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은주가 MBTI에 대해 물어왔을 때만 해도 경민은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저 요즘은 소개팅에서도 아이스 브레이킹을 위한 스몰토크로 MBTI 이야기를 하는구나싶었다. 하긴 영화 현장에서 연출부들도 배우들도 전부 MBTI얘기를 하곤 했다. - P9
은주와의 소개팅이 있고 며칠 뒤, 핸드폰에 뜬 유정의 이름을 보고 경민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다시는 핸드폰에 뜨지않을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요 며칠 INTJ에 대해 검색을 하면할수록 경민은 인티제의 이데아 같은 사람, 5년 전에 헤어진유정이 자꾸만 떠올랐다. 그런데 유정에게서 전화가 왔으니, 이럴 땐 정말 비합리적이라는 걸 알면서도 텔레파시 같은 게존재하는 건가 싶었다. 경민은 심호흡을 하고 전화를 받았다. - P17
돌이켜 보면 못난 열등감이었다. 과거를 되짚어 연애의 기억을 떠올리는 건 괴로운 일이었다. 최악의 인간. 이러면서 무슨로맨스를 쓴다고. - P23
"경민 씨, <기생충〉 안 봤어요? 무계획이야말로 절대 실패하지 않는 계획이라잖아요." "은주 씨, <기생충〉의 메시지는 오히려 무계획에 대한 경고죠, 난 은주 씨가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MBTI 궁합 같은 걸믿었다는 게 솔직히 이해가 안 돼요." - P29
"이제 퍼즐이 다 맞춰지네." 은주는 소름이 끼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가의 모습이 겹쳐 보이는 듯 아연한 눈으로 경민을 바라봤다. "원래 인티제가 MBTI를 믿지 않는 유형이거든요. 경민씨는 정말 지독하게 인티제스럽다." - P31
윤아가 석사과정을 그만두겠다고 했을 때, 나는 젓가락질을 멈추고 잠시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이럴 때 어떻게 대답할지 생각했다. 너무 골똘해져서 점심시간 내내 북적대는 김치찌개집 안이 다 조용해지는 기분이었다. 어쩐지 갑자기 점심 하자고 했을 때부터 심상찮긴 했다. 밥 한번 먹자는 게 그냥 의례적인 말이겠거니 연구실에서 고개만 적당히 끄덕였는데, 날짜까지 아예 불러보라기에 뭔가 있구나 싶었다. - P43
전반적으로 보살님의 인상이 워낙 강해서 기가 눌린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오늘 이 자리에서 아무 말도 꺼낼수 없을 거 같았는데, 그럼 나는 뭣 하러 여기 왔는지 모를 일이었다. 어쩌면 나 역시 불단 위 소품들처럼 인테리어 요소일지도? - P47
"더 문(The Moon)." 타로마스터가 말했다. "달빛이 깔린어둠. 이것은 불안을 의미하기도 하고, 불안을 거쳐 혼란이 곧끝나갈 것이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중요한 건 밝은 곳이 나올 때까지 당분간은 어둠을 통과해야 한다는 거죠. 이제 당신이 스스로에게 묻고 답해야 할 차례입니다. 버틸 수 있겠습니까?" - P59
"하지만 미친 듯이 귀여워." "그렇겠지. 강아지는 다 그래." - P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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