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의 그림자
황정은 지음 / 창비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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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의 그림자>, 황정은 (창비)

아주 사소한데도 불구하고 그 시시함을 알아차리는 곳이 글 속에 있다. ‘남들은 모르겠지, 그러나 내가 알아’. 타인과 자신을 구별짓는 이 생각이 우리가 마구 뒤섞인 집합 속에서 그들을 완전히 배제시키고 남는 반달 안에 나란 사람을 떠올린다.

남들은 모르겠지, 그러나 내가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꼭 무재씨 같이 말하려는데, <백의 그림자>을 만났고, 무릎 위에 동그라미를 그려가고 있었다.

“쥐며느리를 아십니까.
알죠.
콩 벌레가 아닌 쥐며느리입니다.
둘이 다른가요?
다릅니다.
전혀 다른 생물입니다,라고 말하며 유곤씨는 탁자 위에 작은 동그라미를 몇번 그렸다.
콩 벌레는 몸을 이처럼 동그랗게 만들 수 있지만 쥐며느리는 몸을 둥글게 만들지 않습니다.”

재정의하는 곳에서 나를 나로서 새롭게 생성시킨다. ‘애매하고 참 모호하다’ 빙글뱅글 돌아가는 캔버스 바닥 위 에 내가 있을 곳을 점 찍는 행위(의미 부여)는 꼼꼼히 비계를 점검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백의 그림자>는 첫 장부터 나만이 풀어내는 해석을 갖게 되었다. “도대체 그림자가 뭐야?”라는 생각이 줄곧 든다면, 작가 입장에서 아주 만족스러울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인생은 지도 없는 여행지다. 정답을 알고 발걸음을 내딛는 게 아닌, 그 반대다. 좋은 질문이 우수생을 만든다. 모르는 걸 물어가는 게 잘 사는 거라 답한다, 지금.

그림자를 그림자로 인식하지 못한다면, 그렇다면 당신은 아주 따뜻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어쩌면 그림자의 의미를 빨리 알아채는 건 칙칙한 날, 창가에 툭툭 떨어지는 무심한 노크질에 익숙해져 버린 거다.

솔직한 게 진심일까, 아니면 진심이라 솔직한 걸까.
처음에는 진심이라 솔직한 줄 알았는데, 무재씨를 가만 보면 솔직한 게 진심은 또 아닌 것 같기도 하다. 그림자에 덮여 있으면 빛은 가려지기 마련이니까. 실제로 무재씨 같은 사람 옆은 편하게 느껴진다. 순간적인 반짝임에 매몰되지 않는, 면으로 둥그랗게 둘러싸여 있는 사람. 뾰족한 꼭짓점에서 그림자 쪽을 바라보면 무재씨가 보인다.

100m 달리기를 질주하고 딱 멈춰 섰을 때 무재씨는그 자리에서도 무재씨일 것 같다.

<백의 그림자>에서는 따옴표를 찾아볼 수 없다. 그래서 지금 이 말이 은교씨가 하는 말인지, 무재씨의 목소리인지 다시 대화 처음으로 돌아가 손으로 하나 하나 짚어야 한다. 그럴 수록 이들 속으로 점점 빠져들어 간다. 드리워진 그림자였다. 그림자를 따라가지 말라는 무재씨의 말에도 마치 처음부터 운명이었다는 듯이 숲으로 들어간 은교씨처럼. 첫 장부터 그림자는 나라는 걸 보았다.

“걸어갑시다, 하며 손을 당기자 별다른 저항 없이 걷기 시작했다. 한 줌 손에 이끌려오는 무게가 묵직한 듯 가벼워서 나는 쓸쓸했다.”

*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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