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을 당했다는 사실조차 부정당할 것이라는 불안 속에서 ‘나‘는 스스로의 언행을 검열하고 만사를 불신하는 강박에 시달리기 시작한다. "나는 원래도 논리정연한 사람은 아니었는데, 늘뭔가를 빼먹고 까먹고 헷갈리기 일쑤였는데 이제는 사소한 실수하나도 해서는 안 되었다. 그 실수는 내가 실제로 겪은 일의 신빙성을 훼손해서 그걸 가짜로 만들어버릴지도 몰랐다." (168쪽) - P184
‘나‘가 화를 입은 공원은 들개가 출몰한다는 소문이 떠도는 동시에 사랑스러운 반려견들이 산책하는 공간이다. 개를 귀엽고충실한 반려견과 고약하고 공격적인 들개‘로 나누는 오래된분법은 인간의 가장 오래된 가축으로 진화해온 이 종족의 길들여짐과 유기의 역사로 인한 것이다. 들개가 짖으면 집개가 반응하는 이 공원은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섞여 적대와 폭력, 기쁨과사랑의 행위를 수행하고, 공유하고, 전파하는 공동체의 광장‘으로, 포함과 배제의 권력을 중층적으로 작동시킨다. ‘나‘ 역시 피해자인 한편 그러한 권력의 산물이다. 폐지 줍는 노인이 건넨 요구르트가 찝찝하고, 홀로 어슬렁거리는 사람보다는 가족 단위의용객을 볼 때 더 편안함을 느끼는 ‘나‘ 또한 중산층적 교양과 인구구성의 경계에 예민한 사람이다. ‘나‘는 분노를 어떤 정치적 자원으로 승화시킬 수 있을 것인가. 원한과 복수의 재생산으로 지탱되는 ‘인간의 짓‘을 또 반복하게 될 것인가, 아니라면 이제까지와는 다른 ‘인간의 짓‘을 발명할 것인가 - P188
뭐든 조금씩만 입에 넣고 느긋하게 음식을 씹어 삼키는 선우부부와 그들을 둘러싼 집안 분위기가 어린 해민에게 끼칠 좋은영향을 생각하면 그들 부부의 속마음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 P198
좋아. 나 엄청 예쁜 거 살 거야! 그네에서 뛰어내리다시피 한 해민이 달려왔다. 미애는 턱까지내려온 해민의 마스크를 제대로 씌워준 뒤 아이의 손을 잡았다. 아니, 작지만 단단한 아이의 손이 먼저 미애의 손을 힘껏 움켜쥐었다. - P219
나는 희망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희망이 있다, 희망을 가져라. 그렇게 말할 때의 확고하고 단호한 표정이 아니라, 주저하고 망설이면서도 어쨌든 한 걸음을 내딛는 순간을 포착하고 싶었다. 희망이라는 게 정말 있는지 없는지, 확신할 수 없으면서도 일단 가봐야겠다고 마음먹는 순간의변화. 그 변화가 불러오는 찰나의 활력과 활기를 붙잡고 싶었던것 같다. - P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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