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였을까. 나는 불현듯 오를레앙에서의 한 시절을 떠올렸다. 프랑스아이들과 말을 든 후에도 투명한 구체에 갇힌 듯, 잘해봐야그들 사이에서 두더지나 청설모같이 아담하고 신기한 동물일수밖에 없었던 그 시절을 누구에게도 티 내지 못했던 고립을 그리고 그로 인한 외로움을 언젠가 도래할 끝을 기다리며 견뎠던 그 시간들을, - P165
자세로 거기 누워 있었다. 각을 잰 듯이 반듯하여 자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았으나 잠들지 않았다 해도 쉽사리 말을 걸지못할 긴장이 느껴지는 지나친 반듯함이었다. 그 기묘한 자세는 이듬해 봄까지 희곤이 반복하여 보게 될 모습이었다. - P191
희곤은 눈앞의 광경을 믿을 수 없었다. 조금만 움찔거려도 전동 날이 우재의 얼굴을 찢어버릴 만큼 가까이 붙어 있었다. 비명이 나올 뻔했지만 그랬다가는 끔찍한 상상이현실이 될 것만 같아 희곤은 손으로 제 입을 틀어막았다. - P197
"그날 이후로, 저 친구 눈빛이 없었어. 제정신이 아니었지. 어디 저 친구뿐이었겠나." - P212
어떤 기억은 볕이 들지 않는 곳에서 오랜 세월을 견디다 한순간에 깨어나버리고는 한다. - P215
"그럼 통혁당 사건이 어떻게 된 건지도 잘 알겠네? 어디 그 얘기 좀 해보더라고. 이런 사람은 정치판에 있어도 촌구석에 박혀있으니 정보에 어두워서 애로가 많아." - P167
그 언니 후랑크후르트로 간댔나. 거기 가면 집도 주고 옷도 준댔다. 예나 지금이나 동네에서 제일 큰 외삼촌 댁보다 훨씬 큰 대궐 같은 집이랬다. 외화에 나오는 여우들이 입을 법한 옷가지도 받는댔고, 보들보들한 수건도 양껏 쓴다했고, 집보다 옷보다 수건보다 무엇보다 사람 대우 받는댔다. 그 언니 그래서제 말마따나 지금쯤 슈바빙돼 있으려나. 버려진 자리서 몰래 피우던 마(麻)도 맘껏 피우고, 마셔보고 싶다 노래 부르던포도주도 원 없이 마시면서 그렇게 멀리멀리 가 있으면,사이 난리도 모르겠지. - P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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