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 잘 넘어가지 않는 순간이 그에게도 있다. 그럴 때도그는 스스로에게 준엄하다. 신형철은 "제 경우 글이 막힌다면그건 무슨 신비로운 현상이 아니라 준비 부족의 냉혹한 귀결일뿐일 때가 많다"고 했다. 그럴 때 그는 작품이나 자료로 돌아가다시 처음부터, 처음인 듯 들여다본다. "고르디아스의 매듭을 탁! 끊듯이 해결하는 게 아니라 엉망으로 꼬인 실타래를 하나씩 풀어헤치는 방식이다. 흥이 나지 않아 쓰기 싫어질 땐 "클래시컬한명문들을 읽는다"고 했다. 그가 존경하는 비평가들이다. 최근엔서영채 서울대 아시아언어문명학부 교수(왜 읽는가>), 황 연동국대 국어국문문예창작학부 교수(명작 이후의 명작) 신작을읽는다. 클래식이 원래 함대라는 뜻이잖아요. 두 분 책을 고있으면 거대한 함대가 몰려오는 것을 보듯 압도돼요. 질투는오히려 방해되기 때문에 질투조차 할 수 없는 대상이 필요하다 - P32
앞으로는 좋은 일만 있을 거라는 뜻이 아니라, 우리의 지난시간이 헛된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건 김연수 작가에게서배운 것이죠. ‘희망은 희망이 있다고 믿는 능력의 산물이다. 이건김수영 시인에게서 배운 것이고요. 얼마 전에 리베카 솔닛의 어둠속의 희망〉을 잘 보이는 곳에 놓아뒀는데, 거기에는 이런 문장이있어요. 인과론은 역사가 전진한다고 가정하지만, 역사는 군대가아니다. 그건 서둘러 옆걸음치는 게이고, 돌을 마모시키는 부드러운물방울이며, 수세기에 걸친 긴장관계를 깨뜨리는 지진이다." - P33
신형철 선생을 만나기 위해 2월부터 그를 섭외했다. 인터뷰를썩 좋아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진 그가, 흔쾌히 ‘오케이‘ 사인을보냈다. 〈한겨레〉 〈한겨레21>과의 오랜 인연 때문이리라 짐작했다. 오래 멀리했던 문학에 대해, ‘저 신형철‘과 일대일 대화를이어가야 한다는 부담이 턱 얹혔다. 그러나 우리는 끝내 하나의 얼굴로 만날 수 없었다. 인터뷰를 맡은 내가 인터뷰 직전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탓이다. 우리는그의 표현대로라면 (통화만 하는) 음성 타자‘, (전자우편과 문자만 주고받는) 글자 타자‘의 벽을 넘지 못했다. 대신 신형철 선생은 바쁜 수업과 일과를 쪼개어 서면 인터뷰에 응해줬다. 통권호인터뷰에서 이 인터뷰만 유일하게 서면으로 진행된 배경이다. 인터뷰는 "타자의 타자성"을 깨고 인터뷰하는 재와 인터뷰당하는 존재가 유일무이한 의미를 다시 쓰는 과정이다. 그래서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타자의 타자성"을 깨지 못한 이번 인터뷰에 대한 아쉬움이 크다. 그는 〈몰락의 에티카)에 이은 두 번째 평론집을 "아직 증축·보수 중"이라고 했다. 2016년 1년여간〈한겨레>에 연재한 ‘격주시화를 작은 책으로 만들어볼까 궁리중이라고도 했다. 그러니 새 책이 나오면, 그땐 꼭 직접 만나 그의 글짓는 일에 대해 물어보려 한다. - P33
매체에 글을 막 기고하기시작한 이가 받는 원고료는 20년전인 그때나 지금이나 200자 원고지1장당 1만원 수준. 모아봐야 "한 달에100만원도 안 되는 돈으로 먹고살수는 없었다. 미술학원에서 아이들을가르치는 일부터 전시장 지킴이아르바이트, 전시 기획, 연구 용역까지. 해가 떠 있는 동안 온갖 일을 하고대부분의 글은 밤 시간을 이용해 썼다. 김진수 선임기자 - P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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