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고전 (人生古典) - 동양고전으로 배우는 성찰의 인문학
정형권 지음 / 렛츠북 / 2017년 11월
평점 :
절판


<인생 고전>고전 텍스트의 말씀을 위주로 구성”(6) 했다. ‘말씀이라니, 왠지 숙연해지는 기분. 한문을 거의 모르는 나로서는 한문으로 적힌 동양 고전(동아시아 고전이라고 해야 하나?)을 해설해 놓은 책을 많이 읽어야 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동양 고전을 다룬 책들이 왠지 잔소리처럼 느껴지는 독서 경험을 많이 해서인지, 이제는 짧은 글을 길게 해석하는 주석서 비슷한 책보다는 원전을 되도록 많이 소개하는 책이 좋다. <인생 고전> 역시 좋은 원문(물론 번역한 글들이지만)을 다양하게 읽어볼 수 있어서 좋았다. 흔히 동양 고전에 나오는 책들이 아니라 좀 더 새로운 고전들을 소개해 준다는 것도 마음에 든다.

 

맹자고자 하 15으로 시작하는 <인생 고전>은 시작부터 강렬하다. 왠지 일찍이 이 이치를 깨우치는 사람은 복이 있나니…….’라는 느낌이 든다고 해야 하나(동양 고전을 소개하는 책인데 첫 느낌이 서양의 성서라니. 역시 고전은 하나로 통하는 것인가?)?

 

결국 현대까지 살아남은 고전이라는 장르는 대부분 성공한 처세서에 가까우니 경우에 따라서는 살짝 꼰대기가 진동하고 거부감이 드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그런 도덕적이고 윤리적이고 뻔 한 이야기들이 사실은 어쩔 수 없는 삶의 진리이자 위안이라는 것도 변함없는 사실이다. 고전을 대할 때는 마음을 닫지 말고 활짝 열어둔 상태로 삐딱함이 아니라 배우려는 하심을 가지고 다가가는 것이 분명히 옳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마음으로 <인생 고전>을 보면서 상당히 많은 스승을 만났다. 무엇보다도 안타깝고 눈물이 났던 부분은 <이순신의 장계>. “지금 신에게는 아직 열두 척의 배가 있습니다.”(28)라니. 도대체 왜 그러셨어요? 군관 9명과 군사 6명을 가지고 도대체 무슨 일을 하시려고. 윗대가리라는 놈들이 그렇게 극악을 떨었으면 이 나라 운명이건 백성들 목숨이건 다 팽개치고 달아날 만도 한데, 그 실체도 없는 바보 같은 나라보다는 민초들을 위해서 다시 배 열두 척을 가지고 바다로 나갔을 이순신 장군. 세상에 바보도 그런 바보가 없지만, 이미 계획이 있고 지피지기인 장군의 깊은 뜻을 내 어찌 알려나. 그와 대비되는 선조의 상중에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를 제수하는 교서를 보면 한심하고 염치없기로는 선조만 한 인물도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 비분강개하게 된다(, 동양 고전을 읽다보니, 알지도 못하는 고사성어가 자꾸 내 머릿속에서 튀어나온다).

 

도끼로 바늘을 만들려는 노파의 깊은 뜻은 책을 다 읽어도 잘 모르겠고, 일본 검객 미야모토 무사시의 <오륜서>는 삶을 살아가는 자세를 다시 한 번 고민하게 한다. 이태백의 월하독작 술잔 들어 밝은 달을 불러오고/그림자도 마주하니 세 사람이 되었도다.”에서는 대시인의 감성과 상상력에 감탄하고 질량이 있는 것들은…… 무로 돌아간다.”(70)에서는 그 뒤에 나오는 에너지 이야기를 충분히 공감하면서도 질량보존의 법칙을 들어 딴지를 걸어야 하는가를 고민하게 된다. 152쪽의 기질기성의 차이를 읽을 때는 오홋, 후성유전학, 이라는 생각을 했고, 이제는 <도덕경>을 내 인생 동양 고전으로 삼아 진지하게 읽어보자는 결심 또한 하게 된다.

 

<인생 고전>에 나오는 다양한 원전이 좋았지만, 그 중에서도 최원의 좌우명은 나의 좌우명이 될 것 같고, 제갈량의 <계자서>는 두고두고 읽을 가르침이 될 듯하다.

 

<인생 고전>의 다양한 곳에서 나오는 <채근담>이 사실은 <인생 고전>의 주인공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고, 독서 목록을 넓혀주는 책이 좋은 책임을 생각해 보면 <인생 고전>은 참으로 괜찮은 책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주자는 인격 수양의 2대 강령으로 거경(居敬)과 궁리(藭理)를 들었다. “잡념을 없앤 상태에서 본래 존재하는 이를 밝히고 사물의 의미를 끝까지 탐구하여 깨달음에 이르는 것.”(153) 주자학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지만 새겨두고 실천해 볼 자세이다. <인생 고전>은 화장실에 놓아두고 두고두고 읽으면서 아침저녁으로 내 삶을 다시 한 번 고민해 보기로 했다. 고전은 괜히 고전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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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 꿈, 너무 긴 거 같아. 그리고 지나치게 평범하지 않아? 지루해 죽겠어.”

 

노란분식집에서 라면을 먹으면서 나영이 말했다.

 

우리, 가난한 건 알았지만, 이렇게 돈이 없었나? 꿈이니까 주머니에 몇 십만 원 정도는 있으면 좋을 텐데. 어디 근사한 데 가서 잠도 자고. 꿈인데도 시간 되면 졸려. 잠은 자야 하니까, 계속 집에 가야 하잖아. 어제는 엄마한테 맞기까지 했다.”

 

현수가 투덜거렸다.

 

, 이 나이에도 어머니한테 맞는 거야? 하긴 나도 아빠한테 혼났어. 우리 아빠나 자기 어머니나 진짜 무서워. 어머, 이 나이에, 꿈에서도 어머니래. 암튼, 다시, 어머니 아니고, 너희 엄마, 대개 무섭잖아. , 나도 나희랑 어제 대판 싸웠어. 걔는 꿈인데도 여전히 내 옷, 맘대로 입고 가서 늘려 놓는다. , 그거 평생 대개 억울했나봐.”

 

나영이 웃으면서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었다.

 

근데, 우리 너무 오래 안 하지 않았나? 어차피 꿈인데, 아무 데서나 진하게 한 번 할까?”

 

스무 살 현수가 마흔 살의 현수 같은 표정으로 나영을 보면서 씩 웃었다.

 

뭐래니? 우리 지금 재수생이야.”

 

꿈을 꾸는 마흔 살 나영이 스무 살 나영처럼 얼굴이 벌게지면서 현수를 살며시 노려봤다.

 

그러고 보니 어제 저녁에 잠들기 전에(그러니까 현실에서) 너무 피곤하다고 자기를 밀어내는 나영에게 현수는 이번 주 들어 세 번째로 저 말을 했다. 저녁이면 녹초가 되어 잠들기 바쁜 나영과 달리 아직도(그러니까 역시 현실에서) 체력 관리를 제대로 하고 있는 현수는 우리 너무 오래 하지 않았잖아.’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피곤해. 나한테 이러지 마.’라는 나영의 말에 늘 그럼 누구한테 그래?’라며 서운해 하는 마흔 살 남편.

 

나영은 라면을 집어 올리던 손을 멈추고 물끄러미 현수를 쳐다봤다. 지금 나영이 앞에 앉아 있는 현수는 정말로 스무 살 현수였다. 결혼 전과 후에 몸무게 변화가 2, 3킬로그램도 안 되는 현수였지만, 스무 살 현수는 정말로 마흔 살 현수와는 달랐다. 남편은 나이를 전혀 안 먹는다고 생각했었는데, 이 남자도 완전히 늙었던 거다.

 

맞다! 자기야, 혹시 거울 없어?”

 

나영이 급하게 말했다.

 

내가 뭐 가지고 다니는 거 봤어?”

 

현수가 괜한 소리를 한다는 듯이 한 마디 하고 먹던 라면을 후루룩, 마저 먹었다. 그것도 아주 급하게.

 

맞다. 남편은 뭐든지 아주 급하게 먹는 사람이었지. 지금은 많이 느긋해져서 저렇게 안 먹는데. 후훗, 기억이 새롭네. , 잠깐만? 저 사람 지금 스무 살이지?

 

나영은 갑자기 지금 앞에 있는 현수의 나이를 생각했다. 지금 현수가 스무 살 현수라면 나영도 스무 살이어야 했다. 스물두 살 때 화장독이 올라 완전히 곰보 피부가 되어 버린 나영이 아니라 아직은 매끈한 피부를 유지하고 있는 나영이어야 했다. 둘째를 낳고 10킬로그램이나 불어버린 나영이 아니라 똥배는 있을지언정 그래도 44사이즈와 55사이즈 중간에 간신히 몸매를 걸치고 있던 나영이어야 했다.

 

꿈속에서 나영은 밤이면 집에 돌아갔지만 꿈인데도 피곤해서 잠이 들고, 동생들과 실랑이하느라 거울을 들여다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사실 꿈에서까지 거울을 보면서 한숨 쉴 이유는 없으니까. 스무 살 나영이라면 눈 밑에 기미도 없고 자글자글한 이마 주름도 없고 가슴보다 훨씬 튀어나온 뱃살도 우람한 팔뚝도 없겠지?

 

사실 스무 살 때도 거울 보는 게 그리 좋지는 않았지만, 마흔 살 아줌마가 되면 거울 보면서 나도 한 때는 이라는 탄식을 하게 마련인데, 그 한 때를 왜 꿈속에서 며칠이나 지났는데도 자각하고 확인해 보지 않았던 걸까?

 

나영은 초조하게 가방을 만지작거렸다. 꿈이라고는 해도 왠지 민망한 학원으로는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았고, 전철역에서 거울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사람, 지금 내 모습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꿈이라고는 해도 마흔 살 나를 알고 있으니, 예뻐 보일까?

 

우리, 이런 얼굴과 몸으로 사랑을 했던 거구나. 나영은 정신없이 라면을 먹는 현수를 뚫어지게 쳐다봤고, 자기 라면을 다 먹은 현수는 다 먹은 거야?”라며, 미처 나영이 대답하기도 전에 나영의 라면 그릇을 자기 앞으로 가져가더니 후루룩 먹기 시작했다. 스무 살의 나영은 항상 밥을 반쯤 남겼고, 스무 살의 현수는 늘 나영이 남긴 밥을 먹었다. 사귄 지 1년쯤 지났을 때 현수는 나영이 때문에 자기가 살찐다고 웃었는데. 마흔 살 나영은 이제 두 그릇도 거뜬히 먹어치우는 아줌마가 되었다꿈속에서 현수는 아직도 나영의 밥을 먹는구나. 꿈속에서 나영은 자기 밥쯤은 스스로 야무지게 먹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나영은 현수가 가지고 간 라면 그릇을 살그머니 자기 앞으로 끌어당겼다.

 

, 아직 다 안 먹었어.”

 

마흔 살 나영은 , 하고 웃으면서 젓가락을 라면 그릇에 푹 꽂았다. 마흔 살 현수는 그래, 그래, 하고 웃더니 아줌마, 공깃밥 하나 주세요!”라고 말했다.

 

라면 먹고 공깃밥 시켜 먹는 꿈이라니, 진짜 재미없다.”

 

마흔 살 나영이 말했고,

 

그게 인생이다.”

 

스무 살 현수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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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도시 - 스마트 시티는 어떻게 건설되는가? 한림 SA: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17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편집부 지음, 김일선 옮김 / 한림출판사 / 2017년 11월
평점 :
절판



도시가 생기고 문화가 생기고 문명이 생기면서 호모 사피엔스는 진짜 엄청나게 성공한 포유류가 되어 또다시 도시를 만들고 또 만들고 또 만들어, 나름 성공적으로 생태계도 파괴하고 있고 다른 동물들도 효과적으로 멸종시켜 가고 있다……, 라고 하면 너무 염세적이려나.

 

나는 도시를 좋아하지 않는다. 도시 외에 다른 곳에서 살 용기도 없으면서 도시가 아닌 농촌이 더 많아져야 세상이 좋아지리라는 생각을 막연하게 하면서 살아왔다.

 

하지만 숲을 만들려고 농지를 자꾸 만드는 것도 전 지구적으로는 좋은 일은 아니라고 하고. , 지구 문제는, 도시와 농촌 문제는, 생태계 문제는 참으로 어렵다.

 

그러거나 말거나 지구 위에서 도시는 계속해서 늘어날 것이다. 송도가 됐건 두바이가 됐건 마스다르 시가 됐건, 빈민촌 가득한 어느 개발도상국의 정신없는 도시가 됐건 간에 몇 십 년 안에 지구 인구의 70퍼센트 이상이 도시에서 살게 된다고 한다. 물론 나도 도시를 떠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렇다면 방법은 단 하나, 도시를 스마트하게 만들어야 한다. 지속가능한 성장을 하고 1인당 자원 소비량을 줄이는 도시를 만드는 것만이 인류가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다.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의 저자들은 그런 도시를 스마트 시티라고 말한다.

 

그리고 <미래의 도시>에는 스마트 시티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을 다각도로 고민한다. 전혀 모르는 이야기다? 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알고 있는 내용을 좀 더 진지하게 고민하게 해 주는 기회를 주는 독서를 하게 해주는 책이다. 기능적인 도시를 만들기 위해 에너지를 어떻게 사용하고 어떤 교통수단을 만들 것이며 보건과 물은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를 여러 전문가의 입을 빌려 말해주는 책이다.

 

그 가운데에서도 윌리엄 리스의 도시 지속 가능성 높이기, 특히 재활용, 재사용, 재가공에 필요한 숙련 인력을 길러야 한다는 주장과 근거리 쇼핑에 대한 단상이 좋았고, 사무엘 아브스만의 개인용 지하철을 읽을 때는 왠지 도라에몽이 소개해 준 미래 도시가 생각났다.

 

베덴코트는 도시가 에너지 절감이나 환경보호 목적으로 만들어지거나 확장된 적은 없다.”고 했다고 한다. 하지만 데이비드 비엘로는 도시는 기본적으로는 그런 목표를 추구하는 곳이기도 하다고 했다. 나도 도시는 환경보호를 목적으로 기획되고 설계되었으면 좋겠다. 서울이 이런저런 주민 자치 행정을 기획하면서 예산을 쓸 때도 계획을 짤 때도 그 지역에서 사는 주민들과 함께 고민하는 요즘의 정책 방식도 지능적인 도시를 만들려는 한 가지 노력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의 모든 도시들이 노화된 빌딩 위에는 녹지를 만들고, 도시 농업을 좀 더 확장해 푸른 도시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서울에 모여야만 시민의 요구 사항을 소리 높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좀 더 능동적인 도시들이 더 많이 생겨났으면 좋겠다. 도시는 사회적, 경제적 활동으로 집중하고 가속화하여 다양화 하는 곳”(67)이라고 한다. 그런 도시를 만들기 위해 많은 도시 정책자들이 <미래의 도시>를 읽어보고, 고민해 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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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 날이었다.

워크맨 커버 안에 곱게 적힌 종이.

익숙한 학원 교실.

옆에 앉은 진아.

그 날이 틀림없었다.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일까?

 

물론 꿈을 꾸는 거겠지. 이 뒤에 벌어질 일을 정확하게 알아.

 

나는 이 쪽지를 열어 읽어볼 테고, 쪽지에 적힌 우라질 내용을 읽고 놀라고 당황하면서 울고 이 교실을 황급히 나가겠지.

 

인천으로 가는 지하철에서 내내 밖을 보면서, 머리를 자르고 학원은 그만 다닐까, 하는 생각을 하지만 집에 가서 열쇠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괜히 서러워 집안에서 들려오는 재롱이 소리에 재롱아, 언니가 곧 들어갈게, 들어갈게, 라는 소리만 하다가, 문득, 쓰잘데기 없는 편지만 사실은 거의 소설에 가까운 넋두리였지만- 주구장창 쓰다가 점심시간 무렵에 아빠 회사로 가서 열쇠를 받아오고 집으로 들어가 재롱이를 한참을 안고 울다가 한참 잠을 자겠지. 내일부터는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러다 그 망할 전화가 오겠지. 우리 진짜 헤어진 거냐는 말을 하고, 잠시 머뭇거리던 네가 아니, 라고 말하는 순간이 오는 거야. 그날 오후, 신도림에서 부랴부랴 만난 우리는 그 즐겁고 행복하고 우울하고 화났던 모든 순간을 다 이기고 두 아이의 엄마, 아빠로 지금, 그 누구보다 행복하게 산다는 말을 들으면서 25년을 함께 하겠지. 내가 가진 이 세상 최고의 위안은 바로 당신임을 절절하게 느끼면서, 나는 아이 때문에 시어머니 때문에 친정 부모님 때문에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화를, 당신을 보면서 그렇게 삭히면서 살아가겠지.

 

그럼 이제 이 편지를 열어봐야 하나. 너 우는 거 싫어서, 이만 끝내자는 말이 분명히 적혀 있을 텐데, 이 편지를 보고 또 울어야 하나? 이건 꿈인데? 그나저나, 이렇게 사람들 많은 데서 이 편지를 주고 간 거였어? 우와, 그거 때문에 25년을 괴롭혔지만, 새삼 열 받네. 이 많은 아이들이 내가 울고 나가는 걸 본 거 아니야. 아씨, 쪽팔려. 그래놓고는 다음 날 웃으면서 같이 들어왔어. 어린 건지 미친 건지. 그때는 이렇게 쪽팔린 일인지 몰랐는데.

 

, 그래도 지금은 울지 않겠지. 이 편지, 그때는 내일 저녁에 노량진역에서 태워버렸지. 불나면 어떻게 하려고, 진짜 둘 다 생각이 없다. 라이터 불로 칙, 종이에 불을 붙여서 없애 버렸는데. 가지고 있었다면 좀 더 그럴 듯하게 괴롭혀 줄 수 있었을 텐데.

 

사실 25년 내내 이 편지에 어떤 글이 적혀 있었는지 궁금했었어. 이틀 동안 여러 번 읽어 봤는데, 기억나는 건 너 울게 하기 싫어서 헤어지자뿐이니까. 한 페이지 가득 뭐라고 적어 놓았던 거 같은데. 어디, 한 번 읽어볼까. 지금쯤 그 녀석은 학원 정문을 빠져나가고 있겠네. 그래, 가라. 가서 못 마시는 술이나 실컷 마셔라. 같이 있는 친구는 2년 뒤에 죽을 텐데, 꼭 말려야 해. 대학 가면 MT 가지 말라고.

 

편지를 펼치려다 말고 나영이는 흠칫 놀랐다. 지금쯤 학원 정문을 빠져나가고 있어야 할 현수가 교실로 들어오고 있었다. 발갛게 상기 되어 있는 얼굴이 계단을 뛰어 올라온 게 분명했다.

 

편지, 그거 맞지?”

 

현수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뭐야? 왜 돌아와? 명호랑 집에 간 거 아니었어? 자기, 소주랑 과자 사가지고 명호네 가야지.”

 

나영의 목소리가 컸는지, 여기저기에서 아이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 자기란다.”

 

들었냐? 자기래. 재들 왜 저러냐?”

 

이런, 자기라는 말은 현수 군대 제대 선물로 바꿔 부른 호칭이었지. 여기서는 나랑 너라는 호칭을 썼는데. 아우, 재수학원에서 자기가 뭐냐고.

 

나영의 얼굴은 빨개졌지만, 현수는 다른 아이들 반응은 전혀 상관하지 않았다.

 

맞지? 지금 이거, 그 날이지?”

 

현수가 나영에게 물었다.

 

맞는 거 같은데, 꿈에서는, 자기, 돌아왔네?”

 

나영이 대답했다.

 

꿈인 거 맞지? 근데 무슨 꿈이 이러게 생생하냐?”

 

그러게. 나 진짜 화났었나보다. 자기 돌아오는 꿈도 다 꾸고. 재밌네. , 돌아왔으면 앉아서 수업 받을 준비나 해. 명호가 황당하겠다. 오늘은 학원 안 나오고 돌아갈 거라고 했을 텐데.”

 

나영은 현수의 책상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꿈인데 무슨 공부를 해. 나가자.”

, 그럴까? 잠깐만 이 편지 좀 읽고.”

됐어. 무슨 편지를 읽어.”

, 자기 흑역사지?”

흑역사는 무슨.”

 

현수는 나영이 들고 있는 편지를 잡아채더니 나영의 손을 잡았다.

 

가자. , 참 꿈인데, 한 번 뽀뽀나 할까?”

뭐래? 꿈이래도 애들 다 보는데.”

 

현수의 말에 나영이 아이들을 흘긋 쳐다보면서 입을 삐죽였지만, 현수는 과감하게 나영의 허리를 잡더니 진하게 입을 맞추었다. 소리를 지르고 박수를 치고 빈정대고 종이가 날아오는 순간, 현수는 손을 들어 아이들을 향해 V자를 그려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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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밀리미터의 희망이라도 - 어느 속물의 윤리적 모험
박선영 지음 / 스윙밴드 / 2017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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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내내 여러 곳에서 울었다. 사람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사회를 보고 미래를 보면서 제대로 깨어 있는 상태로 따박따박 써 나간 글들. 사랑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다.

 

박선영 기자는 소리친다. “나는 그저 하나의 속물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조금은 윤리적이고 싶다.”

 

그렇지. 나도 정확히 이런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 본문 앞에 나와 있는 바로 이 두 문장이 박선영 기자를, 그리고 나를 정확하게 말해주고 있는 글 같아 처음부터 마음이 짠해졌다. 나는 윤리적인 속물이고 싶다. 염치를 아는 욕심쟁이이고 싶다. 이 세상, 이 나라에 가진 자들이 염치가 없어서 없는 자들이 염치를 너무 알아서 문제가 되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1밀리미터의 희망이라도>에는 내가 공감하고 싶은 글들이 너무나도 많다. IT 천재 데미스 하사비스에 대해서는 박선영 기자는 적개심을 느꼈다지만 나는 천재가 세상을 이 따위로 만드는가? 정말로 천재이기는 한 것인가, 하는 안쓰러움을 느꼈다. , 내 안쓰러움과는 상관없이 이 세상은……, 대부분의 인간에게는 불리한 방향으로 나가는 것 같지만.

 

대개가 가난한데 아무도 가난하지 않은 것처럼 살아야 하는 시대. 청년들은 가난하다면서 왜 고가의 스마트폰을 사고, 패스트패션을 사 입으며, 유명 맛집의 음식 사진을 소셜미디어에 올리는가.”(20) 분명히 의문문처럼 읽히는 이 문장을 온점으로 끝내면서 풀어내는 박선영 기자의 사유에서는 내가 미처 보지 않았던 젊은이들의 모습을, 보려 하지 않았던 젊은이들의 모습을 생각하면서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물론 그와 더불어 의문이 하나 들기는 했지만, 아직 내 자신도 답을 찾지 못한 의문이니, 이 서평에 그 의문을 쓰기보다는 홀로 좀 더 사유해 보려고 한다.

 

느그 아부지 머 하시노를 묻지 않아야만 보이는 재능들을 느그 아부지 머 하시노 묻느라 놓치는 나라.”(24) , 이런 문장으로 사회에 도끼를 던지는 저자라니. 부럽기도 하고 아름답기도 하다.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공감 또 공감이었다. 하지만 기레기라는 용어에 반박하는 부분은, 나로서는 찬성해 줄 수가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기레기에 대한 변명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우리 시민은 기자와 기레기를 정확하게 구분할 수 있다. 기레기라는 표현은 시민이 나쁜 기자들에게 던지는 비판이다. 기레기를 왜 비난으로만 받는가?

 

박선영 기자는 어떤 비판을 비판할 수는 있어도 비난하고 응징하며 비판하지 말 것을 명할 수는 없다.”(121)라고 했다. 그렇다. 우리 시민도 기자를 비판할 수 있다. 우리 시민은 모든 기자에게 기레기라고 하지는 않는다. 언론이 이명박근혜 정권을 만드는데 기여했다면 바로 그 언론이 촛불혁명을 일으키는 데도 기여했다.

 

우리 시민은 소통하지 않고 우리의 귀와 눈을 가리기에 급급했던 쓰레기 언론을 기레기라고 하는 것이다. 언론인도 기레기라는 용어가 비난이라고 슬퍼하면 안 된다. 기레기라는 용어에 변명만 하고 있으면 안 된다. 기레기를 속아내고 정당하고 공명한 언론을 만드는 데 기자가 앞장서야 한다.

 

나에게 박선영 기자는 기자이다. 그런 기자 분들이 앞장 서 주시기를. 30년 동안 조선일보, 동아일보, 중앙일보, 한국일보, 경향일보, 한겨레신문, 시사인 순으로 구독하는 일간지와 월간지를 차례차례 절독하고, 이제는 어디로 가야 하는지 길을 잃은 나 같은 시민에게 밝은 길을 보여주시기를.

 

여러 가지 불만이 있지만 그래도 네이버 맨 앞에 한국일보 하나 남겨둔 나 같은 시민에게 희망을 주시기를(한국일보를 나두려고 생각한 건 아닌데, 적어도 하나는 남겨야 한다는 네이버 원칙 때문에 고민하고 택한 언론이다). 몇 년 동안 기자보다도 정치인들이 훨씬 거한 쓰레기였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아름답고 공정하고 정의로운 정치인들이 얼마나 많이 탄생하고 세상을 바꾸려고 애쓰고 있는가. 기자들의 세계에서도 멋진 스타 기자들이 많이 나오기를 기원한다.

 

시민이 기자를 보는 관점을 어떻게 고민해야 하는지는, 사실 전혀 다른 주제, 전혀 다른 맥락에서 나온 글이지만 박선영 기자도 정확하게 알고 있다.

 

내로남불 논란이 지식인 그룹에서 자주 터지는 이유는 세상 모든 일을 전지적 논평자 시점으로 서술하는 이들의 직업적 관습과 밀접하게 연관이 있다. 기자 역시 마찬가지다. 실천보다는 이론을 담당하고 있는 이들은 계몽주의적 세계관 속에서 이론이야말로 최고의 실천임을 믿고 스스로를 종종 구조 바깥에 위치 지운다.”(178)

 

이제는 아마도 박선영이라는 이름이 내 뇌리에 강하게 각인됐으리라고 생각한다. 멋진 글과 멋진 생각을 쓸 수 있고 사유할 수 있는 사람. 내 딸에게 들려줄 수 있는 멋진 페미니스트, 내 아들에게 읽혀줘야 할 건전한 사고방식의 소유자이자 작가. 아이들과 남편에게 이 책은 어떤 수단을 쓰더라도 읽히리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며느리의 관점에서 엄청나게 공감했던 문장들.

 

세계가 달라진 게 아니었다는 인지의 충격은 결혼과 함께 가정이라는 제도 속에 새로이 편입되면서 마침내 발생했다. 우리의 어머니들이 딸은 21세기 식으로 아들은 19세기 식으로 키운 탓이다. 20세기의 연인들이 결혼과 동시에 19세기의 남편과 21세기의 아내로 결별해 불화하고 최후의 문화지체 속에서 이 땅의 아내와 며느리 들은 수시로 타임 슬립을 겪는다……. 제사와 명절만이 아니다……. 미래에서 온 나만 홀로 고독했을 뿐이다……. 기쁘게도, 슬프게도, 여성은 이제 거의 모든 것에서 해방됐다. 여자이기 때문에 하지 못하는 일은 더이상 이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내와 며느리라는 제도에서는 해방되지 못했다……. 명절증후군은 단지 1년에 한 두 번 과도한 가사노동에 시달리는 여성의 고충을 일컫는 말이 아니라 가정에서의 여성 착취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제의에 대한 여성들의 신체적 거부반응을 뜻한다……. 명절 하루 일하는 게 뭐 그리 대수라고 속 좁게 구는 거야?'처럼 멍청한 소리도 없다……. 문제는 노동의 강도가 아니다. 아무리 궁리해도 도무지 찾아지지 않는 노동의 합목적성이 비극의 원인이다. '내 증조할아버지의 이름은 무엇이었으며, 기일이 언제였던가'하는 물음이 왜 남편의 증조할아버지 제사 때만 떠오르는 것이냐 말이다. 왜 김씨 조상의 죽음을 추모하기 위해 부엌에 모인 사람들이 모두 이씨와 박씨와 최씨와 강씨뿐이냐는 얘기다…….제사 때문에 일찍 퇴근하겠다고 했을 때 회사의 남자 선배가 말했다. "쟤는 회사에서만 열혈 페미니스트지 시댁에서는 효부 중의 효부야. 열녀문 세워줘야 해." 그날 남편은 언제나 그렇듯 나보다 늦게 퇴근해 제사 직전에야 도착했다……. 그렇게 울부짖어도 이러고 사는구나, 사랑받는 며느리가 되기 위해 19세기로 기어이 되돌아가는구나, 자기혐오와 환멸을 떨치기 어렵다.”(200~203)

 

늘 불만을 터트리면서도 바꿀 용기 하나 대들 용기 하나 없다는 자괴감으로 끝나고, 그 자괴감을 안고 타인의 비난과 조롱까지 받는 슬픔은 이 땅의 많은 며느리들이 느낄 것이다. 이 싸움은 시가집과 며느리의 싸움이기도 하지만 바깥일을 하는 며느리와 바깥일을 하지 않는 며느리들과의 싸움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것은 박선영 기자의 말처럼 XX끼리는 협력하고 XY하고는 싸울 문제가 아니다. 생명을 가진 유기체가 억압적인 제도와 전통과 싸워야 하는 문제이다. , 늘 말은 많은데 실천이 없는 나의 페미니즘이라니. 난 적어도 20세기 중후반 사람은 되는 XX일 텐데, 고민거리가 많아졌다. 고민을 많이 주는 책은 좋은 책이다. 박선영 기자의 글을 모두 찾아서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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