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 앉아, 자리 맡아뒀어.
외양은 사뭇 달랐으나, 눈썹 문신을 같은 곳에서 했는지 두 사람 모두 눈썹산이 지나치게 높고 색이 진했다. 후에 온 할머니는보행기를 교실 뒤에 세워둔 뒤 나와 헌진에게 늦어서 미안하다 재차 사과했다. 묻지도 않았는데 자정까지 트로트 경연 방송을 보다늦게 잠들었다며 어제가 진짜 중요한 날이었다 덧붙이기도 했다.
옆에서 여우 목도리 할머니가 한마디 거들었다.
난 임영웅 무대만 보고 잤어. - P239

할머니는 격자로 된 깍두기 노트에 헌진의 말을 꼼꼼히 받아었다. 줌인은 ‘주민‘으로, 슬로모션은 ‘슬로모시기‘로 소리 나는대로 적거나 흘려 쓴 비문들이 눈에 띄었다. 그리 어려운 말이 아닌데도 그녀는 종종 필기를 멈추거나 난처해하며 내게 ‘해상도가무언지, ‘로 앵글‘과 ‘하이 앵글‘은 어떻게 다른지 질문했다. - P242

이이는 마스크 사면 다 도시 사는 아들한테 보내. 저는 쓰던 거쓰고, 또 쓰고,
뭘 그런 걸 말해. 주책맞게. - P245

긴다. 나는 늘 그런 모녀가 부러웠다. 남편에 대한 험담에서부터불운한 과거사까지 필터링 없이 털어놓는 엄마, 그런 엄마를 가련하게 여기며 해우소 역할을 자처하다 결국 부아를 내는 딸. 남들은 클리셰라고 부르는 모녀상이 내게는 생경하다. 엄마와 나 사이에는 그런 것들이 결핍되어 있다. 애절하고 끈적이는 것. 분노와역정, 유치한 언쟁, 연민이며 사랑 따위. - P350

인물을 잘 모르면 서사는 매끄럽게 나아갈 수 없습니다. - P353

엄마의 말은 언제나 행간이 넓다. 그 사이사이에 숨어 있는 감정을 짚어내는 건 내 몫이다. - P357

안중정이 눈엣가시와 같은 말이라는 건 시간이 지나서야 알았다. 반장은 사흘을 사 일이라 우길 정도의 무식자였는데, 그런가 어떻게 안중정이란 점잖은 멸칭까지 꿰고 있었는지 알다가도모를 일이다. 사람이 사람을 미워하면 전에 없이 치열하게 마음을쓰고 머리를 굴리는 모양이라고 가만히 짐작할 뿐이다. - P364

주제는 없습니까?
우리 이야기를 써봐. 개의치 말고 맘껏 싸그리 다.
우리 이야기. 알쏭달쏭함과 막연함을 숨긴 채 겨우 몇 자 적었다. - P372

언니는 말했다. 그래서 자신은 글을 쓰기로 했다고 잘려나가고감추어야만 했던 우리의 이야기를 기억하기 위해 기록하기 위해.
그래도 혼자가 아니라 셋이라 다행이야. 내 문장에 확신도 안서고 불안할 때가 더 많지만……… 그래도 계속 쓰다보면 생기지않을까. 미약한 용기라도 - P381

단단한 어금니로 길게 이어진 사과 껍질을 씹는다. 누구도 먹지않는 그것을 아삭아삭아삭 - P394

소설가가 되면 내가 잘 아는 것들에 대해 쓰겠거니 했으나, 세상이나 사람의 마음은 알면 알수록 어려워 결국에는 잘 모르는 것들에 대해 쓰고 있는 것 같다. - P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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