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그거 봤어? - TV 속 여자들 다시 보기
이자연 지음 / 상상출판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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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 'TV 속 여자들 다시 보기'에서 명료하게 드러나듯이, 이 책은 스물아홉 개의 방송 프로그램에 담긴 여성에 주목한다. 차례 구성을 보고 예전에 재미있게 봤던 프로그램들이 많이 있어서 궁금증을 가졌다. 저자가 여성주의 관점으로 어떤 맥락에서 이야기를 풀어갈까 하고.


가령, 나는 하이킥 시리즈의 경우 남녀의 죽음이라는 결말에 '사랑이 대체 뭐라고?' 하는 의문을 품었다. 이 책에서는 그 시리즈 속 '책상'이 가지는 가구 이상의 의미를 풀어가서 흥미로웠다. 독자가 본 것이든 아니든, 이 책에 나온 내용을 살피면서, 자신의 감상과 비판에 새로운 접근 방식을 더해보거나 미처 생각하지 못한 시각을 발견해보는 계기로 삼을 수 있다.


이 책은 드라마에서 구현된 여성 캐릭터의 의미를 서술하거나 예능에서 나타난 남녀 발언권의 비중 혹은 차별을 문제 삼는다. 경연 프로그램에서 드러난 젠더 문제, 우리 안의 선입견을 돌아보기도 한다. 그 외에도 드라마, 애니메이션, 상담이나 추리, 육아 등 다양한 예능 콘텐츠에서 우리가 불편함을 느끼게 되는 지점을 알려주고, 동시에 응원하며 선망하고 지향할 여성(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나는 어떻게 낭비되고 있을까?"(29쪽)


저자가 해당 프로그램을 비판하면서 스스로 경각심을 일깨우는 위의 질문을 던졌을 때, 이 말이 정말 많이 와닿았다. 자신도 모르게 콘텐츠가 내포하는 불합리하고 문제적인 장면에 맞닥뜨릴 때, 무의식적으로 그것에 잠식되며 나를 잃을 수 있다는 말에 절대 공감하면서. 개인의 자각과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특히 어린이 전용 채널의 문제점을 지적한 부분을 보면서, 단순히 아이의 눈과 귀를 막는 것 이상의 비판적 시각과 안목이 필요하겠구나 싶다. 나부터, 그리고 아이에게도.


책 구성의 특별함이 있다. 각 프로그램에 대해 서술한 다음, 두 개의 질문(하나 혹은 세 개도 있다.)을 제시하는 식이다. 예를 들면, <연애의 참견>에서 곽정은의 "진중한 공감"을 서술한 후, 저자는 여러 연애 상담 예능에서 '연애'에 접근하는 태도가 어떠했는지 비교해보고 자신의 가치관에 부합한 방식을 묻는다. 또한 과거의 나에게 연애 조언을 한다면, 현재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관을 꼽는다면 무엇인지 질문한다. 한 프로그램 속 타자로서의 여성을 관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의 삶에 적용해보자는 것이다.


애교 많고 예쁘고 사랑받는 여성의 갇힌 이미지에서 벗어나, 여성의 재능이 마음껏 발휘되어 성장하고 꿈을 이루며 여성 간에 연대하는 모습, 어머니, 가정 주부와 별개로 개인적 역할과 수행 능력을 펼쳐가는 모습, 그런 여성(들)을 담아내는 콘텐츠가 많아지기를 바라게 된다. 사회 현실을 반영하는 데 머물지 않고 건강하고 유의미한 여성상을 그려내는 방송이란, 관련 종사자들의 몫이기보다 시청자들의 날카로운 피드백, 깨어 있는 문제의식이 더해진 결과이리라.


한 편씩 재미있게 읽으면서, 잠시 멈추어 생각해볼 수 있는 책이다. 당연한 불편함, 불쾌함을 지나친 예민함으로 몰아세우는 분위기, 그냥 한바탕 웃고 시청률 혹은 조회수 올리면 그만이라는 식의 게으른 제작 관행, 거기에 늪처럼 빠져들다가 '나'를 잃어버리는 줄도 모르는 위험성을 일깨워보는 시간이었다.




[출판사가 제공한 책으로, 개인의 주관대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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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마음이 이런 줄 알았더라면 - 속으로 울고 있는 내 아이를 위한 거울부모 솔루션 10
권수영 지음 / 21세기북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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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자녀 양육서를 잔뜩 쌓아놓고 읽은 적이 있다. 아이를 직접 키우기 전에 미리 준비하자, 머릿속에 가득 채워넣자 하는 마음으로. 지인의 세 살 아이가 뭔가를 집어던지는 것을 보고 놀란 일이 계기였던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식사하는 자리에서 그런 모습을 보이는데도, 아이를 제어하기는커녕 요즘 일상이라며 웃어넘기는 부모들에게 더 놀랐다. 아이도 없던 때였는데 집에 돌아오자마자 검색을 해보고 관련된 책도 찾아봤다. 그럴 때는 부모가 어떻게 대처하는 게 맞는지, 나라면 어떻게 할까 하고 생각해보면서 자녀 양육서를 읽는 게 의미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머릿속에 채웠던 세부 내용들은 희미해지고 "아이를 작은 어른, 인격체로 대하자", "아이의 몸과 마음 상태를 세심히 관찰하자" 등의 핵심만 남긴 채, 내 아이를 하루하루 새롭게 만나는 날들이 펼쳐지고 있다. 내 아이의 마음을 더 잘 알아가고 싶어서 <아이 마음이 이런 줄 알았더라면>이라는 책 제목에 끌렸다. '더 안아주기'의 개념이 눈물 나게 와닿았던 <치유하는 인간>의 저자라서 더 읽고 싶은 자녀 양육서다. 참고로, 이 책은 <공감육아>(2013)의 개정증보판이다.


이 책은 '미러링'(mirroring)의 개념을 전제로 시작한다. 그것은 아이 마음을 거울처럼 반영해주는 일이다. 저자는 아이에게 행복한 자화상을 선물하는 좋은 부모를, 미러링을 잘하는 '거울부모'(mirroring parents)라 칭한다. 한마디로 "거울부모란 자녀의 숨겨진 감정에 주목하고, 자녀의 장점을 밝게 비추고 조명할 줄 아는 부모"(8쪽)다. 이 책의 여러 사례, 대화를 보면서, 스스로 거울부모인지 아닌지 자기점검을 해볼 수 있다.


-아이: 숙제가 너무 많아서 힘들어.

-부모(1): 너만 숙제하는 것 아니잖니. 다른 아이들도 그렇게 불평하니?

-부모(2): 숙제가 많아서 다 못할까봐 부담스럽고 버거운 거구나, 우리 딸.

(166쪽)


부모(1)처럼 답변한다면, 더 이상 대화는 이어지지 않거나 아이가 "알았어요. 앞으로 찍소리하지 않을게요" 식으로 말을 끝내고 만다. 부모(2), 곧 거울부모는 아이의 감정언어를 다르게 표현하면서 아이 감정을 비춘다. 마음의 문을 열게 된 아이는 침울하고 부정적인 자기 모습을 거두게 된다. 이로써 거울부모가 된다는 것은 아이와의 소통과 교감 차원을 넘어, 아이의 자아상까지 영향을 미치는 듯하다.


이 책은 거울부모가 되기 위한 단계를 열 가지로 보여준다. 첫 단계는 아이들과 가슴높이를 맞추는 것이다. 아이들의 감정에 머물러 마음속 깊은 곳을 느껴봐야 한다. 그래야 따뜻하게 보듬는 공감의 말이 나온다. 이 책에서는 아이 고민에 대한 부모의 같잖은 대답과 가슴높이를 맞추는 대답을 비교해서 보여준다. 세부적으로는 머리높이, 눈높이, 가슴높이의 대화를 제시한다. 저자는 눈높이에 맞추는 것으로는 부족하다고 말한다. 실제 예를 보자. 부모가 스마트폰만 보고 있는 자녀에게 하는 말들이다.


-머리높이: 너 몇 시간째야? 이제 그만 봤으면 좋겠어.

-눈높이: 너무 재미있어서 숙제, 학원 생각도 안 해서 좋지? 그래도 네가 알아서 그만 보면 좋겠어.

-가슴높이: 엄청 재미있나 보네. 그만 보라고 하면 속상하고 화나겠지? 계속 그것만 보다가 숙제할 시간이 없어 짜증날 텐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

(32쪽. 대사가 길어 압축, 변형해봤다.)


거울부모가 되기 위한 다음 단계는 착한 아이에 대한 환상을 버리는 것이다. 어른들이 아이들을 보고 버릇없다, 말대꾸한다는 개념부터 재고해보게 된다. '왜'가 아닌 '무엇'을 물어야 한다는 미묘한 차이도 수긍해본다. 학교 가기 싫다는 아이에게 "도대체 왜 가기 싫어?"라고 묻는 것은 아이에게 "그러면 안 돼"라고 야단치는 것으로 들리는 반면, 아이 내면의 욕구와 감정에 다가가는 말은 다음과 같다.


"우리 딸이 학교에 가기 싫은 무슨 이유가 있는 모양이구나. 그럼, 학교에 안 가면 뭘 하고 싶니?"(44쪽)


이 책에는 거울부모가 되기 위한 여러 단계로, 아이의 감정을 읽어줌으로써 자존감을 높이는 대화법, "구나(관찰), 바라고(욕구), 느꼈나 보다(느낌)"를 활용한 실제적인 공감 연습, 아이의 문제행동 이면의 숨은 이유와 감정을 들여다보기, 칭찬보다 공감을 우선시하기, 판단을 중지하고 욕구를 탐색하는 거울 되기, 감정단어를 많이 확보하여 아이에게 공감 표현하기, 거울부모 서약서를 작성하고 매일 연습하기 등이 나와 있다.


"아이가 지하실에 부모 몰래 숨긴 감정이 많으면, 지하실에 자신만의 거울이 생긴다."(136쪽)


마음속 지하실, 먼지 낀 거울에 비친 아이의 모습이라니! 뭔가 경각심을 주는 표현이다. 자녀가 왜곡되고 암울한 자신만의 거울을 가지게 된다면, 그것은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고 분명히 그 책임은 부모에게 있을 것이다. 자녀가 하는 말에 부모로서 제대로 반응하지 못하는 일상이 쌓인다면, 자녀는 부모 앞에서 말문뿐 아니라 마음의 문도 닫아버릴 터이다. 저자는 거울에 비친 왜곡된 모습을 지우도록 돕는 사람도 부모라고 강조한다.


"진정한 거울부모는 자기 아이의 가슴뿐 아니라 아이 주위의 친구들과 타인까지도 비출 수 있어야 한다."(186쪽)


이 표현을 보면서, 거울부모가 된다는 것은 성숙한 어른이 되는 것과 동등한 과정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거울부모가 되기 위한 단계를 모두 서술한 후에, 구체적인 상담 사례를 담았다. 병원 가는 것을 두려워하는 아이, 따돌림을 당하는 것 같은 아이, 스마트폰 게임에 중독된 아이 등 열한 가지 사례에 해당하는 공감의 대화를 자세히 소개해준다.


이 책은 자주 등장하는 개념인 '공감'의 의미를 풀이하는데, 저자의 다른 책인 <치유하는 인간>에도 서술된 개념이다. '공감'(empathy)의 어원을 보면 '고통 안으로'(into suffering)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는 것. 길을 가다가 웅덩이에 빠진 사람을 봤을 때, 그를 구하기 위해 손을 내민다면 '동정심'(sympathy)이지만, 공감은 웅덩이 안으로 내려가 그 바닥에서 함께 우는 적극적인 감정이입이다. 웅덩이든, 지하실이든, 저자가 비유하는 의미는 고통스러운 내면 세계다.


이처럼 '공감'을 저자의 의미로 수용했을 때, 굉장히 낯설고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가볍게 혹은 함부로 누군가에게 "공감해요"라는 말을 할 수 없을 만큼, 깊은 이해의 경지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공감의 중요성을 깨닫고 아이에게도 잘 적용하고 있다고 여겼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스스로 경계하게 된다. 내 기준의 공감이 아니었을까. 아이 입장을 생각한 공감의 말이었을까.


진정한 '거울부모'가 되고 싶다면, 아이와 '공감'의 대화를 제대로 나누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봐야 한다. 특히 유아기 자녀를 둔 부모가 읽으면 좋을 듯하다. 아이의 마음속 지하실에 부정적인 생각과 느낌이 쌓이는 일 없이, 밝은 조명으로 비추는 부모의 거울 역할이 너무도 중요한 첫 시기이기에... 공감은 머리가 아니라 마음으로 하는 것, 그것도 내 마음이 아니라 아이의 마음에 머물며 더 깊이 들어가보는 것. 그 의미를 되새겨본다.




[출판사가 제공한 책으로, 개인의 주관대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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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덩! 개구리 수영 교실 제제의 그림책
에스터르 판 덴 베르흐 지음, 최진영 옮김 / 제제의숲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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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그림책은 처음이다. 이렇게 귀여운 그림책은 오랜만이다. 연일 계속되는 무더위에 보기만 해도 시원해지는 책이어서 기분 좋았다. "개울가에 올챙이 한 마리 꼬물꼬물 헤엄치다"로 시작되는 동요 '올챙이와 개구리'도 떠올리며, 아이와 함께 즐겁게 읽어보는 시간. <풍덩! 개구리 수영 교실>을 살짝 구경해보자.


물속에서 태어나 올챙이로 헤엄쳤으니 개구리면 당연히 수영을 잘하리라 생각했다. 작가는 그런 평범한 발상을 뒤집어, 개구리들에게 물장구 수준이 아닌 제대로 된 수영을 가르쳐보고 싶어 한다. 수영 교실 선생님은 두꺼비 파드, 귀염둥이 주인공은 개구리 홉이다.


홉은 생김새부터 특별하다. 다른 개구리들에 비해, 작은 꼬리가 아직 남아 있고 앞다리가 조금 덜 자랐다. 그래도 차근차근 선생님의 가르침을 따라가는 홉이 대견스럽다. 처음 물에 뜨기, 물장구치기, 배영, 잠수, 평영, 다이빙까지, 파드 선생님의 조언을 명심하면 누구나 해당 과정을 잘 통과할 수 있다. 실제로 아이에게 수영을 가르치게 될 때도 도움받을 수 있는 말들이 많다. 재미있는 과정은 그림책에서 '변장하고 수영하기'가 있다는 사실이다. 마녀, 호랑이, 해적 등으로 변장한 개구리들이 헤엄치는 쇼가 펼쳐진다.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우면서 긴장감 넘치는 장면은, 홉이 수초인 줄 알고 올라섰던 곳, 더구나 가장 낮아서 골랐던 다이빙대가 점점 위로, 더 위로 올라가면서 그 정체가 밝혀지면서 도망치듯 풍덩하는 장면이다. 위기가 기회라는 말처럼, 지금까지 남들보다 느리게 수영을 배우던 홉은, 이 장면 이후 반전처럼 파드 선생님으로부터 "최고야, 홉! 아주 잘했다!"는 칭찬을 듣는다. 개구리들이 어떻게 수영을 배워가는지, 또한 주인공 홉의 모습은 어떠한지 가만히 물속을 들여다보듯 그림책을 넘겨보는 재미가 있다.


남보다 특별하고 느린 홉이 과연 수영 졸업장을 무사히 받을 수 있을까. 이런 궁금증을 안고 그림책을 읽어봐도 좋을 테지만, 우리의 배움은 결과만큼 과정의 의미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아이에게 가르쳐주는 데, 정말 좋은 그림책이 아닐까 싶다.


홉이 매번 수영 교실에서 보여준 모습에서 인상적인 장면들이 있다. 홉은 배영 중 엉뚱한 방향으로 헤엄치다가 예쁜 나비를 만나고, 잠수하는 동안 엄마에게 가져다줄 예쁜 돌멩이를 발견하며, 얼떨결에 다이빙을 한 후에 물속에 박힌 어떤 물건을 찾아낸다. 모든 배움의 바탕에는 홉과 같은 호기심과 즐거움, 그리고 성실함이 필요할 것이다. 남보다 빨리 가고 남과 비교해서 잘하는 게 배움의 본질이 아닐 터이다.


물속 풍경이 상세해서 아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크고 작은 여러 물고기, 곤충도 만날 수 있고 특히 달팽이는 훈련 조교처럼 수영 교실의 단계마다 등장해서 웃음을 준다. 수영 강습을 받다가 오히려 물을 더 무서워하게 된 나의 기억도 떠오르면서, 아무쪼록 아이는 홉처럼 즐기면서 수영을 배울 수 있으면 좋겠다. 수영뿐 아니라 다른 것들도 그렇게 배워갔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보게 되는 그림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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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모 있는 교육 - 다시 쓰는 교육, 지속가능한 교육 공동체
윤은성 지음 / 미디어샘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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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학부모가 되지는 않았지만, 오래전부터 막연한 걱정을 품고 있었다. 현재 학교 교육 현장 속으로 아이를 보내도 괜찮을까. 돌아보면 조용히 순응하며 지내온 학창 시절이지만, 마음이 많이 갑갑하고 숨막혔던 시간들이다. 부모님이나 선생님들의 강요보다는 스스로 만든 굴레 탓이 컸지만, 나에게 '대학 입시'가 주는 압박감은 왜 그토록 지독했을까 싶다.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면?"이라는 가정이 무의미하기에, 미래의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아이에게 학교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지인의 아이가 어깨동무대안학교에 다닌다고 했다. 네트워크로 전국에 여러 학교가 있다는 사실에 놀랐고, 구체적으로 어떤 교육 철학을 담은 학교일지 궁금했다. <쓸모 있는 교육>이라는 제목보다는, 그곳의 윤은성 교장이 저자라서 읽고 싶었던 책이다. 차례 구성을 보자, 반복되는 '다시'에 눈길이 간다. 이 책은 크게 '다시 묻다, 다시 고민하다, 다시 시작하다, 다시 그리다, 다시 세우다, 다시 쓰다'로 나누어져 있다. 그래, 다시 살펴보자! 이런 마음이 든다. 이미 안다고 생각하고 변하지 않는다고 단정해버린, 대한민국 교육 현실에 대한 나의 굳어진 마음부터 깨고, 책 속으로 들어가본다.


'다시 묻다'에서 저자는 항상 되물어야 할 질문들을 던진다. 교육이란 무엇인가. 저자는 "교육은 한 사람이 자신을 세울 뿐 아니라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살 수 있도록 돕는 과정"(21쪽)이라는 정의를 일깨운다. 그런 교육에서는 등수나 등급이 아니라 삶을 이야기하고 삶을 꿈꾸게 한다. 가치에 따른 우선순위를 재정립해야 한다. 학벌이나 학위보다 자아실현과 인간다움, 취업과 연봉보다 자기다움과 꿈을 사는 인생이 더 우선이어야 한다. 그런 가치 기준으로 교육 목표를 정해야 한다. 더구나 코로나19로 인해 기존의 모든 교육 방식에서 벗어난 혁신이 필요하게 됐다. 1장에서 저자가 던지는 궁극적인 질문은 다음 한 가지다. 학교는 왜 필요한가?


'다시 고민하다'에서 저자는 항상 확인해야 하는 본질들을 말한다.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교육을 회복하자. 저자는 학교보다 학생, 건물보다 사람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실제로 어깨동무대안학교는 건물이 없다. 저자에 따르면 "학교는 진정한 스승과 제자의 만남이 이루어지고 동기와의 끈끈한 우정과 평생을 이어갈 공동체 의식이 만들어지는 현장"(55쪽)이어야 한다. 인생에는 정답이 없지만 정답이 있다면 나의 답을 찾는 것이라는 말이 마음에 와닿는다. 그렇다면 학교는 나를 찾고 나의 길을 찾는 데 도움을 주는 곳이어야 할 텐데, 이후 책 내용은 그 구체적인 모습을 담아낸 것이다.


저자는 교육의 기초라 할 수 있는 바른 인성 교육을 강조한다. 인성과 실력을 두루 갖춘 온전한 교육이 되려면 가정과 학교가 함께 협력해야 한다. 대다수 대안학교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부모 교육이란다. 인성 교육은 프로그램으로 완성되지 않고 교사의 역할이 중요한데, 교사는 학생들 개개인에게 맞는 조언자로, 아이들의 인성 지킴이로 애써주어야 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어깨동무대안학교의 교육 철학을 자세히 담고 있다. 어깨동무는 파트너십, 협업, 우정, 네트워크를 의미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 교육 철학은 청정교육(CLEAN Education)이다. 다섯 가지로 세분화하면, Community(공동체), Leadership(리더십), Experience(경험), Accelerated(가속화), Nature(자연)이다. '가속화'의 개념은 학생 하나하나가 자기만의 속도로 달릴 수 있게 하는 교육을 의미한다. 한 아이도 포기하지 않는 교육이라는 선포가 특별하게 다가온다.


저자는 어깨동무대안학교의 청정교육이 따라갈 모델로 서당을 꼽는다. 서당은 학습과 관계성의 공동체다. 개별화 교육을 실시하고, 인성과 실력을 모두 중시한다. 어깨동무대안학교에서는 동서양의 고전 교육을 필수로 삼고, 읽기와 생각하기, 쓰기와 말하기의 네 가지 공부를 기본 바탕으로 한다. 단순히 학교 교과목을 따라가는 공부가 아니라, 진짜 공부란 무엇인지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교육의 문제점은 '생각하기'를 간과한 게 아닌가 싶다. 그래서 이 부분을 더욱 주의 깊게 살펴봤다.


책 제목 <쓸모 있는 교육>의 의미가 무엇일까. 저자는 앞서 언급한 청정교육 철학, 네 가지 공부의 기초를 토대로 "모두가 가는 길이 아닌 내가 가야 하는 길로 가도록 돕는 교육"(237쪽)을 쓸모 있는 교육이라고 말한다. 모든 나를 나답게 살도록 하는 게 쓸모 있는 교육이다. 저자는 마무리 장인 '다시 쓰다'에서 항상 기억하고 싶은 마음들을 담는다. 학교 운영자들, 부모들, 교사들, 학생들에게 각각 전하는 당부를 덧붙인다. 에필로그에서 저자가 꿈꾸어온 교육이 여운처럼 남는다. 삶을 위한, 아이들이 행복한, 세상 모든 것으로부터 배우는, 스스로 미래를 창조해 나가도록 돕는 교육.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것이 변했지만 교육 현장 또한 변화의 파도에 휩쓸렸다. 온라인 교육이 단지 팬데믹 시기뿐 아니라 앞으로도, 또한 전 세계적으로 자연스러워진다면, 과연 학교의 존재 이유는 뭘까. 이 책은 이런 질문에 대한 답변이기도 하다. 인성 교육에서 가정, 부모의 중요성을 강조한 대목도 공감하며 읽었다. '청정교육'으로 표방된 교육 철학과 네 가지 공부의 기초 부분을 보며, 소위 '혁신'을 내세우는 교육 정책 혹은 프로그램의 밑거름은 결국 올바른 방향성과 삶을 통찰하는 공부여야 한다는 진리를 일깨운다. 대안학교에 관심이 있든, 공교육 안에서 변화를 꾀하든 이 책은 부모를 비롯한 교육 종사자들 모두 읽어볼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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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한 숨
조해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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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이 죄가 된 사람, 고통스러운 위안 등의 표현도 인상적이지만 새로운 트랙에 익숙해져가는 지난한 순례, 그 길의 고단함이 와닿았다. 상관없다고 외면한 사람, 감정의 점 잇기로 삶의 터널에도 출구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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