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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주 보는 한국사 교실 3 - 남북국 시대가 펼쳐지다 (650년~940년) ㅣ 마주 보는 한국사 교실 시리즈 3
윤재운 지음, 김민선 그림 / 웅진주니어 / 2008년 12월
평점 :
처음에 표지를 보고 왜 마주보는 한국사 교실1편에서 나온 사냥꾼이 왜 나왔을까?
라는 의문을 가졌다. ^^
그런데
책을 읽다보니 해답을 알수있었다.
상경 용천부에서 발굴된 용머리상을 가운데 두고 오른쪽은 신라의 유명한 해상왕 장보고와 왼쪽은 발해의 담비 사냥꾼이라는 것을 ...
마주보는 한국사 교실 3 의 소제목이 "남북국 시대가 펼쳐지다" 인데
남북국시대는 삼국을 통일한 신라와 고구려의 대조영이 세운 발해의 부흥기를 다뤘다.
고구려, 백제를 통일시킨 신라는 한반도의 주인이 되었지만 평화와 번영을 누리다며 불교의 문화를 꽃피우게 된다.
고구려을 통해서 들어왔던 불교의 문화가 신라시대에 활짝 꽃을 피웠던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가 잘 알고있는 불국사는 신라의 대표적인 불교 건축물이다.
불교를 신라땅에 우뚝세우고 싶었던 신라사람들의 바람이 담겨있는 불국사
그리고
또다른 대표적인 석굴암
원래 이름이 석불사였다는것은 책을 읽고 다시 알게된 역사의 지식
석불사보다는 석굴암이 더 안성맞춤의 이름인것같다.
경주에 가서 토함산에 올라 유명한 석가모니를 돌로 표현한 곳이라 생각하고 스치듯 보았던 그 석굴암을
책을 통해서 자세하게 알게되어 정말 다행이다
동그란 굴속에 앉아계신 석가모니라고 알고있었는데
맨위는 연화문 천개석, 그밑은 쐐기돌, 또 그밑은 궁륭판석, 소감실,이마돌, 조상판석, 연암석...
이렇게 심오한 뜻이 담겨있을줄이야...
은은한 미소를 짓는 얼굴 .. 이마위에 박힌 보석이 토함산위로 해가 떠오르면 빛이나는 찬란한 모습을 고등학교 경주수학여행때 본적이 있다.
얼마나 장엄했던지... 다시 그때 기억이 새롭게 떠오른다.
책을 읽다 보니 신라시대 불교부분에서 원효대사의 초상화를 보았다.
신발을 내려놓고 의자에 앉아있는 모습
그런데
발해사람들의 생활과 문화를 읽고 새로운 세력의 성장과정을 읽다보니
유사하게 그려진 신라후기의 최치원 초상화를 보게되었다.
너무나 흡사하게 앉아있는 모습이 당시 그 시대 초상화는 이런모습이었다는것을 알수있었다
신라는 고구려,백제를 물리쳐서 삼국통일을 했지만 삼국통일후 사회통합을 제대로 이루지못해
다시 견훤이 세운 후백제, 궁예가 세운 후고구려, 왕건이 고려를 세워
후삼국의 시대로 들어서게 되었고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은 왕건에게 항복을 하고 고려에 귀순을했다.
그러나 신라의 마지막태자는 어찌 천년의 사직을 하루아침에 남에게 내줄 수 있느냐며 금강산으로 들어가 허름한 집을 짓고 삼베옷을 입고 풀뿌리를 먹으며 나라를 지키지 못한 설움을 삭이며 살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마의 태자라고 부르며 마지막 충절을 기렸다.
후삼국은 고려 왕건으로 인해 통일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발해역시 해동성국이라 불리며 전쟁도 없이 번영을 누리다 보니 나라의 힘을 키울생각은 않고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생활에 물들어가며 결국은 세력을 키운 거란에 의해 230여년동안 동북아시아의 강대국으로 세력을 떨쳤던 발해는 한 달만에 무너져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거란의 백성으로 핍박을 받으며 사느니 고려로 몰려온 유민들을
따뜻하게 맞이해준 고려의 왕건 그를 통해 한민족이 완전하게 정치, 사회, 문화적 통합을 이루어졌다는
작가님의 글처럼
신라의 삼국 통일이 민족 통일의 출발점이었다면 고려의 후삼국 통일은 실절적인 민족통일의 완성이라고 할수있다.
책속에서 그려진 고려의 왕건은
인품이 뛰어나고 힘을 앞세우지않고 관용을 베풀며 사람을 배려하는 넓은 마음이 있기에...
책을 읽고 난 뒤 스스로 내용을 정리하고 생각해 보는
"나만의 한국사 정리 노트"
마주보는 한국사 교실을 읽고 나서 아이의 한국사 지식을 완벽하게 만들어 주는 웅진 주니어의 넓은 배려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