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처음 쓰기 시작했을 때 몇 달씩 해외에 머물며 책을 쓰는 호사를 누렸다. 이국에 머물며 모국어로 글을 쓴다는 것은 언뜻 그럴듯하게 느껴지지만사실상 자청해서 부적응자의 삶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 P14
지금 카페 종업원은 주전자에 담긴, 김이 나는거운 물을 대리석 바닥에 뿌리고 그 위를 대걸레로닦고 있다. 내 앞에서 서서 그 일을 반복하고 있다. 네발이 놓인 곳의 바닥을 닦고 싶으니 나가달라는 뜻인것 같다. 카페에 손님은 아직 둘 더 남아 있다. - P26
작업 일지를 쓰면서 생긴 변화도 있다. 그건 동료작가들이나 후배 작가들에게 메시지를 받는 일이 왕왕 있다는 것이다. 친분이 있는 작가일 때도 있지만일면식이 없던 작가에게도 연락을 받을 때가 있다. 그러나 내용은 대체로 거의 동일하다. 하나같이 나의작업 일지를 잘 보고 있다면서 그 글을 보면서 자기도 힘을 얻고 있다며, 자기도 열심히 써야겠다는 마음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일종의 자기 다짐의 글이자 계속 나를 응원하겠다는 글이다. 내가 한 일이라곤 내 작업 일지를 올린 것밖에 없는데 그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받으니 송구한 마음이 든다. 그러나그들이 왜 그런 인사를 건넸는지, 사실 나는 그 이유를 너무 잘 알 것 같다. - P35
문학 전공생 시절에 어딘가에서 들었던 말이다. "영감을 기다리지 않는다, 우리는 그저 일을 하러 간다." 소설을 읽고 쓰며 살았던 지난 삶을 돌아보면 나는 언제나 그 말에 억압받았던 것 같다. 원어의 뉘앙스와 맥락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도 모르면서. 내내그 말에 가깝게 살아보고자, 그 말을 실천하고자 했다. 소설 쓰기가 내게 정확한 노동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 한편으로는 읽고 쓰는 행위가 우리 사회에서 말하는 노동(산업사회의 임노동 개념을 아예 비껴갈 순 없겠지만)에 준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생각하는자격지심. - P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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