 사고는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우리가당신의 치료와 재활과 자립을 돕겠습니다 안심하세요."라는따뜻한 위로와 지지를 이 사회가 건넬 수 있도록 내 힘을 보태고 싶다. - P108

3또 남에게 지식이나 경험의 부재가 아닌 신체 기능 문제로 도움을 요구하는 것이 감정적으로 내키지 않았다. 부탁과도움은 상호 시혜적으로 오고 가야 한다는 고정관념에다 알량한 자존심이 당연한 도움 요청을 가로막았다. - P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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