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여성을 착취하며 확보한 시야로 여성이 착취당하는 것에 분노하고, 이따금 착취당한 여성을 그 분노로 몰아세우는 딸. 못돼먹고, 강압적이고, 권위적이고 폭력적인 딸, 페미니즘을 이야기하면서 머릿속으로 엄마에게 폭력을 가하는 딸. 이따금 폭력은 상상만으로도상처를 낸다. 증발되고 새어 나가 듣는 이를 밀어내고 다치게 한다. 나 역시 끊었던 만큼 화상을 입는다. 내상은 삶에 치명적이다.
모르는 사람보다 가까운 사람을 더 견디지 못할 것만 같다고 쓴다. 항상 그런 문장에 마음이 쓰인다. 왜 나는 안희정보다 미경에게 상처를 받는가. 나의 페미니즘은 왜 엄마를 밀어내는가. 페미니스트이길 바라게 되는 얼굴, 나를 페미니스트로 만든 얼굴…. 가장 이해받고 싶은 사람과 가장 이해하고 싶은 사람은 자주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그 면면에 다림질을 하듯 공들여 기대를 걸다가도 그 얼굴들을 어떤식으로든 구겨 버리고 싶던 밤마다 잠을 설친다. 세상의 도덕적 쓸모를 자처하려는 내 마음엔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느린 누군가에 대한미움이 알알이 박혀 있다. 인내 없이 타인을 내려다보던 내 눈길이 내가 진저리치던 무엇과 많이 담아 있을 때면, 마음과 미움의 획이 왜같은 숫자인지 알 것만 같다. - P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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