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무섭지가 않지? 읽으면서 내내 들었던 생각이다. 유령이 등장하는 제목, 이야기 내내 반복되는 악의와 저주, 원한이라는 단어들에도 불구하고 <대불호텔의 유령>은 무섭지 않다. 마치 호러 영화를 보러 갔다가 이국의 아트 필름을 보고 나온 것처럼 무섭지는 않고 알쏭달쏭 의아한 기분. 귀신의 집을 기대하고 입장했는데 나오고 보니 손에 쥐어진 것이 백년 전의 입장권인 것 같은 기묘한 착시. 이 이야기가 건네는 감정은 무서움이 아니었다. 공포라는 것이 개개인의 차이가 크겠지만 전형적인 장르물을 기대했다면 <대불호텔의 유령>은 충분히 허무할 수 있다. 나 역시 그랬다. 아니 그렇다면 강화길의 고딕 호러란 훅은 진정 마케팅의 언어였던가. 전작들의 귀기는 무엇이었나 생각을 해봤다. 곰곰 생각해보니 <화이트 호스>도 <음복>도 <가원>도 그리고 <손>과 <서우>도 귀신이 등장해서 무서운 이야기가 아니었다. 산 자들의 서늘한 욕망과 질투, 의심과 착각이 강화길 소설이 주는 으슬으슬함의 구성 요소였다. 그렇다면 <대불호텔의 유령>에서 무서움 위에 올라탄 감정은 무엇일까. 그것은 슬픔과 외로움이다. 그 둘이 무서움의 꼭대기에 앉아 나란히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다. 마치 사진을 계속 갈아 끼울 수 있는 액자처럼 구성된 이 소설은 전쟁이 휩쓸고 간 1950년대를 배경으로 귀신이 출몰한다는 공간 대불호텔에 모여든 네 명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다소 긴 분량의 2부에 이 네 명의 이야기가 집중적으로 그려지고 1,3부가 치밀하게 2부의 이야기를 견인한다. 강화길 작가는 견고한 구성으로 이야기를 건축하고 마치 신들린 사람처럼 써내려간 설정과 문장들로 공간의 내부를 화려하게 꾸며 놓았다. 무려 셜리 잭슨과 에밀리 브론테가 나타나고 1950년대 인천과 월미도의 옛 풍경들이 포개진다. 읽는 내내 호흡이 가쁘게 페이지가 넘어가다가 갑자기 의아 해지는 순간들이 있는데 결국은 그 퍼즐들이 맞춰 지는 것이 이 소설의 묘미다. 추리 소설은 아니지만 입체적인 캐릭터들 덕에 인물의 속내를 짐작하고 그 감정이 흘려놓은 조각들을 따라가는 것 또한 이 소설을 읽는 재미이기도 하다. 다만 결과적으로 이야기의 아귀가 들어 맞는 것과는 별개로 감정의 카타르시스를 통한 설득력이 약하니 쾌감과 감동은 크지 않다. 읽는 이들이 마음을 내어주고 응원할 수 있는 캐릭터가 드물다 보니 사건의 진행과는 별개로 읽는 이의 감정이 고조되지가 않는 것이다. 전작인 단편들에서는 불안과 혼란이 뒤섞인 감정을 턱 밑까지 차오르게 했던 강화길의 저력이 이 작품에서는 만개한 것 처럼 느껴지지는 않았다. 대신 <음복>의 제사상, <가원>의 저택, <화이트 호스>의 산장처럼 인물이 들어갈 시공간을 건축해내는 작가의 대담한 로케이션은 충분히 흥미로웠다. 나에게 이 책은 떠오르는 여명을 보며 거대한 식탁 위에 앉은 각기 다른 한기를 간직한 네 사람의 그림으로 남았다. 이상하게도 그 그림은 막 떠오르는 태양의 빛을 완전히 흡수한 듯 기묘한 온기로 가득했는데 내겐 그 장면의 잔상만으로도 충분히 인상적인 책이다. 강화길 작가의 다음 작품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