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나는 또한,
당신이 없는 지금 이곳을 상상합니다. 당신의 어머니, 그러니까 나의 자매 해수가 나와 함께 정동길을 걸으며 서로가 꿈꾸었던 미래를 이야기하던 그때와 다름없이, 우리가 나란히각자의 두 발로 자기만의 길을 걸어가는 모습을 말입니다. 당신이 없는 그곳에서도 당신에 대한 나의사랑은 분명 다르지않으리라는 것을, 그 다른 세계에서도 당신에 대한 나의 사랑은 분명 굳건할 것임을당신이 이해하는 날이 오기를.

조한흠이 열한 살이던 1961년 초여름 밤. 야간통행금지를알리는 사이렌 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홑이불 속으로 들어가 군용 손전등을 밝힌 조한흠은 벌써 수십 번도 더 읽은 만화책 한 권을 다시 펼쳤다. 장충단공원 한구석에 책장수가 펼친 좌판에서 헐값으로 사 온 『라이파이』였다. 검은 안대를 쓰고 흰 두건을 이마에 두른 라이파이는 그날도 연두색 쫄쫄이유니폼을 입고서 광활한 초원을 누볐다. 몽골 기마병과 아메리칸인디언을 섞어놓은 초원의 무법자 이루쿳치족들이 라이파이의 돌려차기 한 방에 우르르 나가떨어졌다. 여느 때 같았다면 라이파이의 전용 비행선 제비기가 V자 구름을 그리며표표히 사라지는 마지막 장면까지 읽었을지도 모른다. - P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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