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쩐지 고전이 읽고 싶더라니 - 나답게 살자니 고전이 필요했다
김훈종 지음 / 한빛비즈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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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삶을 꿰뚫는 촌철살인으로 우리에게 지혜를 주는 책. 하지만 너무 어렵다는 것도 사실이다.

동양 철학, 그 시작은 철기의 보급으로 농업 생산량이 비약적으로 증가하며 시작되었다. 수렵채취에서 농경으로 정착했을 때보다, 청동기에서 철기로 변화할 때 농업 생산력은 극적으로 증대된다. 당연하게도 그에 비례해 인구가 늘게 되고 생산력 증가에 따른 여유 시간은 철학을 잉태하게 된다. 이 시기에 제자백가 사상이 나타나 중국 철학사의 근간을 이루게 된 것이다. 이렇게 '오늘만 살던 세상'에서 '내일을 걱정해야 하는 세상'으로 한 단계 진화한 것이다. 하지만 미래에 대한 걱정과 염려가 창궐하는 순간, 인류는 오늘을 살지 못하고, '내일을 사는' 불행하고 가련한 존재로 전락하게 된다. 한가하다는 의미의 '한閒'은 문 틈새로 달을 쳐다보는 형상이다. 수렵에서 벗어나 농경을 하게 되면, 평화로움이 찾아오고 문 틈새로 실컷 달 구경이나 할 줄 알았다. 그런데 정작 농경이 시작되니 달 구경은커녕 샛별 만 구경하는 신세로 내동댕이쳐진 것이다. 농경이 불러일으킨 우리 삶의 족쇄이다. 순리를 거스르는 인간. 오늘의 자아에 집중하지 못하는 인간. 내일만 걱정하고 욕망에 사로잡힌 인간. 공자는 그 시점에 탄생한 신인류의 문제점을 예리하게 지적했다. 자기를 극복하고 결국 오늘을 제대로 사는 인간이 될 것을 강력하게 주문했다. 역사의 다른 이름은 반성이다. 성찰 없이 앞만 보고 내달리는 경주마는 한순간 무너질 수밖에 없다. 특히나 성찰 없는 권력은 잔혹하다. 독재를 부르고, 피를 부르고, 결과론적으로 역사의 후퇴를 부른다.

공자가 자공에게 준 '일생의 키워드 하나'는 '서恕'였다. '서恕'를 파자하면, '여如 그리고 심心'으로 이루어진다. 결국 같은 마음, 다른 사람과 같은 마음을 품는다는 것, 내가 하기 싫으면 남도 하기 싫으니 강요하지 말라는 것. 즉, 공감과 배려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같은 마음이 되어 공감하고 배려하는 것. 이것이 바로 공자가 평생을 바쳐 지켜낼 만하다고 외치는 유고 사상의 핵심 키워드다. 공자가 유독 '서恕'를 죽을 때까지 평생 실천할 개념으로 천명한 건, 자연인 공구로서도 물론 그러하지만 특히나 위정자들이 새겨야 할 덕목으로 적시한 측면이 크다. 권력을 쥐고 백성을 다스리는 자들은 더욱 공감 능력을 발휘해야 한다는 뜻이다. 공자가 그토록 열심히 학문을 닦았던 가장 큰 이유이자 유일한 이유는, 관리로 임용되기 위함이었다. 공자에게 예는 곧 정치다. 정치의 본령은 무엇인가. 백성이 먹고사는 것을 함함하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유학의 유儒는 무엇인가? 사람人이, 머리를 풀어 헤치고而, 비雨 오기를 기원하는 형상이다.

유가는 시체를 처리하는 장례와 기우제를 담당하는 집단에서 시작됐다. 춘추전국시대에 기우제 지내는 사람은 과연 어떤 인물인가?

당시 기우제는 사실상 가장 중차대한 정치 행위이자 고도의 통치 행위였다. 비가 오지 않으면 농사를 망치고, 농사를 망치면 굶어 죽는 것이다. 그러니 기우제를 지내다 비가 안 오면 목숨까지 내놓아야 하는 게, 기우제를 지내는 무당의 임무였다. 유가는 흔히들 오해하는 것처럼 교육부나 문화체육관광부에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재정경제부나 법무부에 가깝다. 국가의 근간이 되는 규범과 먹거리를 책임지는, 핵심 중의 핵심 부서이다. 그러니 유가의 시조인 공자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관리로 임용되어 백성들의 민생을 해결하고자 노력했던 것이다.

공자는 덕치를 정치의 기둥으로 삼았다는 것, 백성들이 부끄러움을 아는 것이야말로 정치의 본질이라고 바라봤다. 묵자는 춘추전국시대 당대의 비극을 바라보면서, 이 사회의 혼란이 어디에서 오는지 탐구했다. 혼란의 궁극을 파헤친 결과, 모든 악의 원천은 도덕관념의 오류 때문이란 진단을 내린다. 여기서의 오류는 사람들이 자기 자신만을 사랑하고 남을 사랑할 줄 모른다는 데 있다.

동양 철학은 자기를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알고 다 함께 잘 살기 위한 학문이었다. 북송의 정호, 정이 형제와 남송의 주희에 이르러 유학이 형이상학적 수준으로 격상되었다. 공자가 죽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정호, 정이 형제와 주희가 죽어야 유학이 제대로 우리에게 전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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