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b? 나는 청와대에서 일할 거야! job? 시리즈 35
박용찬 지음, 정종석 그림, 김은경 감수 / 국일아이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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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일아이의 <Job?> 시리즈를 몇 권 읽은 적이 있다. 모두 4차 산업 혁명 시대 유명 직업 스페셜 관련 책이었다. 기존의 이 시리즈는 1권 방송국 편을 시작으로 34권 제과제빵 회사 편까지 출간되었고 이번 책은 35권 청와대 편이다. 특별히 이 책을 아이와 함께 읽고 싶었던 이유는, 다른 직업군과 달리 청와대 편은 관련 직업을 아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정치, 사회 분야에 대한 관심으로 확장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솔직히 내가 궁금하기도 했다.

 

이 책의 '정보 더하기'를 보면 고려 문종 때부터 1991년 지금의 청와대 모습을 갖추기까지의 역사를 간추려준다. 대통령의 의무,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을 해당 임기와 함께 간단하게 정리해주고, 대통령 비서실 조직도와 정부 조직도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도표화해서 보여준다. 유익한 페이지들이라고 생각한다.

 

태우(이왕이면 이름을 다른 것으로 하지. 동명의 대통령도 있었는데...)는 대통령이 꿈이다. 태우는 친구들과 함께 의전비서관인 이모 덕분에 청와대를 견학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국민소통수석 홍보기획 행정관의 안내를 받는다. 국민소통수석비서관은 국민의 청원과 여론을 확인하고 관리하면서 비서실장과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역할을 한다. 과거의 홍보수석이 바뀐 이름이다. 이 책에서는 이야기 속 아이들이 "헷갈려요."라고 외칠 만큼 다양한 직책들이 소개된다. 그래서 글작가가 준비한 카드는 '역할극'이다. 또한 책 말미의 워크북을 통해, 본문 내용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할 수 있다.

 

태우와 친구들, 이모, 홍보기획 행정관 아저씨가 각각 역할을 맡아서 환경 문제, 사교육 문제, 대북정책 문제에 대한 회의를 진행한다. 대통령 역할은 태우가 맡았다. 그 와중에 이모가 사회수석 기후환경 행정관으로부터 강원도 산불 소식을 전달받고 아이들은 모두 국가위기관리센터로 이동한다. 역할극을 마친 아이들은 청와대 안의 산책로인 녹지원을 거닐고, 국빈을 모시고 공식 행사를 치르는 장소인 영빈관에 이른다. 우연히 대통령을 만나 사진도 찰칵.

 

청와대의 여러 직업군 가운데 특히 국민과의 소통에 주력하는 사람들에 관심이 갔다. 이 책에는 청와대 국민청원의 내용이 나오는데, 2017년 8월 17일 개설되어 '국민이 질문하면 청와대가 답한다'라는 국정철학을 반영한 것이라고 한다. 30일 이내로 20만 명의 동의라는 전제가 필요하다. 민정수석은 여론조사를 하면서 민심의 동향을 파악하는 일을 하고 국정위, 감사원, 검찰, 국세청, 경찰청 등 5대 사정기관을 관리하고 고위 공직자 비리를 감시하는 일도 한다.

 

시민사회수석은 지역과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민과 소통하고 대화하며 의견을 정부에 보고한다. 기존의 사회제도를 개선하기도 한다. 이런 설명 끝에 나온 영록이의 한마디. "그렇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잖아요."(124쪽) 이모가 어떤 식의 답변이든 할 줄 알았는데, 이후 곧장 아이들의 작은 실천 방안으로 이어진다. 견학을 마친 아이들은 역할극에서 모아진 의견대로 홍보 영상을 만들기로 한다. 환경, 사교육, 대북정책과 관련해 아이들이 할 수 있는 작은 실천을 담아낸 영상물이다.

 

"대통령이 되려면 뭐가 제일 중요해요?"

"국민을 내 가족이라고 생각하고 존중하고 사랑하는 마음 아닐까?"(117쪽)

 

"태우는 어떤 대통령이 되고 싶어?"

"저는 국민을 가족처럼 사랑하는 대통령이 되고 싶어요. 그런 마음이 국민들에게 전달되면 저를 뽑아주지 않을까요?"(139쪽)

 

이런 대사들이 최선일까, 문득 그런 생각을 해본다. 이번 청와대 편은 해당 직업에 대한 내용도 볼 수 있고,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과 정부 조직도를 살필 수 있으며,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작은 실천'의 중요성도 일깨워준다. 청와대에서 일하는 사람이 되겠다는 꿈을 가진 아이들뿐 아니라, 정치와 사회 분야에 관심의 폭을 넓히고 싶은 초등학생이라면 꼭 읽을 필요가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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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이 왔어! 올리 그림책 4
조수경 지음 / 올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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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이 나오는 그림책은 언제나 좋다. 생태에 관한 정보를 주든, 귀여운 그림체로 아기자기한 이야기를 펼치든, 내용 가운데 상징적 요소를 담아내든. 아이는 다른 그림책이나 동물원에서 봤던 동물이 등장하는 것만으로 반갑게 책을 펼친다. 이번에는 곰이다.

<곰이 왔어!> 그림책은, 아주 오래전 마을에 곰들이 내려온 이후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사람들은 수군거리며 곰들을 경계했고 오해도 했다. 차츰 곰들이 사람들의 말과 글을 배우며 사람들과 한 마을에서 어울려 지내게 되었는데, 언제부터인가 사람들 마음에 곰들 때문에 짜증이 생기고 박탈감과 불공평한 느낌도 들었다. 급기야 사람들은 인간 구역을 정해 곰들을 쫓아냈고 무단침입시 사격하겠다고 경고하기에 이른다.

사람들과 곰들이 대치 상태에서 외치는 장면과 대사가 인상적이다.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말들이 가득하다. 이후 펼쳐지는 이야기를 읽어가다가, 궁극적으로 "곰과 사람, 함께 살 수 있을까?"라는 작가의 질문과 맞닥뜨리게 된다.

곰은 동물의 대표로 상징될 수 있고, 아니면 우리가 소외시키는 타자, 이방인일 수 있겠다. 인간들의 자연 파괴와 무분별한 포획으로 동물들의 생존도 위협하는 현실, '우리'를 기준 삼아 우열을 설정하고 편견과 부당한 처사로 우리와 다른 부류를 '틀린' 사람들로 배척하는 현실로, 생각을 뻗어가본다. 내 안의 곰, 우리 안의 곰을 자유롭게 떠올려볼 수 있는 그림책이다.

                            

아이들이 그림책 속의 독후활동자료를 활용해봐도 좋겠다. 가면도 들어 있는데 양쪽 작은 구멍에 고무줄을 끼워보았다. 어른과 아이 혹은 아이들끼리 사람, 곰이 되어 자기 주장을 해보는 역할극도 유용할 듯하다. 조수경 작가의 또다른 글과 그림을 찾아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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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쓰또 탐정단 - 2022 우수환경도서 함께 사는 세상 환경 동화 8
정진 지음, 정현진 그림 / 아주좋은날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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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좋은날 출판사의 환경 동화 시리즈 가운데 최근 <초록별이와 떠나는 기후 여행>을 재미있게 읽었다. 다른 환경 동화들도 읽어보고 싶었는데, 신간이 나와서 반갑게 만나본다. 제목부터 흥미로운 <또쓰또 탐정단>이다. 요즘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환경 정보를 담고 있는 책이 많다 보니, 오히려 아이와 동화를 읽고 싶어졌다. 지식이나 정보를 채우는 것보다 아이들이 일상 속에서 어떻게 환경 문제와 맞닥뜨리는지, 아이들 나름대로 어떤 해결책을 찾아가는지 보는 게, 아직 어린 아이들에게는 더 유익하지 않을까 싶었다.

할머니, 부모님과 함께 사는 남우는, '왕소금 여왕'처럼 무엇이든 절약하고 아끼는 할머니가 못마땅하다. 어느 날 폐지 줍는 할아버지를 돕다가, 인스타그램만 되는 특별한 휴대폰을 건네받는다. 초록색 휴대폰 뚜껑을 열자 인스타그램 영상 하나가 떴는데, 한 아이가 엄청난 규모의 쓰레기 산 아래서 "도와주세요! 제발 쓰레기 산에 마을이 덮이지 않게 해 주세요." 하고 울면서 외치는 장면이었다. 영상에 뜬 날짜는 2050년.

친구 재승에게 휴대폰을 건네자 "쓰레기를 먹고 죽은 동물" 해시 태그가 달린 사진이 나왔다. 친구 단비에게 휴대폰을 내밀자 남우가 보았던 영상이 나왔다. 세 아이들은 인스타그램을 만들기로 한다. 쓰레기를 없애고 줄이는 사람인 '쓰레기 의인'을 찾아 인스타그램에 올리기로 한다. 계정 이름은 또쓰또 탐정단인데, '물건을 또 쓰고 또 쓰는 의인을 찾는 탐정단'의 줄임말이다.

아이들은 미래의 아이가 보여준 '두루산'을 찾아가 여기저기 버려진 물병과 종이컵을 치우기 시작한다. 아이들의 대화 가운데 종이컵이 썩는 데 20년, 스티로폼은 500년 걸린다는 내용과 함께, 페트병 때문에 산불이 날 수 있다는 정보도 나온다.

"페트병 속의 물이 볼록 렌즈 역할을 한대. 그게 빛을 한곳으로 모으고, 그 빛이 열을 발생시켜서 불이 날 수 있대!"(83쪽)

코로나19 때문에 필수품목이 되어버린 마스크 처리에 대한 내용도 나온다. 주성분이 플라스틱인 마스크가 썪으려면 450년이 걸린다고 한다. 동화에서는 마스크를 재활용하는 아이디어를 낸 사람을 소개하기도 하고, 대나무 칫솔이나 유리 빨대 등 플라스틱을 대체하는 여러 물건들을 알려주기도 한다.

과연 아이들은 '쓰레기 의인'을 찾았을까. 중간중간 어서 쓰레기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절박하게 호소하는 미래의 아이는, 쓰레기더미 속에서 구출될 수 있을까. 수수께끼 같은 할아버지가 주었던 휴대폰은 나중에 어떻게 되는 것일까. 동화에서 이런 궁금증을 풀어볼 수 있다.

시공간을 뛰어넘는 교신이라는 점에서, 드라마 '시그널'도 문득 떠올려본 시간. 안타깝게도 잘못되거나 가슴 아픈 과거가 바뀔 수는 없다 해도, 이 동화처럼 미래는 바꿀 수 있을 테니 아직은 희망적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미래의 아이가 시공간을 뛰어넘어 보낸 구조 요청은, 또쓰또 탐정단뿐 아니라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일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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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야, 그만 - 이지연 풀꽃그림책
이지연 지음 / 소동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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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꽃누르미 작업을 20년 동안 해왔다고 한다. 일본식 표현 '압화'를 들어본 적이 있는데, 요즘 '꽃누르미'라고 부르는 줄은 몰랐다. 아이들의 미술활동 시간에 낙엽이나 떨어진 꽃잎을 활용하는 책은 봤지만, 이렇게 색연필이나 물감 대신 풀과 꽃으로 그림책 전체를 꾸민 책은 처음이다. 신기하고 참 예쁘다.

 

아이가 비 오는 창밖을 바라본다. 방안에는 축구공이 덩그러니 놓여 있다. 그림책을 한 장 넘겨봐도 아이는 여전히 비 내리는 창문 밖을 본다. 방안에는 축구공 외에도 공을 뻥 차는 그림, 친구와 노는 그림 등이 놓여 있다. 이때의 장면들에서 아이의 뒷모습이 나왔다면, 이어지는 장면에서는 눈이 동그랗게 커진 아이 모습이 나온다. 비가 그치고 해가 노란색 햇살을 꽃처럼 뿜어낸다. 사실 꽃들이 해 주변으로 흩뿌려진다. 오빠 콩콩이를 따라 동생 찡찡이도 따라나서고, 애벌레도 초록 길을 따라 걸어간다. 웅이도 지숙이도 다인이도 건우도 성호도 각자 개성대로, 제 나름의 옷차림과 몸짓으로 밖에 나왔다. 그런데 어, 또 비가 오네. 아이들은 모두 아랑곳없이 뛰논다.

싫어요

놀 거예요

다 함께 외치자

비야, 그만!

크게 강조되어 꾸며진 '비야, 그만!' 글자 형태가 재미있다. 미음이라는 글자 안에 표정도 있다. 고함치는 아이의 표정이다. 밖에서 놀고 싶은 아이들의 외침이 효력을 발휘한 것일까. 오색찬란한 무지개, 실상은 아름다운 꽃밭 같은 무지개가 나타나고 그 위에서 아이들이 방방, 뿡뿡, 퐁퐁 하며 논다. 그때 누군가 집안에 있던 콩콩이를 부르는 소리. 그전에는 꿈이었구나. 이번에는 상상이 아닌 진짜 해님이 나타났다.

이야기가 끝난 후, 작가는 이 그림책에 나온 풀, 꽃, 잎의 종류가 무엇인지 각각 알려준다. 익숙한 이름도 있지만 생소한 이름들이 더 많다. 수국, 작약, 물망초, 백일홍, 호박넝쿨, 수국, 토끼풀, 단풍뿐 아니라 불두화, 무싸엔다, 버베나, 콩다닥냉이, 개똥쑥, 기생초, 댕댕이덩굴, 양골담초, 무릇, 벼룩나물, 골풀, 천조초 등을 만나볼 수 있다. 다시 그림책 처음으로 돌아가 한 장면씩 천천히 보면 좋겠다. 이 그림에서는 어떤 풀과 꽃과 잎이 사용되었을까 가만히 들여다보면서.

정말 예쁜 그림책이구나 하는 감상에 그치지 않도록, 책 사이에 끼워진 부록에는 꽃누르미를 직접 해볼 수 있는 방법을 담고 있다. 그림책 속 아이들, 애벌레와 해님 모두 방긋 웃어서 좋다. 코로나19 때문에 실컷 밖에 나가 놀지 못하는 아이들이 꽃누르미로 즐거운 기분을 만끽해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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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게이츠는 왜 아프리카에 갔을까 - 거짓 관용의 기술
리오넬 아스트뤽 지음, 배영란 옮김 / 소소의책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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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본이 나온 것은 지금 시점이지만 이 책의 출간 시기는 2019년, 코로나19 이전이다. '추천의 말'을 쓴 목수정의 말처럼, 이 책이 팬데믹 한복판에서 나왔다면 음모론 서적으로 분류되었을지 모른다. 저자는 프랑스 기자이자 작가로서, '한국어판 서문'에서 "지금의 빌 게이츠는 어딜 봐도 생물권 전체에 해가 되는 시스템을 지속적으로 지지하며 시대에 역행하는 인물"(20쪽)로 평가한다. 이는 단적으로 코로나19 퇴치 전략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게이츠 재단은 코로나19 퇴치를 위해 17억 5천만 달러의 투자를 약속했고 검증된 기술인 백신을 지지했다. 그런 한편, 공중보건보다 사익을 우선시하는 원흉인 '제약 회사의 기술 독점'을 옹호하고 특허권을 신봉했다. 1970년대 중엽 빌 게이츠는 그간 사람들이 데이터를 만들어 무상 배포하던 관행을 뒤집고 데이터를 독차지했고 그것을 근간으로 재산을 모았다.

그는 코로나19 이후 또 다른 질병 퇴치를 위해 노력 의지를 보이지만, 실상 생물다양성 소실과 세계화 폭주를 야기한 경제 모델의 지지자다. 저자는 코로나19의 창궐을 오늘날의 경제구조 때문으로 보는데, 생물다양성 소실이 전염병 위기 요인의 증가와 관련된 보고서를 근거로 한다.

이 책은 게이츠 재단의 '자선' 활동의 밑천이 되는 자금 흐름을 근원부터 추적하고자 한다. 개발, 농업, 보건 분야의 국제조직에 대한 빌 게이츠의 자금 지배력은 전 세계의 정부와 시민사회를 움직일 수 있을 정도라니 놀랍기만 하다. 저자는 빌 게이츠의 자선사업이란 관용의 탈일 뿐이고, 보건과 환경 분야를 장악하고 신자유주의 체제를 강화한다고 본다.

빌 게이츠에 의해 생겨난 신조어 '자선 자본주의'는 신자유주의 경제구조 문제와 불평등 문제를 덮어버리고 빈곤 문제를 심화하는 다수의 다국적기업과 긴밀히 결탁되어 있다. 저자의 입장은, 빌 게이츠를 포함한 억만장자들의 자선 활동이 끼치는 악영향이 크고 그렇기에 그 활동들은 각국 정부와 시민들의 통제 아래 놓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은 오늘날 빌 게이츠 제국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마이크로소프트 연대기부터 상세히 서술한다. 서평에서는 빌&멀린다 게이츠 재단에서 관심을 보이는 보건 분야에 주목해본다. 아무래도 팬데믹 상황이니 더 관심이 가는 부분이기도 하다. 빌 게이츠는 2011년 세계보건총회 자리에서 "백신은 상당히 세련된 기술입니다. 비용이 많이 들지 않고 접종법도 간편합니다. (중략) 193개 회원국이 백신을 자국 보건 체계의 주축으로 삼아야 합니다."(105쪽)라고 역설한다. 저자는 백신이 좋은 방법이기는 하나 제약 산업에 이익이 되지 않더라도 하나의 대안이 된다면 공평하게 재원이 지급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런데 WHO는 제약 회사에 수익이 발생하지 않는 자연적인 치료법은 진전시키려 하지 않는다.

말라리아만 해도 쑥 종류를 우려먹으면 근절될 수 있다는 효능이 입증됐으나, 게이츠 재단의 지원 아래 WHO는 쑥에서 추출한 원료인 아르테미시닌의 사용을 금지한다. 그 대신 게이츠 재단이 만든 비영리기구 '패스 말라리아 백신 이니셔티브'의 재정 지원으로 개발된 백신인 모스콰이릭스 투입을 장려한다.

"사실 게이츠 재단은 유엔을 비롯한 여러 국제기구의 최고 의사 결정 단계에 개입할 수 있으며, 게이츠 일가는 WHO의 고위급 간부들과도 연락이 닿는다."(107쪽)

저자는 보건 분야의 정책 우선 과제를 선정할 때 게이츠 재단의 영향력이 꽤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게 문제라고 본다. 더 해로운 다른 질병이 많은 지역에서 말라리아 하나에만 역점을 둔다든지, 전염성 없는 만성질환 연구는 등한시하면서 에이즈와 소아마비 연구에만 우선권을 부여한다는지, 결핵, 설사, 모자 영양 결핍이 아동 사망률 75퍼센트의 원인이 되는데도 그런 연구는 게이츠 재단의 자금 지원을 적게 받는다든지 하는 예가 나온다.

저자가 지적하는 근본적인 문제는 초국적 권력을 가진 게이츠 재단의 활동은 어떤 민주적 통제도 받지 않는다는 점이다. 미국 기반의 이 자선 조직은 세금 문제 외에는 공공기관에 활동 내역을 보고할 의무가 없다. 이 재단은 막대한 자금으로 학자들과 NGO, 언론의 입을 막고 있다. 국제조직의 의사 결정까지 좌지우지할 정도다.

빌 게이츠를 비롯한 그의 재단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을 다룬 책이다. 기존 언론에 알려진 '기부 천사'의 겉모습이 아닌 '자선 자본주의자'의 실체를 볼 수 있다. 이 책의 부록으로는 '자선 자본주의의 과거와 현재'가 수록되어 있다. 토론토대학 보건정책과 교수 앤 엠마누엘 번의 글인데, 록펠러 재단과 게이츠 재단의 실상과 그들에 의해 설정되는 세계 보건 의제를 담고 있다. 2011년 5월 세계보건총회 자리에서 빌 게이츠가 한 말로 서평을 마무리해본다.

"우리의 재원을 보다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방식에 관해 고민해봤는데, 특히 한 가지 분야가 눈에 띄었습니다. 바로 백신 분야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나는 앞으로의 10년을 백신과 함께하는 시기로 만들기 위해 여러분이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이 무엇인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114쪽)

빌 게이츠가 위의 말을 한 지 10년이 지난 시점인 2021년 현재,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세계는 팬데믹 시대를 살고 있다. 언제 종식될까. 집단면역의 기준이 되는 백신 접종률에 도달할 때까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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