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를 부탁해 - 이은아 박사의
이은아 지음 / 이덴슬리벨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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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치매 증상이 하나둘 늘어서 불안한 사람

v 치매 가족력이 있어 예방하고 싶은 사람

v 치매 초기에 효과적인 치료를 원하는 사람

v 치매 가족을 돌보고 있는 사람

이 책 뒤표지에 제시된 독자층이다. 솔직히 여기에 해당사항은 없다고 생각했다. 다만 가족 중에 뇌혈관질환을 가진 분이 계셔서 뇌 건강에 대한 책을 꾸준히 찾아 읽는 편이고, 이 책 역시 그런 차원에서 선택한 정도였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이 책은 내게 새로움과 각성을 안겨주었다. 기존에 나왔던 책들로 인해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치매 정보에 대해, 그동안 몰랐거나 간과했던 사실을 일깨워주었다.

"치매는 쓰나미처럼 갑자기 '쾅' 하고 찾아오는 병이 아닙니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라는 옛 속담처럼 일상생활 속에 작은 습관들이 쌓이면서 야금야금 뇌세포가 죽어 가고, 결국 치매라는 병으로 진행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세요."(33쪽)

이 책에서는 치매가 한순간 찾아오는 병이 아니라고 말하면서, 치매에 걸린 사람들의 젊은 시절 생활 습관과 행동을 분석한 결과를 보여준다. 일정한 패턴을 반복하면 치매 확률도 높았다. 다른 말로 하면, 자신의 생활 습관과 성향을 돌아보고 문제를 바로잡아야 치매를 막을 수 있다. '이제 슬슬 치매 예방을 해볼까' 하는 시기가 따로 있는 게 아니었다. 뇌 건강을 해치는 일상의 사소한 습관들이 쌓여 나중에 치매를 유발할 수 있다는 말이 새삼 무섭게 다가왔다.

이 책은 치매에 잘 걸리는 사람들의 신체적 특징도 보여준다. 어쩔 수 없이 치매에 걸릴 운명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그런 신체적 변화가 있다면 더욱 치매 예방에 주의하라는 차원으로 언급한 것이다. 여기서, 혈관 건강과 어린 시절 영양 상태와 발육 정도가 뇌 건강에 영향을 주고 치매까지 이르게 한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한다.

저자는 치매에 걸리지 않는 비결로 어렸을 때부터 "뇌 회로에 샛길을 만드는 것"을 강조한다. 인간은 늘 하던 대로만 행동하는 습성이 있어서, 늘 사용하는 뇌 회로만 발달되어 있다. 치매는 뇌세포 소실로 익숙해진 뇌 회로도 망가지므로 평소에 샛길 회로를 많이 만들어두면 좋다. 그 방법은 평소에 사용하지 않던 뇌를 반복해서 사용하기, 내가 싫어하는 뇌 활동을 꾹 참고 하기, 익숙하고 편한 습관을 바꾸기 등이다.

"뇌 회로에 샛길을 만드는 데도 적절한 시기가 있답니다. 즉 뇌의 예비 용량, 예비 용적을 늘릴 수 있는 것도 45세 전입니다. 치매에 걸려 뇌 기능이 저하될 때 아직 살아 있는 세포들이 기능을 더 잘할 수 있도록 젊어서부터 뇌 회로에 샛길을 만들어 놓아야 합니다."(150쪽)

요즘 머리가 지끈거리는 경우가 많고 뇌의 과부하 상태를 자주 느끼는 탓인지, 뭔가 정신없고 허둥대곤 한다. 그래서 건망증이 자주 나타나면 뇌가 혹사당하는 신호로 받아들이라는 책 내용이 와닿았다. 저자에 따르면, 이때 수면 부족 상태는 아닌지,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는 것은 아닌지, 화를 많이 내지는 않은지 등 뇌 건강 상태를 돌아보고 뇌세포와 뇌혈관에 나쁜 영향을 주는 행동을 멈추어야 한다.

이 책은 '자가 진단부터 예방과 치료까지, 치매 대백과'라는 부제답게, 치매 자가 진단 설문지, 일명 '가짜 치매'라 불리는 우울증 자가 진단 테스트, 뇌에 좋은 음식과 식사법, 뇌를 자극하는 취미와 수면의 중요성, 기억 훈련 등 평소에 치매를 예방하는 방법이 다양하게 제시되어 있다. 또한 치매로 진단받았을 때와 치매 가족을 돌보게 될 때 어떻게 해야 할지도 상세히 나와 있다.

저자의 입장은 치매란 누구나 걸릴 수 있고 또 치료될 수 있는 병이다. 저자는 치매 증상이 발현되지 않고 살 수 있는 반전의 예, 설령 치매에 걸려도 항상 감사하면서 여생을 잘 살 수 있다는 사례를 보여준다. 만약 내가 치매 진단을 받았거나 치매 가족이라면, 과연 이런 책을 찾아볼 여력이 생길까. 그런 상상마저 멀리하고 싶을 만큼, 치매는 두려움의 또 다른 이름으로 다가오는 게 사실이다. 그래서 내 글은 지극히 '치매 예방을 하고 싶은 독자'로서 한정된 것이다. 다만 지난 22년간 치매 환자와 가족을 만나온 신경과 전문의 이은아 선생님의 당부로, 이 글을 마무리해본다.

"'나는 절대 치매에 안 걸릴 거야'라고 부인하기보다 '내가 만일 치매라면' 하고 가정하며 치매에 대해 알고 대비하면, 누구나 걸릴 수 있는 병이라 해도 이로 인해 삶이 부서지지 않고 100세까지 건강하게 살 수 있습니다. (중략) 치매 가족과의 긴 동행을 아름다운 기억으로 마무리하려면, 환자의 마음으로 자신을 바라보세요. 그리고 자식 걱정, 가족 걱정하는 환자의 마음을 느끼고 앙금처럼 남아 있는 상처가 있다면 빨리 치유하고 회복하는 시간을 가져 보세요."(24쪽, 246-2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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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그 간단한 고백 하나 제대로 못하고 문예단행본 도마뱀 2
김봉석 외 지음 / 도마뱀출판사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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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그 간단한 고백 하나 / 제대로 못하고 / 그대가 없는 지금에사 / 울먹이면서, 아, 흐느끼면서 / 누구도 듣지 못하고 / 알지 못할 소리로 / 몸째 징소리 같은 것을 뱉나니."-박재삼 <갈대밭에서> 중

 

책 제목은 위의 시에서 빌려왔다고 한다. 제목만 얼핏 봤을 때는 스무살 사랑 이야기 혹은 중년의 첫사랑 회고담인가 했다. 그런데 문득 '고백'이라는 말은 남녀간의 사랑뿐 아니라 그 범주가 더 넓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들만 열일곱 명이다. 시인, 대중문화평론가, 만화가, 문화기획자, 드라마작가, 사진작가, 성우, 라디오 PD, 시나리오작가 등 소위 글로 먹고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어서 그들의 필력이 '고백'이라는 지극히 감성적인 단어와 만났을 때 어떤 시너지를 줄지도 궁금했다. 글 자체의 묘미를 맛보고 싶었달까. 결과적으로 정말 잘 쓰는 사람들의 속 깊은 이야기를 들은 셈이다. 필진 가운데 사진작가와 성우의 글은 솔직히 별로 기대하지 않고 읽었다. 그런데 성우의 글은 너무 재미있어서 웃으면서 읽었고, 사진작가의 글은 전체 필진 가운데 가장 내 마음에 깊이 들어왔다.

 

사진작가(자세한 약력을 보니 시집을 낸 시인이기도 하다.) 이훤 님이 쓴 '개인적이고 세세한 34가지 고백' 가운데 일부를 소개해본다.

 

"좋아하는 이들을 떠올려보니 공통된 면이 있다. '곁'이라 부르는 이들 대부분이 스스로의 언어에 정확하려 애쓰는 사람들이다. 꼭 맞는 말을 찾는 일이 스스로에게 중요한 이들. 타인의 유무와 관계없이. 나는 우리 각자가 언어 앞에서 치르기로 하는 수고가 좋다. 그런 정성과 세세함이 좋다. 언어 앞에서 성실해지는 대부분은 말과 마음이 가까웠다. 타자에게도 스스로에게도. 언어로부터 시작되는 것들을 허투루 여기지 않는 사람들이 머물러주어 고맙다."(103쪽)

 

이 대목을 보면서, 나도 말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사람들과 거리 두기를 해왔구나 싶었다. 너무 가볍게 던지는 말, 상대방의 기분을 생각하지도 않는 말, 경청은커녕 듣는 것은 아예 배제된 말, 친하다는 이유로 존중의 그릇에 담지 않는 말 등 같은 공간, 공동체에 있었지만 끝내 가까워지지 못했던 사람들은 대부분 그런 말을 자주 하는 부류가 아니었나 싶다. 이훤 작가가 개인적인 사색의 문장을 고르고 다듬어 여러 사진과 함께 보여주었다면, 저자들 중에는 한 편의 시로 형상화하거나 시나리오 형태로 보여주거나 자기 삶의 여정을 '긴 고백'이라는 정직한 글쓰기로 선보이기도 한다. 어떤 형태가 되었든지 고백의 다양한 층위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좋았다. 실상 어떤 모습으로 담았든지, 궁극적으로 저자들이 하고 싶은 것은 독자에게 건네고 싶은 내밀한 말이 아닌가.

 

만화가 박순찬 님이 쓴 '마스크 뒤'라는 짧은 글과 그림도 좋았다. 잠깐 소개해본다.

 

"돌이켜보면 자유롭게 사람을 만나고 모였다고 해서,

마스크가 필요 없던 시절이라고 해서

마스크를 쓰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싫은 직장 상사 앞에서,

무례한 손님 앞에서

웃는 마스크를 늘 쓰고 있었으니까.

하찮은 고백거리는 늘 마스크 뒤에 있다."(36쪽)

 

여러 저자들의 글을 읽으면서 그들과 비슷한 경험과 느낌을 떠올려보기도 하고, 그들이 쓴 표현들에 공감하거나 감탄하기도 했다. 나는 어떤 말을 머뭇거려왔을까. 그동안 내가 하지 못한 고백을 슬그머니 떠올려보기도 한다. 나 자신에게, 이성에게, 친구들에게, 가족들에게, 그리고 세상을 향해... 마음속에 맴도는 말들을 그때그때 해왔다면, 내 삶은 지금과 많이 달랐을까. 말하기와 관련한 수많은 책들은 어쩌면 처세와 생존을 위한 게 아닌가 싶고, 실상 가정에서든 직장에서든 하고 싶은 말을 꾹꾹 누르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정작 터놓고 얘기하다 보면, 서로의 문법이 다르고 각자의 단어 사전이 달라 어긋나고 엇갈리기도 한다. '고백'이라는 단어와 저자들의 이야기들은 내 안에 숨어 있던 깊은 말을 끌어올려주는 동력이 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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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어린이가 온다 - 교사와 학부모가 알아야 할 디지털 시대 어린이의 발견
이재복 지음 / 출판놀이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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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세상을 좀 더 이해하고 싶은 마음으로 만나게 된 책이다. 이 책의 부제처럼 "디지털 시대 어린이의 발견"에 대해 알아둬야 할 것 같았다. 아이와의 소통을 위해서 필요한 일이 아닐까 싶었다. 막연하게나마 아동문학 속에 나타난 어린이 주인공, 아니면 요즘 아동문학의 독자층인 어린이에 대해 여러 각도에서 조망해줄 책으로 기대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예상과 다른 내용이 펼쳐져서 의외라고 생각했고, 그 점이 흥미롭기도 했다.

 

저자는 SF, 판타지 세계의 원주민들인 아이들을 '새로운 어린이'로 지칭하면서, 아이들이 디지털 기기의 이미지 세계에 길들여지기 전에 스스로 섬세하게 몸의 감각을 동원하고 자기 언어로 표현하는 능력이 활성화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머릿속에 그림을 그려내는 문학의 의미가 더욱 절실해졌다. 저자는 아이들에게 디지털 영상물보다 먼저 책을 읽혀야 한다고 강조한다. 대부분 공감하는 이런 문제제기를 전제로, 저자는 자신이 운영하는 판타지 창작학교의 수업 내용을 소개하면서 다양한 책들을 인용한다. 당장 '새로운 어린이'가 궁금한 독자들에게 레비스트로스의 <신화학>과 그림 형제가 채록한 민담은 조금 낯설 수 있겠다. SF, 판타지 하면 곧장 떠오르는 작품들을 언급하면서 논의를 전개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중간중간 저자가 여기서 왜 이 책을 인용했을까, 이 내용이 '새로운 어린이'와 어떤 관련성이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가지면서 읽게 되었다.

 

부계 출계 전통의 신화에 나타난 부정적인 모성 이미지는, 사실 페미니즘적 관점을 빼놓고 전개하는 것은 무리가 아닐까 싶다. 그런 점에서 <헨젤과 그레텔>의 1819년 판본에 대한 저자의 의미 부여는 조금 억지스럽게 느껴졌다. 그리고 잔혹 동시라 불린 '학원 가기 싫은 날'을 과연 문학성으로 논할 수 있을지, "당위적인 도덕관념을 벗어났다"는 저자의 해석은 이분법적인 게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든다. 다만 모성 신화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감동을 주는 판타지 동화가 나오지 못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 부모가 부재하는 판타지 동화 주인공들이 시사하는 내용(자기 욕망의 주체로 살아가기 위해 어떤 형태로든 상징적 고아 체험을 한다.)은 고찰해볼 여지가 있지 않을까.

 

특별히 6장의 내용을 흥미롭게 읽었다. 저자는 SF, 판타지 길에 들어설 때 안내자로 도나 해러웨이와 어슐러 K. 르 귄을 들고 있다. 권정생의 SF 작품인 <랑랑별 때때롱>도 소개하고 있다. 그 외에도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로알드 달, 크리스티네 뇌스틀링거 등의 작품들도 간략히 언급한다. 기존 근대 인간의 이미지와 근대 이후 사이보그 족의 이미지를 열아홉 항목으로 정리한 내용이 인상적이다. 이후 '민담 읽기의 실제' 편에 이르면, 책 처음부터 나왔던 민담과 '새로운 어린이'의 공통점이 명시된다. 민담은 사이보그 속성을 닮았다. 민담 속 인물과 놀이감각이 뛰어난 아이들도 닮았다. 저자는 민담, 신화 속 인물은 자연계와 인간계의 중개자인데, 이것이 주술적 사고의 기본이라고 말한다. 이런 사고는 모두 서로 연결된 존재라고 보는 것이고, 디지털 시대 아이들이야말로 '사이보그 앨리스들'인 셈이다. '북한의 아동문학' 편에서 저자는, 남북의 아동문학 소통을 위해 유머러스한 놀이 정신의 힘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새로운 어린이'의 특성이 뭘까 궁금해서 읽기 시작한 책이었는데, 민담과 판타지의 공통점, 기존 사고구조를 뒤집는 새로운 인식, 사회의 도덕관념 등 통념을 뛰어넘고 개인의 '욕망'에 충실한 모습 등 여러 측면의 논의를 볼 수 있었다. 신화, 민담, SF, 판타지의 가장 강력한 코드를 '먹는 코드'로 본 관점도 새로웠다. 저자에 따르면 이들 장르는 코드와 기호로 뒤덮인 이야기 세상인데, 요즘 아이들은 그런 세상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여기며 그 속에서 즐거움을 추구한다고 볼 수 있겠다. 평소 생각해보지 못했던 사유를 해본 독서 과정이었고, '새로운 어린이'를 판타지와 관련해 풀어낸 논의라는 점에서 의의를 가지는 책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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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덩이 소동 엉뚱하게 초등 저학년 이상 읽기 시리즈 2
이진아 지음, 전성순 그림 / 출판놀이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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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과 이야기를 좋아하는 아이와 함께 읽을 책을 만났다. 제목과 표지 그림만으로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초등 저학년 이상 읽기 시리즈'라서 좋았다. 초등 고학년 이상의 책들이 모험, 판타지 등 이야기 자체가 흥미진진할 수 있겠지만, 그런 책들은 해당 시기가 되어 읽으면 될 터이다. 연령대에 맞춘 독서에 딱히 매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아이가 그림과 이야기, 그 속에서 할 수 있는 자유로운 상상의 세계를 충분히 누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이 책은 나의 그런 마음에 딱 부합한다.

 

전체 분량도 많지 않고 글씨도 크고 그림도 많이 실려 있다. 글작가와 그림작가가 다른데도, 글의 분위기와 그림체가 꽤 닮아 있다. 둘 다 부드럽고 따뜻한 느낌이다. 크게 다섯 편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는데, 모두 동물들이 나온다. 전체적으로 내용 흐름이 잔잔하다. 표제와 동일한 제목 '엉덩이 소동' 이야기가 그중 가장 극적 요소가 많다고 할 수 있다. 제일 재미있기도 했다.

 

솔직히 '수상한 선인장'을 읽어가면서 어떤 놀라운 비밀이 공개될까 궁금했다. 점층적으로 진행되는 현상 속에서 뭔가 깜짝 놀랄 만한 반전이 숨어 있나 기대하기도 했다. 그런데 나의 예상과는 다른 결말로 마무리되어 순간 '어, 이게 끝인가' 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런 결말이 오히려 상상의 여지를 남겨줄 수도 있겠구나 싶다. 아이와 이야기를 나눌 주제도 꽤 많다. 식물 키우기, 자란다는 것, 선인장이 수상한 이유 등에 대해...

 

곰을 위해 친구들이 준비해주는 '봄날의 크리스마스'는, 이팝나무를 소재 삼은 우정 이야기다. 아기 토끼를 위로해주는 숲속 친구들의 이야기를 담은 '메아리 엄마'에서는, 보름달이 중요한 소재다. '안녕, 별'은 제목처럼 별이 등장한다. 자연과 어우러진 동물들의 이야기라서 각 결말이 더 여운을 준다. 동물들이 함께 힘과 지혜를 모아 각각 곰, 아기 토끼, 별을 위해 애쓰는 모습이 참 예쁘다. 

 

이 동화책은 동물들이 서로 음식을 나누어 먹고 재밌게 어울려 놀고 어떤 문제를 함께 해결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유아들이나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의 일상에서도, 함께하는 즐거움이 많았으면 좋겠다. 앞으로 비대면 사회와 기술진보의 세계가 어떻게 전개될지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아이들의 유년 생활이 삭막하지는 않기를 바란다. 이 동화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그런 바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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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사랑학교 게리 토마스의 인생학교 7
게리 토마스 지음, 윤종석 옮김 / 도서출판CUP(씨유피)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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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게리 토마스의 <부모학교>를 다녀왔다. 그곳에서 몰입하고 집중하며 고개를 끄덕이면서 꽤 만족스러웠다. 그로부터 얼마 안 되어, 같은 저자의 <부부사랑학교>를 다녀오게 되었다. 여러 번 딴생각에 빠지거나 먼산을 바라보게 되는 마음과 끊임없이 갈등하기도 했지만 역시 만족스러웠다. 앞선 내적 갈등은 지극히 본능적이며 이기적인 자아와 인격적, 영적으로 성숙하고 싶은 자아 사이의 부딪힘 탓이 아니었을까. 책을 읽어가는 과정은, 배우자로서의 내 모습을 깊이 성찰해가는 시간이었다.

이 책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경이로운 실체"인 결혼이 어떤 의미인지, 어떻게 결혼생활을 잘 가꾸어가야 하는지 분명한 성경적 관점을 제시해준다. 또한 구체적으로 자신의 삶을 돌아볼 수 있도록 "더 친밀한 연합"과 "더 깊은 사랑"을 이야기한다. 전체 21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장마다 '평생사랑 가꾸기'(해당 장에 대한 자기점검 및 적용질문) 내용과 기도문이 첨부되어 있다.

이 책은 먼저, 결혼을 약속했거나 준비 중인 예비 부부들에게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이들이 이 책을 깊이 있게 읽고 실제 결혼생활에 적용한다면, 소모적인 부부싸움의 횟수가 줄어들 뿐 아니라 배우자에 대한 실망과 기대의 반복으로 몸과 마음이 지치는 일도 없을 것이다. 다음으로 이 책은, 결혼생활 중에 어떤 종류가 되었든 위기감을 느끼는 부부들에게 혹은 한쪽 배우자들에게 꼭 필요할 듯하다.

저자가 강조하는 '위대한 집념'은 하나님 나라의 삶을 추구하는 것, 하나님을 먼저 예배하는 것, 함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것이다. 저자는 하나님의 딸과 결혼했음을 깨달은 후 결혼관이 새롭게 바뀌었다고 말한다. 하나님은 장인이나 시아버지시다. 그런 관점으로 배우자를 바라본다면, 잘못을 지적하는 검사가 아니라 이해하고 공감하는 변호사 입장이 된다. 배우자의 문제를 분노와 원망과 심판의 눈으로 보지 않고 너그러운 눈으로 보게 된다. 그렇다고 저자는 배우자의 명백한 잘못에 대해 두둔하는 것과는 선을 긋는다.

"사람의 행위를 배격하면서도 그 사람 자체를 향해서는 공감을 품을 수 있다. 상대의 반응에 전혀 수긍하지 않으면서도 상대의 고통은 함께 느낄 수 있다. 그것이 열쇠다."(41쪽)

저자는 우리가 이 땅에서 '순례자'라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장차 올 그날, 영원을 소망한다면 자신을 향한 배우자의 반응에 집착하지 않고 오히려 결혼생활을 자신이 배우자를 섬길 기회로 삼게 된다. 마른 우물 같은 사람에게 물을 길으려는 어리석음을 버리고 부어주시는 성령을 구하게 된다. 머잖아 몸이 흙으로 변할 인생을 의지하기보다 천지를 다스리시는 분을 붙들게 된다. 저자에 따르면, 기혼자들도 '수도사'의 마음을 품어야 한다. 그래야 배우자에게 서운함 대신 감격, 원망 대신 감사를 가지게 될 터이다.

독자들마다 저자의 서술 과정에서 오래 머물게 되는 지점이 각자 다를 것이다. 부부 공동의 사명은 무엇인가. 배우자를 당연시해온 부분은 무엇인가. 배우자가 당신에게 바라는 것들이 있는데 모질게 대하고 있는 부분은 무엇인가. 이 책에 나오는 여러 질문들 중에서, 개인적으로 많이 생각해보게 된 항목들이다. '결혼생활'이라는 나무에 물 주기를 잊어버린 적은 없었던가 스스로 물어보게 된다.

"결혼이란 심어 놓기만 하면 저절로 자라는 나무가 아니다. 우리는 설계사와 건축자의 마음가짐으로 결혼생활을 계획하고 벽돌을 한 장씩 차근차근 쌓아 올려야 한다."(190쪽)

저자는 이 책에서 부부간의 친밀한 연합을 향한 여정을 몇 가지로 소개한다. 그 여정은 저절로 되는 게 아니라 의도적인 선택이다. 그러나 의지와 행동을 하나님께 구한다면, 결코 혼자만의 힘겨운 길이 아니다. 저자는 모든 결혼이 실망의 지점에 이르고 모든 인간관계에 궁극적 만족이 없다는 사실을 언급한다. 그리고 이를 "거룩한 순간이요 신성한 환멸"이라고 표현하는데, 이 부분이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결혼생활에서 인간적인 실망과 불만을 품을 때 자칫 자기연민과 후회, 원망이 솟구칠 여지가 많은데, 거기에 함몰되지 않을 방법은 실상 관점을 달리하는 것뿐이기에...

"우리는 지금 결혼생활에 '없는 부분'을 혹평하는 게 아니라 '있는 부분'을 즐거워한다."(256쪽)

"나와 당신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사랑받는 게 아니다(그 필요는 하나님이 이미 채워 주셨다).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일이다."(270쪽)

'있는 부분'을 즐거워하고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자세. 이런 관점은 비단 결혼생활에 국한된 것만은 아닐 터이다. 그동안 나는 어떤 배우자였던가. 냉철하게 나를 돌아보게 된다. 나아가 저자는 고린도전서 13장을 묵상하면서 "나는 배우자를 이렇게 사랑하고 있는가?"라고 자문해보라고 제안한다. 결혼 후에 그 성경구절은 그전과 많이 다르게 다가왔던 게 사실이다. 특히 "사랑은 오래 참고"의 첫 구절부터, 참 어렵구나 하고 느껴졌으니까.

저자는 게리 채프먼의 <5가지 사랑의 언어>와 션티 펠드한의 <행복한 결혼의 뜻밖의 비결> 내용을 간략히 소개해주기도 한다. 두 책의 내용에서 제시한 것은 모두 능동적 요소다. 선물이고 내 쪽에서 주도하는 것이 전제다. 한마디로, 행복한 결혼생활을 원한다면 내가 먼저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결론이다. 저자는 여기에 더해 '은밀한 섬김'을 덧붙인다. 배우자를 위해 뭔가를 하되 배우자가 눈치를 채거나 알지 못하게 하는 섬김 말이다. 이것은 주목받고 인정받으려는 욕심조차 십자가에 못 박혀 이타적 사랑으로 하늘의 상을 기대하는 행위다. 이것 자체가 즐겁고 유익하며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될 수 있다.

아직 돌이킬 기회가 있어서 감사하다. 이 책을 통해, 나의 부족함과 어리석음을, 능동적 사랑의 미비함을, 영원을 품는 굳건한 믿음의 연약함을 돌아볼 수 있었다. 부지런히 먼저, 많이, 궁극적으로 은밀히 사랑하는 삶이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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