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리하시군요. 사실 여학생이 제게 편지를 보낸 적이 있습니다. 군대에 다녀온 직후였습니다. 어느날 학교 과사무실에 제 앞으로 온 편지가 배달됐습니다. 여학생은 이제 고등학교에 진학해서 2학년이 되었고, 그 편지는 아주 다정하면서도 진지한 내용이었습니다. 놀랍게도 과외를 하던때 이미저에게서 미묘한 감정의 변화를 읽을 수 있었다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여학생은 자기하고만나볼 생각이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게 불편하다면 다시 과외를 하는 것도 좋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편지에 답장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여학생도 더는 제게 연락을 하지 않았습니다." - P23
"혹시나 하는 마음에 요즘 다시 번역된 《롤리타》를 읽어봤는데 예전 그 느낌이 아니더라고요. 그때 읽었던 책이 줄 수 있는 감의 울림이란, 다른 책에서는 찾을 수 없나 봐요." - P24
이야기를 듣고 있던 나는 문득 장난기가 발동했다. "이야, 그 정도로 붙어 다녔을 정도면 둘이 사귄다고 전교에 소문이 났겠는데요? 상대 여학생 처지에선 곤란한 일 아닌가요?"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게다가 우리 학교는 남녀공학도 아닌데요?" - P29
"책을 갖고 있으면 계속 생각이 날 것 같았거든요. 하지만 마음까지 버리지는 않았어요. M이 떠나고 20년이 지났지만, 저는 그가 다시 올 걸 믿고 있어요. 그때까지는 아무래도 그 시집이 필요할 것 같더군요. 그런 소중한 책을 버리다니. 저는 계속 부끄러운행동만 했어요. 다시 M을 만난다면 부끄럽지 않은 사랑을 할 겁니다." - P31
나는 그가 하는 말을 듣고 난 다음 바닥이 꺼질 정도로 한숨을 내쉬었다. 이유인즉, 드릴 말씀이라는 게 아주 황당한 내용이기 때문이다. S씨는 교지에 보낼 독후감을 쓰려고 학교 도서관에 갔다. <그 여인의 고백>은 아무렇게나 손에 잡히는 대로 고른 책이었다. 그는 운동을 즐기는 성격이고 소질도 있어서 학교 육상부에서 활동했다. 운동이라면 누구나 인정하는 에이스였다. 하지만 책은썩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데 같은 학교 문학부에 있는 여학생을 보고 온몸이 뜨거워지도록 마음이 끌렸다. 놀랍게도 그게 바로 M씨였다. - P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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