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번개를 맞으면 나는 개미가 될거야 연시리즈 에세이 8
장하은 지음 / 행복우물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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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읽은 책 중 가장 아끼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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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번개를 맞으면 나는 개미가 될거야 연시리즈 에세이 8
장하은 지음 / 행복우물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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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번개를 맞으면 나는 개미가 될거야>, 장하은 (행복우물)

작가님의 새 책이 출간되는 날 온다면, 설레는 마음으로 밤 지새울 준비를 하겠습니다.

너무 좋았습니다.
매일 새벽, 방에 불을 꺼두고 침대 위에 앉아 작은 태양 같은 조명 아래 있으면 이 책만 읽고 싶은 나날이었습니다. 읽은 페이지를 또 읽고, 같은 문장을 반복하다가, 홀로 작가님의 글을 더 보고 싶어 책갈피에 적힌 작가님의 인스타에 들어가 보았습니다. 역시나 너무 멋진 분이셨습니다. 제게 책을 읽고 먹먹해진다 함은 작가가 과연 어떤 삶을 살았기에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걸까, 궁금해지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 책들은 곧잘 사비로 구매하여 좋아하는 이들에게 선물해주고 싶어 집니다. 영화 크레딧이 올라갈 때, 빛이 흘러오는 통로도 무시한 채, 가만히 앉아 하염없이 블랙 스크린을 바라볼 때의 여운이었습니다. 응원하는 사람이 한 명 더 생겨 제 삶은 부유해졌습니다.

왜 좋았었냐는 질문에,
“그냥 좋아요”라고 답하면 누군가에겐 성의 없는 대답이겠죠. 그러나 작가님은 맘 속으로 살며시 미소를 짓고 계실 것 같아요. ‘그냥’이라는 한 마디는 이유 없음이 아니라 제3자에게 모두 설득시킬 수 없는, 얽힌 실타래 같은 내 인생 전부, 나란 사람 자체라는 뜻이니까요. 그냥 좋다는 말은 그에게서 내가 보인다는 뜻입니다.

좋았던 이유에 대해 좀 더 이야기하면,
작가님의 글 속에서 주인공이 나인 기억 한 편을 보고 나온 듯했습니다. 놀랍도록 비슷한 모습이었고 똑같은대사를 치기도 했고, 글주인의 생각과 똑같이 했던 행동이 있었습니다. 책을 읽어가면서 계속 멍멍할 수밖에 없던 공기는 글의 주인공과 그때의 나가 너무도 닮아 있어 문장과 문장 사이에 차마 담지 못한 한숨이 제 안에서 느껴졌던 겁니다.

책의 첫 페이지에 적혀 있는 말부터 너무 좋았던 걸요.

‘Before it fades’
-Joseph Cornell, diary entry, 1954

“나의 기억들이 사라지기 전에.”

저도 다이어리 첫 장에 이 문장을 적어 놓았습니다. 잊고 싶은 날은 있지만, 지우고 싶은 나는 없어서요. “제 불안에 많은 관심 가져 주시기 바랍니다.”고 했던 작가님처럼 흔들리는 창가에 갇힌 저의 지난 날들도 관심이 꼭 필요하다며 더 신경 쓰게 되었습니다.

“나는 이런 사람이야. 이런 사람이어야만 했어. 평생을 이렇게 살아왔거든.”

이 말을 꼭 해주고 싶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마치 제가 살아온 방식을 전부 부정하듯 말하던 사람이요. 더 이상 제 삶의 작중인물이 아니라서 이제는 스스로 속삭이듯 소리쳐주고 있는 말입니다. 이 독백을 할 때 어떤 감정이었는지알고 있어, 책 속에서 작가님의 목소리로 듣고 난 이후부터 책에 더 정감이 갔습니다.

“감정을 배출해내듯이 글을 적어 내려가도 부끄러운 마음 하나 없이 문장들을 쳐낼 수 있으니까. 당신이 관심 하나 없는 지루한 이야기를 해서 미안해요. 누군가에게 사과해야 할 이유도 없어서.”

글이 좋은 이유라면, 시공간을 넘나들며 맘껏 떠들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거 같아요. 어떤 말을 해놓고 뒤돌아 후회할 필요 없다는 거. 계산하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을 모두 내뱉을 수 있다는 거.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을 의식해야 할 이유가 없다는 거. 때로는 사람보다 글을 사랑하는 작가님에게서 글을 쓰고 있는 제가 보이던 순간이었습니다.

비가 세차게 내리는 한 카페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듯, 영국의 정취에 조금이나마 배일 수 있었습니다. 아마 날이 개이는 시간까지 그 자리, 그 자세로 마지막 페이지를 끝내 읽고 나가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정말 다 별거 아니었어’라고 속 시원하게 함께 말할 수 있는 날을 기다리면서”요.

작가님에게 보내는 편지가 책을 내주신 성의에 가장 크게 보답하는 방법이라 생각하며 짧게나마 쓴 편지를 부칩니다.

From. 서울에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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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아이즈
사만타 슈웨블린 지음, 엄지영 옮김 / 창비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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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아이즈>, 사만타 슈웨블린 지음, 엄지영 옮김 (창비)

제목 <리틀 아이즈>는 동물 모양의 ‘켄투키’라는 반려로봇의 눈을 말한다. 두더지, 토끼, 까마귀, 판다, 용, 부엉이 등 그 모습은 다양하다. 켄투키는 단순 로봇이 아닌, 리틀 아이즈를 통해 사용자가 소유자의 일상을 볼 수 있는 모니터다. 스타들이 집에서 혼자 지내는 생활을 관찰하는 예능 ‘나 혼자 산다’ 속 마스코트 곰인형 윌슨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그러나 켄투키는 특정인을 지정하여 볼 수 없다. 모든 매칭이 서버에서 임의로 이루어진다.

켄터키의 사용자가 되길 원하는 이들은 ‘관음’적 욕망이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사실 모든 인간에게는 자신도 자각하지 못한 채, 이러한 욕망이 내재되어 있다고 한다. 대표적인 예로,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는 행위도 이에 해당한다. 불을 모두 끈 어두운 장소에서 빛이 흘러 나오는 화면에 집중하는 것이 일종의 관음적 행위다. 인간은 이러한 상황에서 상위의 권력 관계에 놓이게 된다. 남이 나를 볼 수 없는 상태에서, 나는 그 사람의 사소한 모습까지 모두 보게 되는 시선의 비대칭성을 향유할 수 있는 것이다.

켄투키가 어떤 역할을 하는 로봇인지 알게되는 순간, 걷잡을 수 없는 위험성이 예상되고 그것은 범죄로까지 이어지는 공포로부터 불가피하다. 소설 속 켄투키 소유자는 현재 리틀 아이즈 너머로 어떤 사람이 자신을 관찰하고 있는 지 알 수 없다. 켄투키를 방에 두고 바라보는 것 자체만으로 소름이 끼칠 것 같다.

소유자마다 켄투키와의 경험이 다를 수 있으므로, 때에 따라 이것은 생명을 다하게 만들어졌다. 사용자가 오랫동안 접속하지 않거나 배터리가 소진되면 연결이 영원히 끊기고 되살릴 수 없다.

켄터키의 죽음은 인공지능과 로봇의 윤리라는 점에서 논해볼 수 있는 쟁점이 된다. 소설에서는 ‘켄투키 해방 클럽’이라는 것이 등장한다.

“켄투키를 학대하는 것이 개를 땡볕 아래 하루 종일 묶어두는 것만큼이나, 아니 그 반대편에 진짜 사람이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그보다 훨씬 더 잔인한 짓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한 몇몇 사용자들이 클럽을 만들어 이를 해방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는 누군가에게 일상이 된 인스타그램이나 sns. 그 속에서 보이는 모습이 진짜 그들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니면 새로운 가상의 캐릭터로 용인해야 할까. 두 세계는 하나인 듯 구분되어 양가의 감정을 느끼게 한다. 책에서도 현실 세계의 자유와 켄투키 세계에서의 자유에 대해 언급한다. 이 둘이 같지 않은 건 당연하지만, 연쇄 관계로 이어져 있는 건 분명하다. 현실에서 갈망해온 욕망을 자유라는 이름으로 실현시키기 위해 새로운 세계를 만드는 것이 과연 올바른 일인가?

소설은 꿈이라 일컬어지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써내려간, 현재를 기준을 비현실을 실현시키는 욕망의 매개체다. 그러나 단순히 이러한 기능에서 벗어나 때로는 현실로 다가올 미래를 조금 일찍 앞당겨 우려되는 문제들을 사용자가 될 우리에게 생각해보게 한다. 무분별하게 자유로워질 수 있는 세계에서 날뛰는 것을 스스로 절제하도록 하는 가상 캐릭터의 의식을 전달한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changbi_ins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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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잠과는 무관하게 소설Q
강성은 지음 / 창비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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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잠과는 무관하게>, 강성은 소설 (창비)

자몽하다

: 졸릴 때처럼 정신이 흐릿한 상태이다.

과즙이 흘러 내리는 침물 마냥 밤이슬 공기 사이로 배회하는 듯했다.

“강성은의 이야기는 누군가의 불면을 통해 쓰이고 다른 누군가의 깊은 잠과 꿈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 이야기들이 우리를 어떤 위안과 안심과 깊은 잠의 세계로 안내한다면 그것은 강성은의 이야기가 어떤 불안과 슬픔과 불면의 밤에 거듭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김나영 문화평론가”

‘나의 잠과는 무관하게’라는 제목은 결코 잠과 불가분되지 못한 나와 눈쌀 내리는 밤겨울 꼬옥 잡고있는 손처럼 아늑하기만 하다.

오후 2시쯤 켜켜이 켜져가는 따사로운 태양의 필라멘트가 흐르는 전류의 물결 정도가 경이롭다. 파도가 흘러 지나간 자리 그 잔류에 흔적이 남아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다. 꿈 속이다. “비현실적인 햇살이다.” “경이로운 하루의 연속이다.”

그렇게 잠에서 깨고 난 후 이야기를 잊지 않으려 끄적여봐도 선명하지 않는 잔상은 당신에게 쥐어줄 수 없다. 이 책이 그렇다. 냄새를 볼 수 없는 건 때에 따라 불투명한 기억이 순간을 더 황홀하게 장식하기 때문이다. 강성은 소설의 냄새는 친구들과 저녁놀이 끝날 무렵, 집에서 부르는 엄마의 목소리처럼 우리에게 같은 추억을 그리워하게 한다.

노오랗게 빛바랜 페이지에서 태양의 온도가 보인다. 책은 비현실에서 순식간에 일어나고 지나가는 스토리가 한낮의 우리에게 이정표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색칠된 스케치북이다. 자몽한 상태에서 가벼이 둥둥 떠다니는 발걸음으로 뛰놀면, 이것이 현실인지 꿈인지 모를 이성을 지구 밑으로 내던진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실제 사건을 재구성하여 만들었습니다’라는 표현처럼 우리에게 온기를 쥐어주고 간다. 나의 잠과는 무관하게, 꿈에서나 현실에서나 똑같이 사람들이 따뜻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장마철 의자들이 비를 맞고 있으면 누군가 비닐로 덮어 놓았다. 겨울철 눈이 쌓이면 지나가던 사람이 다가와 쌓인 눈 위에 장갑 낀 손으로 누군가의 이름을 썼다가 쓱 치우고 지나갔다. 가을에는 낙엽이 떨어져 수북이 쌓였다. 봄이 오면 겨우내 집 안에 있던 사람들이 몰려나와 빈 의자를 찾기가 어려웠다. 밤이면 길고양이들이 모여 앉아 잠을 잤다. 가끔은 취객이 의자에서 구부린 채로 새우잠을 자기도 했다. 아침에 누가 와서 깨울 때까지.”

밤만 되면 찾고 싶은 책이 있다. 냉정한 책들은 잠시 멀리 한다. 시달리다가 겨우 누울 수 있는 시간을 온전히 누리고 싶다. 그래서 <나의 잠과는 무관하게>는 생각해보면 신기하다. 현실과 비현실을 구분하지 않는다. 찬 것들은 찬 대로 품어내어 그 역시 타닥 타닥 튀어오르는 벽난로의 불꽃이 된다. 피부를 스쳐간 기척이 소외된 존재들에게 목소리를 들려준다.

오늘 밤은 잠과 무관하게 이야기를 꿈꿔보자.

*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후기입니다.
@changbi_ins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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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의 그림자
황정은 지음 / 창비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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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의 그림자>, 황정은 (창비)

아주 사소한데도 불구하고 그 시시함을 알아차리는 곳이 글 속에 있다. ‘남들은 모르겠지, 그러나 내가 알아’. 타인과 자신을 구별짓는 이 생각이 우리가 마구 뒤섞인 집합 속에서 그들을 완전히 배제시키고 남는 반달 안에 나란 사람을 떠올린다.

남들은 모르겠지, 그러나 내가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꼭 무재씨 같이 말하려는데, <백의 그림자>을 만났고, 무릎 위에 동그라미를 그려가고 있었다.

“쥐며느리를 아십니까.
알죠.
콩 벌레가 아닌 쥐며느리입니다.
둘이 다른가요?
다릅니다.
전혀 다른 생물입니다,라고 말하며 유곤씨는 탁자 위에 작은 동그라미를 몇번 그렸다.
콩 벌레는 몸을 이처럼 동그랗게 만들 수 있지만 쥐며느리는 몸을 둥글게 만들지 않습니다.”

재정의하는 곳에서 나를 나로서 새롭게 생성시킨다. ‘애매하고 참 모호하다’ 빙글뱅글 돌아가는 캔버스 바닥 위 에 내가 있을 곳을 점 찍는 행위(의미 부여)는 꼼꼼히 비계를 점검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백의 그림자>는 첫 장부터 나만이 풀어내는 해석을 갖게 되었다. “도대체 그림자가 뭐야?”라는 생각이 줄곧 든다면, 작가 입장에서 아주 만족스러울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인생은 지도 없는 여행지다. 정답을 알고 발걸음을 내딛는 게 아닌, 그 반대다. 좋은 질문이 우수생을 만든다. 모르는 걸 물어가는 게 잘 사는 거라 답한다, 지금.

그림자를 그림자로 인식하지 못한다면, 그렇다면 당신은 아주 따뜻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어쩌면 그림자의 의미를 빨리 알아채는 건 칙칙한 날, 창가에 툭툭 떨어지는 무심한 노크질에 익숙해져 버린 거다.

솔직한 게 진심일까, 아니면 진심이라 솔직한 걸까.
처음에는 진심이라 솔직한 줄 알았는데, 무재씨를 가만 보면 솔직한 게 진심은 또 아닌 것 같기도 하다. 그림자에 덮여 있으면 빛은 가려지기 마련이니까. 실제로 무재씨 같은 사람 옆은 편하게 느껴진다. 순간적인 반짝임에 매몰되지 않는, 면으로 둥그랗게 둘러싸여 있는 사람. 뾰족한 꼭짓점에서 그림자 쪽을 바라보면 무재씨가 보인다.

100m 달리기를 질주하고 딱 멈춰 섰을 때 무재씨는그 자리에서도 무재씨일 것 같다.

<백의 그림자>에서는 따옴표를 찾아볼 수 없다. 그래서 지금 이 말이 은교씨가 하는 말인지, 무재씨의 목소리인지 다시 대화 처음으로 돌아가 손으로 하나 하나 짚어야 한다. 그럴 수록 이들 속으로 점점 빠져들어 간다. 드리워진 그림자였다. 그림자를 따라가지 말라는 무재씨의 말에도 마치 처음부터 운명이었다는 듯이 숲으로 들어간 은교씨처럼. 첫 장부터 그림자는 나라는 걸 보았다.

“걸어갑시다, 하며 손을 당기자 별다른 저항 없이 걷기 시작했다. 한 줌 손에 이끌려오는 무게가 묵직한 듯 가벼워서 나는 쓸쓸했다.”

*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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