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에 대하여 : 1979~2020 살아있는 한국사
김영춘 지음 / 이소노미아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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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이 '고통에 대하여'이다. 책 제목만 보면 철학 책이겠거니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틀렸다. 정치 이야기이다. 뭐? 정치 이야기! 정치 이야기라면 두말할 것도 없이 질색하는 나다! 정치 너나 잘하라고 해~ 거기에 빨간당 출신이란다! 헐!! 하지만 어쩌랴! 이미 서평단으로 선정되어 책은 내 손에 도착해 있으니...

부산 출신으로, 고 3시절 부마항쟁과 김재규에 의한 박정희 암살 사건을 경험한다.

'서울의 봄'과 함께 고려대학교 영문학과에 4년 장학생으로 입학한 저자 김영춘. 이 대목에서 살짝 배가 아팠다. 꼭 이 문장을 적었어야 했나. 어쨌든 서울의 봄은 뒤이은 전투환의 쿠데타에 의해 꽃도 피워보지 못하고 얼어붙었다. 결국 광주 민주화운동으로 한민족의 뜨거운 염원이 터졌으나 그 상처가 더 컸다. 광주 소식을 전해 들었던 대학생들은 가만히 앉아 공부만 할 수 없었다. 4년 장학생이라는 출세가 보장된 자리, 가족들의 꿈과 희망이라는 자리에 안주할 수 없었던 김영춘은 민주화 운동으로 뛰어든다. 서울대, 연대, 고대가 연합하여 대통령 직선제 요구 시위를 하며, 당시 여당인 민정당 당사를 점령하는 시위에 앞서 주동한다. 이런 활동으로 결국 학교에서 재적을 당한 김영춘은 대통령 직선제를 이루기 위해 김영삼 국회의원의 막내 비서실장으로 자리를 옮긴다. 정치에 발 담그려는 생각이 없었기에 대통령 직선제 발표가 있은 후 다시 학교로 복학하여 제대로 정치외교학을 공부하기로 한다.

독재 타도와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하던 김영삼은 신군부가 창당한 민정당의 노태우와의 합당에 참여하게 되었다. 당시 군소 정당의 영수였던 김영삼은 젊고 패기 있었던 김영춘의 도움이 필요했다. 당시 김영춘은 김영삼이 그곳에서 살아남지 못한 채 정치생명이 끝날 줄 알고 그를 장사 지내주기 위해 그곳으로 향했다. 하지만 김영춘의 생각과 달리 김영삼은 그곳에서 살아남아 대통령까지 당선되었다. 이것이 연이 되어 한나라당에서 16대 국회의원에 당선된다. 하지만 이회창이 당 대표가 되며 다시 보수로 회귀하자 미련 없이 한나라당을 떠나며 개혁 정당을 만들고자 한다. 마침 민주당 계열에서도 분열이 일어나며 열린우리당이 창당되며 이곳으로 당을 옮겨 새로운 도전을 이어간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의 리더십 부재로 지지율이 부진하자 열린우리당은 총선을 앞두고 분열하며 정치를 떠나게 된다. 이후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다시 정치인으로 고향인 부산에서의 재수 끝에 3선에 성공, 해양수산부 장관, 4선 실패에 이르는 정치 이야기이다.

이런 정치인이면 tv에서도 봤을 법한데, 정치에 문외한이라서인지 처음 보는 얼굴과 이름이다. 우리 현대사의 굵직한 일들의 현장에서 직접 눈으로 목격하고 체험한 이야기라 더 믿음이 갔다. 다른 것보다 이 책을 통해 몰랐던 사실을 깨달은 것이 있다.

역설적이게도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세 대통령 집권 시기에 그 이전보다 좋은 정부를 만들었음에도, 나라는 나쁜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경쟁과 효율이 핵심 미덕인 신자유주의의 대유행은 가뜩이나 분열된 우리나라의 사회 통합을 더 위협했다. 효율 지상주의는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고용의 불안을 야기했다. 그러자 국민들이 정부의 정책을 신뢰하지 못했다.

평생 고용은 없다. 실직한 다음의 인생은 거의 전적으로 개인이 책임을 진다. 대기업이 아닌 한 기업하기 어렵다. 거시경제 통계는 개선되었을지 몰라도 국민 개인의 삶은 추락했다. 인간 노동의 가치가 떨어졌다. 노동이 상품화되면서 기계나 원료보다 더 못한 대우를 받는 사회가 되었다. 시민들의 저항은 꼭 머리띠 맨 투쟁의 모습이 아니라 '사보타주'의 형태로 나타났다. 젊은 세대는 함부로 결혼을 하지 못한다. 결혼을 하더라도 함부로 아이를 낳지 못한다. 아이를 낳으면 기르기 너무 힘들다. 세계 최고 수준의 자살률이 바로 그런 사보타주의 일종이다. 사람들은 '희망 없음', '살기 힘듦'을 토로하면서 체념으로 저항한다.

이런 저항에는 승리도 패배도 협상도 없다. 비상구가 보이지 않는다. 이런 모습이 만연된 나라는 분명 나쁜 나라이다. 고통을 겪는 건 우리네 민초들뿐이다. 고통을 듣고 치유하는 것이 정치의 역할이었음에도.

과연 정치인들이 이런 고민을 할까? 자기네 밥그릇 싸움이나 혹은 출세의 줄 서기 싸움이나 하기 바쁘지 않을까? 이런 고민을 하는 정치인이 있다는 것에 또 놀랐다. 이런 사람들이 많아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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