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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할머니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나라 요시토모 그림,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7년 4월
평점 :
품절
요시모토 바나나 특유의, 라는 말이 어느새 굉장한 클리셰가 되어버렸다고 느낀다.
개인적으로 그녀의 소설은 <키친>에서 한 발자욱도 더 나아가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암리타>에서 보여준 주술적인 매력이나 성장 소설과 청춘 소설의 매혹을 잘 담아낸 <티티새>의 매력은 굉장하지만 사실 그런 복합적인 매력역시 이미 <키친>에서 대부분 보여진 바 있으니 바나나 월드에 새로운 것은 없어 왔다고 하는 편이 옳겠다. 에쿠니 가오리가 감성위에서의 변주를 통해 한 악기로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연주한다면 바나나는 어떤 악기를 사용해도 비슷한 소리를 낸다. 그녀의 신작 <아르헨티나 할머니>역시 몇 페이지만 넘겨도 바나나 냄새가 나는 그녀의 음악이다.
일본 여류 작가들의 특유의 음률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블로그 세대에게 어필하는 독특한 매력이지 싶다. 감성적인 이라는 형용사혹은 접두사로 설명되어지거나 포장되어지곤 하는 일군의 일본 여류 작가들은 자신의 감성을 툭툭 던지듯 사색하는 무심한 매력을 선보인다. 세밀하게 감정의 지도를 그리면서도 위치점을 건너뛰는 글쓰기는 마치 타인의 감성을 통해 타인의 삶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블로거들의 감성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엄마가 죽고 아빠가 떠나고 아빠가 새로이 함께하는 아빠의 연인을 만나는 십대 소녀의 이야기인 <아르헨티나 할머니>는 이제 상업적 감수성에서 콤비 플레이를 펼치는 파트너 요시토모 나라의 습작 같은 스케치가 여전하다. 어떻게 보면 진부하긴 하지만 요시토모 나라 특유의 캐릭터들은 요시모토 바나나의 이야기를 정확한 삽화의 기능으로 전달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기도 하다. 80여 페이지의 짧은 분량 속에서 그의 삽화가 기능하는 10여페이지의 그림들의 분량이 적지 않은 분량 그 이상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은 이 둘의 조합이 그저 기능적인 것만은 아님을 알 수 있게 한다.
불안한지만 크게 걱정된다거나 염려스럽지 않은 10대 여성의 일상을 그려내는 세밀한 관찰력은 여전한데 직접적인 취향의 묘사가 줄어든 대신 일상을 둘러싸고 있는 여러가지 부분들에서 의미를 발굴하는 호기심은 더해진 느낌이다. 특히 아르헨티나 빌딩이라는 공간을 다소 신비스럽고 괴기하게 설정한 다음 그 내부에 찬찬히 익숙해지는 전개는 동화같은 느낌을 준다. 엄마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이어지는 석수 아버지의 더욱 갑작스런 가출, 그리고 아버지의 또 다른, 새로운 여자. 불륜드라마처럼 시작한 이야기는 요시모토 바나나라는 필터를 거치면서 그것과는 전혀 다른 느낌의 건강한 인간관계를 매만지는 소녀의 색다른 방법론으로 만들어진다. 아르헨티나 할머니라는 정체불명의 여성이 유리라는 이름을 이야기 속에서 갖게 되기까지는 인간에 대한 어떤 치사한 기준이나 모호한 평가가 없는 10대 소녀의 투명한 시선으로 가득찬 전개가 큰 역할을 해냈다.
아빠의 연인이던, 아니면 소문과 이야기 속에 웅성대던 아르헨티나 할머니라는 이상한 이름의 여자이건 상관없이 새로운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쉬운일이 아니다. 요시모토 바나나는 좀 이상하지만 경쾌하고 특별한 대안가족의 모습을 제시한다. 그리고 떠난 이들을 소중하게 간직하는 남겨진 이들의 모습에서 그것이 어떤 이름으로 호명되는 관계인건 상관없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이름으로 불리워지는 게 중요한게 아니라 어떠한 관계인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