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의와 친절은 내가 학교에서 배운 것 중 가장값진 것이었다. 공손히 위치를 짚어 주는 내게 아저씨는 같이 가 줄 수 있는지 물었다. 까짓것, 어려운 일도아니었다. 나는 앞장섰다. - P86

나는 망가지지 않았다고, 나도 정상 범주안에 속해 있다고 안도했다. - P89

"어떻게 고통과 더불어 살아갈지, 어디에 서서 고통을바라보아야 할지에 따라 고통은 다르게 해석된다." - P91

한바탕 난장을 피운 뒤 돌아누운 내게 엄마는 자신도 성폭력 생존자라고 말했다. 엄마가 고른 단어는 생존자가 아니었지만, 나는 그렇게 번역해 들었다. 엄마는 자신의 고통을 어떻게 ‘자원화’해야 하는지 몰랐고,
입이 있으되 말하지 못했다. 대신 엄마가 배운 건 "그러고도 다 살아"라는 체념이었다. 엄마도 어렸고 약했다는 걸 이해하는 데는 훨씬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날 엄마가 밤마다 했다던 기도 내용도 알게 됐다. 예쁘게 자라지 말아 달라고, 그래서 누구 눈에도 띄지 말아달라고 빌었다고 했다. - P94

사람 보는 눈이 있는 고양이는 아니었다. - P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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