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7교시가 끝날 무렵, 두통의 문자를 받았다. 하나는 성과 상여금 등급이 A*라는 문자, 다른 하나는 금촌동 집에서 뮤직비디오를찍어도 되냐는 아들의 문자였다. 아들에게 뭐라고 답할지 고민하며 교무실에 내려가보니 아니나다를까, 죽상을 한 채 담화를 나누는 이들과 눈치를 보며 업무를 보는 이들로 이미 파가 갈려 있었다. 성과급 내역이 통지되는 날이면 으레 냉담하고 어색한 기류가교무실 안을 떠돌았다. 한동안 피곤하겠네. 파티션에 몸을 숨기며중얼댔다. - P99

좋을 대로 하세요.
감사하다는 말을 내심 바랐지만, 아들은 끝까지 그 말을 아꼈다. 인류학과까지 나온 놈이 어째서 살갑진 못할까. 통화를 마친뒤, 홀로 늦은 저녁을 챙겨 먹었다. 전자레인지에서 꺼낸 카레는겉은 뜨겁고 속은 생각보다 찼다. - P105

그래, 주의하마.
네, 앞으론 그런 말 쓰시면 안 돼요 아저씨.
나이키가 말했다. - P119

그 부부는 당숙의 먼 친척이었다. 촌수로 따지면 남이나 다름없었으나, 아버지는 구태여 내게 그들을 재종숙이라 부르라 했다.
족보를 거슬러올라가다보면 그들도 여지없이 한 뿌리씩은 걸쳐있을 테고, 그 정도면 당"이나 진배없다며, ‘숙부‘와 ‘숙모‘는 너무 친밀하게 여겨지고, ‘아저씨‘ ‘아주머니‘는 예의에 어긋나는 듯해 고심하다 나는 그들을 ‘재종숙 부군‘과 ‘부인‘, 그렇게 부르기로 했다. 아버지는 중앙아시아에서 나고 자랐다는, 이태 전 횡사한 당숙 외엔 한국에 마땅한 일가친척이 없다는 재종숙 부부의 사정에 대해 구구절절 설명했다. - P129

그해 여름, 나는 구에서 주관하는 주거 사업의 세입자로 참여하게 되었다. 독거노인의 남는 방을 청년들에게 주변 시세보다 저렴한 가격에 세주는 하우스 셰어링 사업이었다. 입주 희망 신청서에는 값싼 임대료를 지불하는 대신 노인의 말벗이 되어주거나, 스마트 기기 사용법을 가르쳐주어야 한다는 조건이 붙어 있었다. 코혼자 오래 살았던 어르신들이라 성미가 까다로워요.
신청서를 작성하는 나를 보며 구청 직원은 넋두리하듯 중얼거렸다. - P277

적적하거나 사람 손이 필요해서 세입자를 들인 게 아니라 이걸하면 보조금이 나온대서, 그래서 하는 거다. - P285

할머니가 아니라 오즈 그게 내 이름이야. - P298

이건 돌양지꽃, 이건 자주괭이밥, 이건 목백일홍하며 하나하나 설명해주었다. 그녀는 잎이 뭉개진 꽃이나 햇볕에 말라버린 꽃들을 모아 돌담 한편에 차곡차곡 쌓아두었다. 마치꽃 무덤 같았다. 꽃을 다 줍고 자리를 뜨기 전, 할머니는 그 무덤에 대고 무어라 혼잣말을 했다.
"뭐라고 한 거예요?
물어봐도 그녀는 대답해주지 않았다. - P317

그분은 어떤 분이셨어요? 정액을그가 물었다. 할머니는 어떤 사람이었나. 상기할수록 머릿속이뿌예졌다. 한 사람을 온전히 알아가기에 두 계절은 너무 짧았던걸까. 흐릿해지는 기억 속에서 나는 오직 한 단어만을 건져올렸다. 내가 정말 그녀에게 하고 싶었던 말.
.……………강한 사람. - P334

선이 어떤 문양으로 이어질지 아직 알 수 없었다. - P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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