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에게 나는 종교이고, 하나뿐인 세계야. 그런 생각을 할때마다 죽어버리고 싶어."
쇼코는 비가 내리던 날에 우산을 들고 마중나오는 할아버지와 마주치지 않기 위해 담을 넘어 집으로 가기도 했다고 말했다. 할아버지가얼마 없는 돈을 쪼개서 사준 옷을 포장째 쓰레기통에 버린 적도 있다.
고 했다. 쇼코는 할아버지가 자기를 마치 여자친구처럼 생각하는 게소름 끼친다고,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도쿄로 떠나서 다시는 고향으로돌아가지 않을 거라고 말했다. - P13
11
"여기서 나랑 지내자. 한국에 가지 말고 여기서 나랑 같이 살자."
쇼코는 마치 그게 가능한 일이라는 듯이 발랄하게 말했다. 나는 다시는 쇼코를 보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그저 열일곱 살의 쇼코를 기억하고 연락이 끊어져버린 걸 안타깝게 여기며 그렇게 서서히 잊어버렸으면 좋았으리라고,
뉴욕 시립 도서관 앞에서 하나와 마주치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쇼코에 대한 안타까움과 궁금증을 품지 않았더라면 나는 그렇게 쇼코를기억 속에서 지워버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어디로 떠나지도 못하면서 그렇다고 그렇게 박혀버린 삶을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의 맨얼굴을들여다보는 일은 유쾌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