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길 내고향 서울 6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엮음 / 서울특별시시사편찬위원회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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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란 무수한 보행자들이 남긴 잎맥 같은 것이다

길을 단순히 사람의 통로로만 본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사이를 이어주는 하나의 통로로 그 의미를 넓혀 정의하였다.

 많은 외세의 침략을 받아 온 우리의 선조들은 길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한 듯 하다.
조선시대 육조거리를 제외하고는 우마차 한 대가 간신히 지날 수 있고, 포장이 안 되어 질퍽하거나 울퉁불퉁 하고, 곳곳에 통행에 방해가 되는 나무와 가옥 앞에 시전을 내며 초가 지붕을 드리워 말을 타고 지나기에도 어렵게 만들었다.
이에 대해 실랄한 비판과 함께 개혁을 주장한 조선 후기 실학자나 해외 문물을 직접 보고 온 개화파에 의해 개선 되었지만, 주로 외국 선교사들에 비친 조선의 모습은 아직까지 미개한 수준이라고 해야할까?

 길에서 시작된 일체 침략
 1905년 을사늑약을 체결한 뒤 일제는 통감부를 설치하였다. 통감부에서 가장 우선으로 시작한 사업은 도로 개수 였다.
1906년 4월 칙령 제19호 <치도국관제> 발포하고 1907년부터 본격적으로 도로 개수사업에 착수하게 된다.
일제는 이른바 '신작로'를 만들어 우리나라를 문명국으로 만들었다고 자랑한다. 하지만 신작로는 말 그대로 새로 만든 길이라는 뜻으로, 자동차가 다닐 수 있을 정도로 넓게 새로 낸 길이다 보니 많은 수탈로 인해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 민족의 아픔이 되었다.

 해방 이후 우리 힘으로 본격적인 개발에 나섰지만 전쟁으로 피폐해진 우리에게 해외 원조만이 살 길이었다.
쿠테타로 잡은 정권은 단기간 내 경부고속도로를 개통시켜 그들의 치적을 삼고 그들의 당위성을 인정 받으려 했다.
의도야 어찌되었든 경부고속도로를 통해 우리나라는 엄청난 발전과 물류 흐름의 혁신을 가지고 왔다.

 이러한 물류의 기능으로서의 도로를 뛰어 넘어 아시안게임, 올림픽, 엑스포, 월드컵등 세계 대회를 치르며 역사와 문화의 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현재는 도로체계가 도로명주소로 변경되며 선조들의 위인이나 기념물의 이름을 따와 그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삼국시대부터 중심이었던 서울, 그 역사만큼이나 다양한 인물과 사건으로 이야기를 풀어 볼 수 있는 서울의 길.
오늘도 무심히 그냥 스쳐가지 말고 길 이름에 따른 역사나 이야기를 찾아 보는 건 어떨까?
길 위에서 만나는 역사 인물들을 간략히 소개하며 마무리 합니다.
겸재길 - 정선           고산자로 - 김정호        광평로 - 광평대군         난계로 - 박연          다산로 - 정약용         대건로  - 김대건          도산대로-안창호           둔촌로 - 이집          무학로 - 무학대사         백범로 - 김구          사가정길 - 서거정     사임당길 - 사임당
세종로 - 세종            소월길 - 김정식           소파길 - 방정환            양녕로 - 양녕대군    왕산로 - 허위           원효로 - 원효대사        율곡로 - 이이               은천길 - 강감찬        을지로 - 을지문덕         인촌로 - 김성수       지봉길 - 이수광        진흥로 - 진흥왕
충정로 - 민영환         토정길 - 이지함           퇴계로 - 이황               하정로 - 유관           효령로 - 효령대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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