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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게이츠는 왜 아프리카에 갔을까 - 거짓 관용의 기술
리오넬 아스트뤽 지음, 배영란 옮김 / 소소의책 / 2021년 6월
평점 :
번역본이 나온 것은 지금 시점이지만 이 책의 출간 시기는 2019년, 코로나19 이전이다. '추천의 말'을 쓴 목수정의 말처럼, 이 책이 팬데믹 한복판에서 나왔다면 음모론 서적으로 분류되었을지 모른다. 저자는 프랑스 기자이자 작가로서, '한국어판 서문'에서 "지금의 빌 게이츠는 어딜 봐도 생물권 전체에 해가 되는 시스템을 지속적으로 지지하며 시대에 역행하는 인물"(20쪽)로 평가한다. 이는 단적으로 코로나19 퇴치 전략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게이츠 재단은 코로나19 퇴치를 위해 17억 5천만 달러의 투자를 약속했고 검증된 기술인 백신을 지지했다. 그런 한편, 공중보건보다 사익을 우선시하는 원흉인 '제약 회사의 기술 독점'을 옹호하고 특허권을 신봉했다. 1970년대 중엽 빌 게이츠는 그간 사람들이 데이터를 만들어 무상 배포하던 관행을 뒤집고 데이터를 독차지했고 그것을 근간으로 재산을 모았다.
그는 코로나19 이후 또 다른 질병 퇴치를 위해 노력 의지를 보이지만, 실상 생물다양성 소실과 세계화 폭주를 야기한 경제 모델의 지지자다. 저자는 코로나19의 창궐을 오늘날의 경제구조 때문으로 보는데, 생물다양성 소실이 전염병 위기 요인의 증가와 관련된 보고서를 근거로 한다.
이 책은 게이츠 재단의 '자선' 활동의 밑천이 되는 자금 흐름을 근원부터 추적하고자 한다. 개발, 농업, 보건 분야의 국제조직에 대한 빌 게이츠의 자금 지배력은 전 세계의 정부와 시민사회를 움직일 수 있을 정도라니 놀랍기만 하다. 저자는 빌 게이츠의 자선사업이란 관용의 탈일 뿐이고, 보건과 환경 분야를 장악하고 신자유주의 체제를 강화한다고 본다.
빌 게이츠에 의해 생겨난 신조어 '자선 자본주의'는 신자유주의 경제구조 문제와 불평등 문제를 덮어버리고 빈곤 문제를 심화하는 다수의 다국적기업과 긴밀히 결탁되어 있다. 저자의 입장은, 빌 게이츠를 포함한 억만장자들의 자선 활동이 끼치는 악영향이 크고 그렇기에 그 활동들은 각국 정부와 시민들의 통제 아래 놓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은 오늘날 빌 게이츠 제국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마이크로소프트 연대기부터 상세히 서술한다. 서평에서는 빌&멀린다 게이츠 재단에서 관심을 보이는 보건 분야에 주목해본다. 아무래도 팬데믹 상황이니 더 관심이 가는 부분이기도 하다. 빌 게이츠는 2011년 세계보건총회 자리에서 "백신은 상당히 세련된 기술입니다. 비용이 많이 들지 않고 접종법도 간편합니다. (중략) 193개 회원국이 백신을 자국 보건 체계의 주축으로 삼아야 합니다."(105쪽)라고 역설한다. 저자는 백신이 좋은 방법이기는 하나 제약 산업에 이익이 되지 않더라도 하나의 대안이 된다면 공평하게 재원이 지급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런데 WHO는 제약 회사에 수익이 발생하지 않는 자연적인 치료법은 진전시키려 하지 않는다.
말라리아만 해도 쑥 종류를 우려먹으면 근절될 수 있다는 효능이 입증됐으나, 게이츠 재단의 지원 아래 WHO는 쑥에서 추출한 원료인 아르테미시닌의 사용을 금지한다. 그 대신 게이츠 재단이 만든 비영리기구 '패스 말라리아 백신 이니셔티브'의 재정 지원으로 개발된 백신인 모스콰이릭스 투입을 장려한다.
"사실 게이츠 재단은 유엔을 비롯한 여러 국제기구의 최고 의사 결정 단계에 개입할 수 있으며, 게이츠 일가는 WHO의 고위급 간부들과도 연락이 닿는다."(107쪽)
저자는 보건 분야의 정책 우선 과제를 선정할 때 게이츠 재단의 영향력이 꽤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게 문제라고 본다. 더 해로운 다른 질병이 많은 지역에서 말라리아 하나에만 역점을 둔다든지, 전염성 없는 만성질환 연구는 등한시하면서 에이즈와 소아마비 연구에만 우선권을 부여한다는지, 결핵, 설사, 모자 영양 결핍이 아동 사망률 75퍼센트의 원인이 되는데도 그런 연구는 게이츠 재단의 자금 지원을 적게 받는다든지 하는 예가 나온다.
저자가 지적하는 근본적인 문제는 초국적 권력을 가진 게이츠 재단의 활동은 어떤 민주적 통제도 받지 않는다는 점이다. 미국 기반의 이 자선 조직은 세금 문제 외에는 공공기관에 활동 내역을 보고할 의무가 없다. 이 재단은 막대한 자금으로 학자들과 NGO, 언론의 입을 막고 있다. 국제조직의 의사 결정까지 좌지우지할 정도다.
빌 게이츠를 비롯한 그의 재단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을 다룬 책이다. 기존 언론에 알려진 '기부 천사'의 겉모습이 아닌 '자선 자본주의자'의 실체를 볼 수 있다. 이 책의 부록으로는 '자선 자본주의의 과거와 현재'가 수록되어 있다. 토론토대학 보건정책과 교수 앤 엠마누엘 번의 글인데, 록펠러 재단과 게이츠 재단의 실상과 그들에 의해 설정되는 세계 보건 의제를 담고 있다. 2011년 5월 세계보건총회 자리에서 빌 게이츠가 한 말로 서평을 마무리해본다.
"우리의 재원을 보다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방식에 관해 고민해봤는데, 특히 한 가지 분야가 눈에 띄었습니다. 바로 백신 분야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나는 앞으로의 10년을 백신과 함께하는 시기로 만들기 위해 여러분이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이 무엇인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114쪽)
빌 게이츠가 위의 말을 한 지 10년이 지난 시점인 2021년 현재,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세계는 팬데믹 시대를 살고 있다. 언제 종식될까. 집단면역의 기준이 되는 백신 접종률에 도달할 때까지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