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로운 오후, 나는 빵집 카운터에 엎드려 있었다.
한낮인데 이렇게 어두운 것을 보니 곧 비가 쏟아지려나, 생각하면서 창밖을 보던 중 짧게 숨을 들이켰다. 무언가가 몸 밖으로 쑤욱 빠져나가는 듯한 기묘한 느낌이들었기 때문이었다. 동시에 내 몸은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 - P9

나는 문을 열고 달려 나가 길거리에서 유령을 붙잡았다 - P12

유령? 언니 왜 혼잣말을 하고 그래? - P14

유령을 통해 정수와 대화할 수만 있다면, 나는 묻고싶은 것들이 많았다. 돌아오지도 않는 대답을 기다리는사이 계절이 여덟 번 바뀌었다. 나는 이제 혼잣말이 어색하지 않았고, 정수 앞에서 울지도 않았다. - P18

잠시 뒤에 내가 말했다. 싫어. 유령이 말했다. 오래전부터 나는 하기 싫은 일이 있을 때마다 몸이두 개이길 바랐지만, 정작 생겨난 두 번째 몸은 아무 도우도 되지 않았다 - P20

나는 유령의 우는 얼굴을 바라보았다. 나에게 도달하지 못한 감정들이 전부 그 안에 머무르고 있었다. 나는손을 뻗어 유령의 두 눈에서 뚝뚝 떨어지는 눈물을 닦아 주었다. 손에 닿지는 않았지만 분명 따뜻했고, 너무나 따뜻해서, 나는 울 수 있었다. 대체 어떤 유령이 눈물까지 흘리는 거야. 내가 말했다. 나는 유령이 아니니까.
유령은 우는 와중에도 그렇게 말했다. 잠시 뒤에 유령이 나를 끌어안았는데, 그것은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받아 보는,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완전한 이해였다. 여기까지인 것 같아. 안긴 채로 내가 말했을 때 유령은 그래,
라고 대답해 주었다. - P28

특별할 것 없던 오후, 유령은 내 어깨에 기대어 있다.
가 스르르 사라졌다. 사라지기 전, 유령은 내 귀에 대고무언가를 속삭였다. 그러나 그것은 언어의 형태가 아니었다. 그것은 꿈처럼 아름답고 깃털처럼 부드러운, 물고기처럼 유연하고 흐르는 물처럼 반짝이는 유령의 마음이었다. - P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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