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은 인간의 상상만큼 빠르게 나아가지 않아. 이게 팩트야. 달나라에 첫발을 디뎠다고 난리가 난지 70년도 더 지났는데 아직 달에 베드타운 세울 기술 하나 없잖아." 혜주가 손을 뻗어 내비게이션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달에 세운 빌라 침실 창문 밖으로 파란 달이 뜬 걸 보며 잠들고 싶었단 말이야." 최는 오래전에 암스트롱이 정말 달에 갔느냐로 설왕설래한 사람들이 있던 걸 기억했다. - P7
한 남자가 가리킨 곳에서 작은 불길이 꺼져가고 있었다. 검은 산기슭 너머로 불빛이 노랗게 아른거렸다. 세 남자는 자리를 떠났다. - P53
"분명히 말하지만 네가 날 위해 해주는 일엔 굳이사랑이 필요하지 않다고. 푼돈이면 누굴 시켜도 다되는 일들이라고." - P67
최는 비로소 지금이 전쟁 상황인 걸 확실히 알았다. 살아야 했다. 최와 혜주에겐 아직 둘의 사랑을 시험해볼 만한 사건이 없었다. 늑대인간족과 좀비족과의 전쟁이 그 시험인지도 몰랐다.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혜주, 이 미친여자가 뭐라고 내뱉든 함께 가기로했다. - P135
"그런 건 남편한테 하라고 해요." 누군가가 소리를질렀다. - P146
"이놈이 내 사진을 몰래 찍어 갔어." 남자가 굵은 손가락을 들어 최의 목에 걸린 카메라를 가리켰다. 느닷없이 공포가 엄습했다. 그는 두손을 들었다. 뻣뻣하기가 남의 팔을 들어 올리는 것만 같았다. 입에서는 꺽꺽, 혀 굳은 소리만났다. - P152
"추워요. 춥다고." 최가 취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27도인데요?" 바텐더가 조리용 온도계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4월, 맑은 날 자정 가까운 시간에 27도면 정상이었다. 만져보니 이마가 땀으로 끈끈했다. - P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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