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기사, 행복을 찾아 바르셀로나로 떠나다 - 행복한 오기사의 스페인 체류기
오영욱 지음 / 예담 / 2006년 7월
평점 :
품절


어떤 이들에게 태양은 가득하다. 작렬하는 무언가의 에너지가 늘 그러하듯이 오롯이 빛나는 그 뜨거움은 새로운 시작을 가능케하고 독려하며 쉬이 멈추지 않게 하는 힘을 주곤한다.

그러나, 모든 이들이 태양 아래에서 그렇게 뜨거울 수많은 없는 것이다. 힘주어 말하지만 바쁘게 달려가는 수많은 사람들 중에 몇몇은 조금 천천히 걸을 수도 있는 것이며 어떤 경우에는 그 뜨거움을 등진 서늘한 쉼으로 생의 다른 이면을 마주하는 방식을 택할 수도 있는 것이 인생이니 말이다.

격렬한 투우와 강렬한 플라멩고의 에스파뇰들 역시 모두가 그리한 것은 아니어서 더럽고 아름다우며 평화롭고 행복한 그 곳,바르셀로나,시에스타와 피에스타의 한가로운 사람 풍경은 늘 그리할수도 있고 이리할수도 있는 어떤 평화로움을 보여준다.

우리가 여행기, 특히 어느 한 지역에 오래 머문이들의 체류기에 가까운 방랑기에 기대하는 잡곡밥같이 거대한, 다양한 다채롭고 복잡한 무엇들의 취득과 체득을 정보와 팁들을 기대하고 이 책을 연다면 어쩌면 너무나도 단조롭고 평화로운 오기사의 노닥거림에 실망할지도 모른다. 허나 여행이란 것이 다른 세상을 위한 호전적인 도전에만 그치지 않는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이들에게 이 책은 그 따사로운 햇볕의 나라에서, 오후 두 시부터 다섯시까지의 평화로운 일상이 허락되는 도시에서 누구보다 스스로의 생태계를 온전히 가꿔온 여행자이자 이방인이자 방랑자의 가장 친근하고 솔직한 기억의 화첩이라 해도 무방하리라.

건축을 전공한 오기사의 그림은 그리하여 매우 단단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자유롭다. 책의 페이지들은 짧지만 인상적인 문구들과 대부분 거리와 카페의 풍경선으로 이루어진 그림들로 이루어져 있다. 매우 감각적이고 군더더기가 없고 유머러스한 그의 그림과 다소 게으르고 유쾌한 그의 글씨체는 오기사의 많은 부분을 대변한다고 하겠다. 바르셀로나에서 보낸 일년간 마셨다는 천 잔의 커피와 오백잔의 와인과 맥주는 이 조급하지 않은 30대 초반 동양인 남자의 일정부분 지루하지만 대체로 평화롭고 안온하며 낙천적인 삶을 보여주는 사례라 하겠다. 실제로 책의 많은 페이지들도 행복을 찾아 바르셀로나로 떠난 오기사의 카페와 커피, 바와 맥주의 큰 징검돌 사이에 늘 지각하는 어학원과 에이쓰리 만한 전기장판, 늘 40퍼센트만 알아듣는 대화들이 섞여 있는 모양새다.단조롭기까지한 구성이지만 지루하지 않게 느껴졌던것은 어떤 낭만이 전투적이지 않아서 편안한 일상의 그릇에 가득 담겨있어서일 것이다.

어떤 이들은 타국에서의 생활을 누군가 무엇을 찾기 위해서 어떠한 스스로의 업적을 위해서 떠나간 그리고 그래서 외롭고 부박한 유랑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오기사는 모든 것을 버리지도 않았고 그럴 용기도 없는 단순함으로 느껴지는 외로움들과 덮쳐오는 불안함들을 감싸안는 여유를 보여준다. 읽는이의 태도에 따라서 재미와 호불호가 크게 나뉠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적어도 내게 그 여유로움은 삶을 만드는 꽤 근사한 태도로 느껴졌다. 그가 1년간 그려내고 기록한 양지생태보고서는 뜨겁기보다는 나른한 오후의 햇살과 닮아있다. 불타지 않는 열정이야 말로 얼마나 은근한 매력을 지닐 수 있는지 보여주는 떠남과 머무름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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