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이렇게 말하기로 했다고 한다. - P37
그러면 아버지가 이렇게 마무리할 생각이었다. 이 사람이 원하는 대로 해주고 싶다. - P37
아버지의 시나리오는 무용했다. 누구도 이유를 물어오지 않았으니 아버지도 어머니도 대답할 기회조차 없었다. 같은 목적을 가진 부부들이 한방에 모여 차례를 기다리다가 이름이 불리면 판사앞으로 나가 이혼을 확정받는 것이 전부였다. 한 쌍도 아니고 네쌍씩 일렬로 서서, 성적표를 받듯 확인서를 받아 챙겼다. 그걸로끝이었다. 오십 년 결혼관계가 그렇게 끝을 맺었다. 낙제점을 받고도 합격증을 챙긴 셈이었다. - P38
이럴 땐 꼭, 느이 아빠구나, 딱 네 아빠야. - P43
넌 네 엄마 인생이, 그렇게 정리되면 좋겠니? 어머니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 P43
어머니가 여고 졸업 후 서울로 떠나면서부터 할아버지는 어머니에게서 온 편지를 벗삼아 술상 위에 펼쳐놓고 술을 마셨다 한다. 한 줄 읽고 한 잔, 두 줄 읊고 한 잔. 그렇게 편지와 주거니 받거니 술을 마시다보면, 내 어머니가 금방이라도 소주 됫병을 옆구리에 끼고 걸어들어올 것 같다고, 할아버지는 어머니에게 보내는편지에 마지막 인사처럼 덧붙이곤 했다. - P59
‘삼칠일 지나 오니라. 할아버지는 그런 사람이었다. - P54
얼마나 재미가 나던지, 참 좋다, 참 좋다, 참 좋다, 계속 그러면서 앉아 있었지 뭐야. 다시 배 타고 나오면서 우리 또 오자 약속했어. 뭐가 그리 좋았는지는 가물가물한데, 그 느낌은 두고두고 기억이 나. 아 좋다, 참 재미나다, 우리 다시 오자. - P48
골목을 돌고 돌아 집까지 꼬박 열두 시간이 걸려 도착했다. 보따리만 이고 지고 다섯 개였다. 전에 몇 번이고 와본 사람처럼 능숙하게 대문을 열고 마당으로 들어선 증조할머니는 우렁차게 어머니를 불렀다. 명자야, 할미 왔다 명자야. - P53
다시 절을 올리고 서울로 떠나던 날, 할아버지는 그제야 어머니의 이름을 불렀다. 명자야, 하고 불러세운 다음, 어머니에게 말했다. 이제부터 네가 저 사람 아버지가 되어줘라. - P61
난 희생한 적 없어. 하루하루 사랑하면서 살았을 뿐이야. 내가할 수 있는 걸 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그것뿐이어서. 그걸 하며 살아온 거야. 네가 그걸 그저 희생으로만 생각한다면, 네 말대로 그 모든 게 그저 희생과 인내였다면, 내 인생이 그런 거였다면, 난 정말 슬픈 거 같어. - P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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