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H의 사진은 없다.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니다. 나는 내 아들 버트, 그리고 바다를 찍고 또 찍었으니까. 이상한 점은 그날오후부터 이틀 뒤까지 사진상 기록에 공백이 있다는 점이다. 이틀 후에 찍은 사진 속에서는 H가 병원침대에 누워 카메라를향해 미소를 지어 보이려 애쓰고 있다. - P10

이런 재양의 한가운데 어딘가에서, 하나의 공간이 열렸다. 집에서 병원, 병원에서 집으로 오가는 동안, 꾸벅꾸벅 졸고 있는H의 침대맡에 앉아 있는 동안, 병동 회진이 있을 때 매점에서 기다리는 동안 시간이 흘러갔다. 나의 날들은 긴박한 동시에 느슨했다. 나는 계속해서 어딘가에서 깨어 있으며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했다. 그런 한편 불필요한 침입자가 된 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고 주변을 멍하니 응시하면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마음속은 이 새로운 경험들을 분류하고 그 맥락을 찾아내느라 분주했다. - P13

매일의 세계의 톱니바퀴 사이에는 틈이 있고, 때로 그 톱니바퀴가 열리면 우리는 어딘가 다른 세계로 떨어진다. 그 어딘가다른 세계는, 모든 사람들이 살아가는 지금 여기와는 다른 속도로 흘러간다. 어딘가 다른 세계에는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서현실 세계의 사람들에게는 언뜻 보일까 말까 한 유령들이 산다. 어딘가 다른 세계는 지연된 시간 위에 존재하기에 현실 세계와 보조를 맞출 수 없다. 아마도 나는 이미 어딘가 다른 세계의 언저리에 위태롭게 서 있다가 마침내 마룻장 사이로 떨어지는먼지처럼 가뿐하고 조용하게 그곳으로 떨어진 것이리라. 그곳이 내심 집처럼 편안한 기분이 들어 나는 놀랐다. - P14

누구나 한번쯤 겨울을 겪는다. 어떤 이들은 겨울을 겪고 또 겪기를 반복한다. - P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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