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어린이가 온다 - 교사와 학부모가 알아야 할 디지털 시대 어린이의 발견
이재복 지음 / 출판놀이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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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세상을 좀 더 이해하고 싶은 마음으로 만나게 된 책이다. 이 책의 부제처럼 "디지털 시대 어린이의 발견"에 대해 알아둬야 할 것 같았다. 아이와의 소통을 위해서 필요한 일이 아닐까 싶었다. 막연하게나마 아동문학 속에 나타난 어린이 주인공, 아니면 요즘 아동문학의 독자층인 어린이에 대해 여러 각도에서 조망해줄 책으로 기대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예상과 다른 내용이 펼쳐져서 의외라고 생각했고, 그 점이 흥미롭기도 했다.

 

저자는 SF, 판타지 세계의 원주민들인 아이들을 '새로운 어린이'로 지칭하면서, 아이들이 디지털 기기의 이미지 세계에 길들여지기 전에 스스로 섬세하게 몸의 감각을 동원하고 자기 언어로 표현하는 능력이 활성화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머릿속에 그림을 그려내는 문학의 의미가 더욱 절실해졌다. 저자는 아이들에게 디지털 영상물보다 먼저 책을 읽혀야 한다고 강조한다. 대부분 공감하는 이런 문제제기를 전제로, 저자는 자신이 운영하는 판타지 창작학교의 수업 내용을 소개하면서 다양한 책들을 인용한다. 당장 '새로운 어린이'가 궁금한 독자들에게 레비스트로스의 <신화학>과 그림 형제가 채록한 민담은 조금 낯설 수 있겠다. SF, 판타지 하면 곧장 떠오르는 작품들을 언급하면서 논의를 전개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중간중간 저자가 여기서 왜 이 책을 인용했을까, 이 내용이 '새로운 어린이'와 어떤 관련성이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가지면서 읽게 되었다.

 

부계 출계 전통의 신화에 나타난 부정적인 모성 이미지는, 사실 페미니즘적 관점을 빼놓고 전개하는 것은 무리가 아닐까 싶다. 그런 점에서 <헨젤과 그레텔>의 1819년 판본에 대한 저자의 의미 부여는 조금 억지스럽게 느껴졌다. 그리고 잔혹 동시라 불린 '학원 가기 싫은 날'을 과연 문학성으로 논할 수 있을지, "당위적인 도덕관념을 벗어났다"는 저자의 해석은 이분법적인 게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든다. 다만 모성 신화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감동을 주는 판타지 동화가 나오지 못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 부모가 부재하는 판타지 동화 주인공들이 시사하는 내용(자기 욕망의 주체로 살아가기 위해 어떤 형태로든 상징적 고아 체험을 한다.)은 고찰해볼 여지가 있지 않을까.

 

특별히 6장의 내용을 흥미롭게 읽었다. 저자는 SF, 판타지 길에 들어설 때 안내자로 도나 해러웨이와 어슐러 K. 르 귄을 들고 있다. 권정생의 SF 작품인 <랑랑별 때때롱>도 소개하고 있다. 그 외에도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로알드 달, 크리스티네 뇌스틀링거 등의 작품들도 간략히 언급한다. 기존 근대 인간의 이미지와 근대 이후 사이보그 족의 이미지를 열아홉 항목으로 정리한 내용이 인상적이다. 이후 '민담 읽기의 실제' 편에 이르면, 책 처음부터 나왔던 민담과 '새로운 어린이'의 공통점이 명시된다. 민담은 사이보그 속성을 닮았다. 민담 속 인물과 놀이감각이 뛰어난 아이들도 닮았다. 저자는 민담, 신화 속 인물은 자연계와 인간계의 중개자인데, 이것이 주술적 사고의 기본이라고 말한다. 이런 사고는 모두 서로 연결된 존재라고 보는 것이고, 디지털 시대 아이들이야말로 '사이보그 앨리스들'인 셈이다. '북한의 아동문학' 편에서 저자는, 남북의 아동문학 소통을 위해 유머러스한 놀이 정신의 힘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새로운 어린이'의 특성이 뭘까 궁금해서 읽기 시작한 책이었는데, 민담과 판타지의 공통점, 기존 사고구조를 뒤집는 새로운 인식, 사회의 도덕관념 등 통념을 뛰어넘고 개인의 '욕망'에 충실한 모습 등 여러 측면의 논의를 볼 수 있었다. 신화, 민담, SF, 판타지의 가장 강력한 코드를 '먹는 코드'로 본 관점도 새로웠다. 저자에 따르면 이들 장르는 코드와 기호로 뒤덮인 이야기 세상인데, 요즘 아이들은 그런 세상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여기며 그 속에서 즐거움을 추구한다고 볼 수 있겠다. 평소 생각해보지 못했던 사유를 해본 독서 과정이었고, '새로운 어린이'를 판타지와 관련해 풀어낸 논의라는 점에서 의의를 가지는 책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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