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작 최승자 자신은 이를 90년대 초반이 되어서야 자각했던 모양이지만, - P276
그러나 90년대로 접어들면서 상황은 달라진다. - P277
그것의 맞은편에 부정의 대상으로 존재해주어야 할 대타항으로서의 세계가 사라졌다는 뜻이다. 이것은 심각한 위기 상황이다. 잃을 것을 하나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이 거기서 하나를 더 잃었으니까 존재론적 정착지를 완전히 잃은 사람, 그는 존재론적 난민이되었다. - P279
시간은 시간을 갖고 있지 않다. 모든 사물이 저마다의 시간을 갖고 있을 뿐나는 자전하면서 그것들 주위를 공전하고지금 내 주파수는 온통 우라노스에게 맞춰져 있다. - P280
서의 시간이 있다는 것. 둥그런 거미줄의 마지막 대목에서 한 여자는 그 바람도 없는 시간을, 차라리 공간에 가까운 그 시간을 걸어 어디로 가는가. "제 삶의 가로수길"을 다 걸어 "소실점 바깥으로" 사라진다는 것. 이것은 시간의 월경, 다시 말해 역사적 시간에서 신화적 시간으로의 이동이다 - P282
한 여자가 제 삶의가로수길을 다 걸어가소실점 바깥으로 사라진다. - P282
용서하라고, 용서가 가장 완벽하게 빠져나오는 길이라고. 이손은 누구의 손이며 이것은 어떻게 가능해진 용서인가 존재론적정착지를 잃어버린 90년대의 난민 시인 최승자는 이렇게 신화적세계에 입사하면서 ‘고통의 정화‘ (백합의 선물」) 혹은 ‘완벽한 탈출‘(「구토」)을 꿈꿀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이 그야말로 자기 치유의작업이 아니라면 무엇인가. - P287
여느 때였으면 이 글은여기서 끝나야 한다. 그러나 대상이 최승자이므로, 나는 한번 더뒤집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을 패배라고 해도 좋은가? 그 대가로그가 세기말의 세계적 위기와 연동된 정신적 위기 국면을 무사히통과할 수 있었다면, 그리고 그가 새롭게 도달한 고향에서 안정을얻고 새로운 세기를 아픔 없이 맞이할 수 있었다면? 나는 21세기의 최승자에 대해서도 그가 출간한 세 권의 시집보다는 그의 육체적·정신적 안부에 더 관심을 갖는다. 그러니까 그가 사랑을 받고있느냐 하는 것 말이다. 그 대상이 가족이건 신이건, 그가 ‘존재론적 정착‘에 성공했기를 바란다. 시는 중요하지 않다. 그가 사랑을얻었으면 그만이다. 최승자는 언제나 살기 위해 썼지 쓰기 위해 살지 않았으니까. - P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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