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주의 가족
그레구아르 들라쿠르 지음, 이선민 옮김 / 문학테라피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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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은 해석하기 나름 글은 그 사람의 마음을 대신하기에 충분한 가치를 지닌다.지구가 빨리 돌다보니 스마트라는 이름이 생기고 사람들은 하늘을 쳐다보는 대신 손에 있는 폰만 들여다 보기 급급하다.

 

 

과연 그들은 행복할까! 아니 가족이라고는 하지만 개인주의가 팽배한 현실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 책은 말해주고 있다.마음의 표현은 여러가지로 할 수 있다.그림 또는 글씨로 이 둘중에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무엇일까?

​그레구아르 들라쿠르의 개인주의 가족은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보여주는 파노라마적인 책이다.우리들의 기억 가운데 가장 지우고 싶은 것은 가족이라고 얘기했던 사람을 굳이 떠올리지 않더라도 가족에 대한 기억들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행복했던 과거는 잠시지만 불행의 작은 불씨는 점점 더 커져가는 법이다.이 책에 등장하는 일곱 살에 첫 시를 써 낸 주인공 꼬마(에두아르)는 천재라는 소리를 들으면서 자라게 된다.

​그러나 성장하면서 모두의 부담감 때문에 글을 쓸 수가 없어진다.잡화점을 하는 아빠(덤보)와 어머니 ,남동생,여동생 하나가 있다.자라면서 기숙학교에서 지내게 되면서 에두아르는 이 이야기의 중심에 서게 된다.사감선생을 놀려주기 위해 교정에 낙서를 했던 에두아르의 잘못을 뒤집어 쓴채 친구인 몽카생은 사감선생과 학생들에게 총을 쏘고 자신도 죽는다.인생이 꼬이면서 우리는 이런 일들도 겪을 수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는다.

 

 

개인주의 가족은 힘들게 진행된다.가정의 불화로 부모님의 이혼과 남동생은 정신병원행 에두아르는 겨우 대학시험에 합격하고 작가가 되기위해 고군분투하고 그즈음 모니크는 에두아르와 연인관계로 발전하고 작가가 아닌 벨기에의 광고회사에 카피라이터로 성공하게 된다.모여 사는 가족이 아니라 결국 흩어지며 아름다운 추억은 유년의 시절로 남을 수 밖에는 없는 내용으로 보여진다.

 

남동생은 정신 병원에서 떨어져 죽고 아버지 덤보는 대를 이어 장사하던 가게를 접는다.엄마는 이혼하고 새로운 애인이 생겼고 에두아르는 연상의 여인 애니 바숑과 불륜의 관계에 빠진다.모니크와의 결혼관계는 그저 그렇게 평범한 부부관계로 유지되고 있었다.아이가 있으니 어쩔 수 없는 공간만을 같이 사용하는 관계로 전락한다.오손도손한 가정의 모습은 먼 옛날의 추억의 한토막으로 변해가는 모습속에 무엇을 기대할 수 있단 말인가!

또 누군가를 의지하고 살아가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라면 흩어지고 떠나고 떠나고의 반복으로 만들어지는 개인주의 가족속에 왜 떠나야 하느냐의 물음에 어떤답을 볼 수가 있을까?그것은 작가의 말처럼 서로에게 향한 기대가 너무 컸기 때문일지도 모른다.우리는 모두 상대에게 너무 큰 기대를 안고 만난다.그러나 꿈과 이상과 현실은 다른모습으로 다가온다.에두아르의 삶속에 나도 함께 있었다.

어차피 인생은 살아가는 한 누군가에게 기대할 수 밖에 없으므로 우리는 이 책의 주인공처럼 글도 쓸 수 있고 작가가 될수도 있다.다만 그것을 표현을 하지않을 뿐이다.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벋어나고 싶은 욕망을 억제하며 살아가는 인생을 향한 작가의 메시지가 담겨있는 책이다.손만 뻗어면 잡을 수 있는 가족 그 가족의 삶에 나는 얼마나 애착을 가지고 있는지 많은 생각을 준다.아! 이밤에도 나는 잠을 못이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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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이 속삭일 때 - 잠 못 들게 하는 현실, 믿음으로 사는 법
피트 윌슨 지음, 정성묵 옮김 / 두란노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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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중심에서 벗어난다는 것의 정의는 무엇일까? 두려움이란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 내는 것이다. 

믿음으로 산다고는 하지만 물질에 엌매이고 하나님 중심으로 살지못하는 증거로 볼수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쪽으로 축을 옮겨야 한다. 때로는 우리가 기도가 응답되지 않는다고 실망하지 말고 하나님이 일하실 때까지 순종하며 기다려야한다.

 

 

이제 믿음 같으나 믿음아닌 것들을 과감히 정리할 시간이다.요셉,여호수아,다니엘 그들은 온갖 믿음같으나  믿음 아닌 것들을 과감히 버렸을 때 성경에 기록되고 하나님의 쓰임을 받은 믿음의 조상이 되었다.

​우리의 삶은 어떤가? 너무도 쉽게 마음이 무너지고,미움과 분노를 격동시키는 삶이다.저자는 이 책에서 말하기를 우리가 날마다 믿음의 연습이 필요하다고 말하면서 불확실성을 받아들이는 믿음은 세가지 측면을 갖고 있다.하나님의 공급 하심에 대한 믿음,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믿음,성경에서 이런 종류의 믿음을 가장 잘 보여 주는게 바로 다니엘의 이야기이다.(본문 p93쪽)
 
느닷없이 들이닥친 어두움과 격랑 속에서 나름대로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발버둥을 쳐보지만 오히려 상황은 더 꼬여만 가고 그럴수록 더욱 주님 앞에 엎드려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꾸만 인간적인 얄팍한 술수와 아이디어만 모으고 다니는 삶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 4:16).

 

 

내가 변하면 모든 것이 달라지는데 나는 변하지 않고 세상이 달라지기를 기다리고 있다.두려움이 속삭일 때 현재 상황을 만족하지 못하고

 

 

내 마음을 장악하고 있는 부정적인 생각과 자포자기의 생각을 쫓아내어야 한다.


어떤 위기의 순간에라도 하나님의 이름을 소리쳐 불러라고 저자는 이 책에서 말하고 있다.상황과 환경에 길들여지지 않고 하나님을 깊이 생각하는 것이다. 그럴 때 당신은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다.하나님께 드려지는 찬양보다 더 중요한 건 하나님께 드려지는 마음이다.중심이 없는 예배에 속으실 하나님이 아니다.흥분의 도가니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상한 마음과 성결한 삶이다.

삶이 드려지지 않는 예배 형식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하나님은 형식적인 이스라엘 백성들의 예배를 벌하셨다.하나님은 멋진 예배보다 거룩한 예배자를 기다리신다.예배자는 자신의 동기를 살펴봐야 한다.사람들은 당신을 통해 그리스도의 향기를 맡게 될 것이며, 당신을 통해 그리스도를 읽게 된다. 이것이 바로 세상의 두려움을 이겨내는 인생이다. 하나님 중심으로 나의 일상을 조절해야된다.

 

 

 

확신의 인생으로 살아가기 위해 날마다 말씀으로 죽어라. 자신을 쳐서 복종시켜라. 불평과 원망이 싹틀 때 그 싹을 아예 잘라버려라.이 책은 각 파트의 말미에 팁을 달아두어 이것만은 꼭 기억할 것,이것만은 꼭 생각해 볼 것,이것만은 꼭 해볼 것에 대해 조언을 하고 있다.믿음의 단련은 훈련에서 시작된다.눈에 보이지 않는 믿음은 그 사람의 생활에서 나타나는 것이다.믿음도 기술자처럼 숙련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감사와 찬송이 피어나게 하라. 나를 드러내고 싶은 마음을 포기하라. 날마다 그리스도를 존귀하게 하는 당신이 진짜 명품인생이다! 순종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된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는 증거이자 훈련이다. 순종은 사랑에서 나와서 사랑으로 인도하며, 하나님의 사랑과 내주하심을 더욱 깊고 충만하게 경험하도록 이끈다.



우리들의 삶속에서 상처받고 헤메이는 영혼에게 회복은 반드시 필요하다.믿음같으나 믿음아닌 것들에게서 .순간 순간 다가오는 위기의 순간에도 하나님의 역사는 계속되고 우리는 그 생명의 공급선을 붇잡고 살아가야한다.마치 어린 아이가 어미의 젓을 사모하는 심정으로 말이다. 버린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치명적인 육신의 아픔이다.그러나 하나님 앞에 우리는 과감하게 버려야  살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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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 책임을 생각한다 - 세상 속 크리스천의 정체성을 잃지 않는 능력!
원용일 지음 / 두란노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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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을 생각한다는 것? 사회가 바쁘고 정신없이 돌아 갈수록 우리는 크리스천의 책임을 생각해야한다는 것에 동의한다.스마트시대의 책임! 책임은 높은 사람들이나 지키는 것이지 우리같은 서민들이야라고 생각한다면 가정의 질서는 물론이고 교회에서도 지탄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저자는 이러한 현상을 성경에 인물들을 조명하여 우리들에게 보여주고 있다.삶속에 보여주는 믿음의 선진들의 모습속에 우리들이 본받아야 할 부분들을 일러주고 있다.

책임이라는 단어에는 많은 뜻이 내포되어 있다.사회의 구성원인 크리스천의 위치는 더욱 그러하다.나는 세상속 크리스천으로 무슨 책임을 질 것인가를 생각한다면 신앙생활에 많은 도움을 주는 책이다.가정에서 시작하여 직장의 일꾼으로 크리스천이 갖추어야할 덕목과 책임을 조목조목 나열하여 설명하고 있고 다양한 성경속의 인물들을 토대로 현시대에 맞는 설명도 빼놓 수 없다.
 

 

 

우리가 직업적인 지혜를 발휘하여 해내는 일들을 통해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을 아름답게 세워 나갈 수 있다. 세상을 유익하게 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높여 드릴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직장인들의 능력과 함께하는 성령 충만이다. 우리는 성령님이 주시는 지혜와 은혜로 각자에게 주어진 일의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이 책에서 말하고 있다.

​우리는 주일에만 모인 교회에서 안주하고 있으면 안 된다. 주 중에는 흩어진 교회로 나가야 한다.주일과 평일의 균형과 조화가 참 중요하다.이것은 주일을 어떻게 보내느냐,바람직한 주일 성수를 하느냐 마느냐의 문제보다 더 중요하다.주일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어야 삶에 대한 크리스천의 책임을 다할 수 있다.한주간을 정리하고 또 다시 새로운 한주를 시작할 때 세상에 대한 무한한 책임감으로 소명을 느껴야 한다.




크리스천의 책임에 대해 7가지로 구분하여 적용하고 있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질 수 있는 크리스천의 필독서이다.나를 책임지신 주님을 생각할 때 내가 책임질 교회와 가정과 직장을 생각해야 한다.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내가 세상에서 그 역활의 책임을 감당하는 것이다.모이면 다른 성도의 뒷담화를 한다면 그 사람은 크리스천으로 자격이 없다.나보다 못한 사람을 세워주고 일어설 수 있는 용기를 주는 크리스천이 되어야한다.

크리스천은 이 세상에서 무한 책임을 느껴야한다.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흘리심으로 우리는 죄사함을 받고 이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야하는 사명이 있다.값으로는 매길 수 없는 천국시민의 자격으로 살아야 한다.그러기에 그들 앞에 떳떳한 삶이 복된 본을 보이는 것이다.책임에 따르는 행동이 지금 필요하다.거침없이 달리던 걸음을 멈추고 나를 바라보자.그리고 생각하자.나는 크리스천의 책임을 다하고 있는가!  

책임을 다한다는 것의 최종 목표는 하나님을 영화롭게하는 성도의 최고의 덕목이다.​한국에 기독교가 들어온지도 100년이 넘었다.아직도 가야할 길이 먼데 우리는 샴페인만 생각하고 있다.아브라함은 20년을 기다려 아들을 얻었고 모세는 광야생활 40년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그들은 무엇을 생각했을까? 떠난 자리를 보면 그 사람이 누군지 알 수 있다.기억하자.우리 크리스천의 책임과 믿음은 변하지않는 가치로 남아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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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만큼 겸손하라 - 겸손은 거룩함의 시작이자 제자도의 완성이다
앤드류 머레이 지음, 임종원 옮김 / 브니엘출판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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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의 삶은 비단 크리스찬만이 가져야 되는 덕목은 아니다.성경은 우리에게 말하기를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라고 잠언에서는 말하고 있다.

하나님의 은혜안에 붙들린 사람은 언제나 겸손으로 살아간다.그것은 부족하거나 남들보다 능력이 뒤쳐져서 그런 것은 결코 아니다.

겸손은 나와 하나님의 관계를 언제나 지속적으로 유지시켜 주는 지랫대의 역활이다.머레이는 이 책에서 말하기를 겸손은 은혜를 뿌리내리게 만드는 유일한 토양이라고 말하고 있다.

성경은 우리에게 겸손을 수없이 강조하고 있다.머레이는 이 책에서 그 위장된 겸손을 벗고 말씀으로 거룩하라고 한다.은헤가 풍성한 하나님은 믿는자 한사람,한사람을 사랑으로 돌보신다.내가 가장 낮아질때 주님은 나를 들어 존귀하고 보배로운 그릇으로 사용하신다.참된 행복과 기쁨의 비밀이 여기에 숨어있다.죽을만큼 겸손해 진다는 것은 나를 포기하는 것이다.겸손은 단순히 신뢰 가운데 살아가도록 그 영혼을 위해 준비된 성품이다.

자아 추구,자기 의지,자기 확신,또는 자기 찬양을 통해 나타나는 온갖 교만의 숨결, 심지어 가장 은밀한 교만의 숨결은 단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거나,하나님의 나라에 있는 것들을 소유할 수 없게 만드는 그와 같은 자아를 강화시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왜냐하면 교만은 하나님으로 하여금 그분 자신과 마땅히 취해야 할 모습, 곧 만유의 주재가 되지 못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점점 그 누구도 신뢰하지 못하도록 빠르게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내가 가장 신뢰하고 믿을 수 있는 유일한 분은 누구인가! 이제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사람에게는 복이 있으며, 그 사람 안에 있는 온갖 교만의 권세에도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당하는 굴욕의 행위를 인내하는 법을 배운 사람에게는 복이 있다. 우리는 인간 본성의 법칙을 알고 있다.본능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삶은 결국은 만족보다는 후회로 돌아온다.

행동은 습관을 낳고, 습관은 성향을 낳고, 성향은 의지를 형성하고, 적절히 형성된 의지는 성품으로 자리 잡게 된다.은혜의 역사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끊임없이 반복되는 행동이 습관과 성향을 낳고 이런 과정들이 의지를 강화시키는 것처럼 의지를 품게 해서 행동하도록 일하시는 하나님은 그분의 강한 능력을 비롯해서 성령님과 더불어 찾아오신다고 머레이는 이 책에서 말하고 있다.

회개하는 성도가 너무나 자주 하나님 앞에서 교만한 마음을 내려놓고 자기 자신을 내던지는 모습을 보인다면 이처럼 겸손한 마음에 대한 더 많은 은혜를 보상으로 받게 된다.내 힘으로는 할 수 없음을 겸손히 주님께 고백하자.나를 낮춰야 주님이 높아진다.겸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누구를 위한 겸손인가!바로 나를 위한 것이다.예수님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자아를 믿지 말고 오직 말씀을 붙들고 살아가자.

이 시대를 본받지말고 나를 위해 십자가에 피흘려 돌아가신 그리스도의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자.겸손은 크리스천에게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겸손은 사망에서 생명으로 이르게하는 하나님의 사랑이다.마음의 온유함과 낮아짐이 제자를 구별 짓는 특징이다.겸손을 잃어버리는 것은 온갖 죄와 악의 뿌리이다.겸손은 모든 피조물의 가장 차원 높은 미덕이며 그리스도인의 표지이자 거룩함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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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본질 - 우리는 무엇을 믿는가?
이연길 지음 / 두란노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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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가는 물은 막을 수 있어도 세월은 막을 수 없다.이와 같이 믿음의 흐름은 소유가 아닌 관계에서 진행 되어지는 진행형으로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과의 관게를 유지하는 것이다.저자는 이것을 결혼생활에 비유하며 말하고 있다.이것은 기독교의 본질적의미 즉 무엇을 믿느냐에 중심을 두고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다.바울은 성경에서 말하기를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히11:1~)라고 말하고 있다.

죄란 뿌리가 깊어서 아무리 노력을 해도 이 깊은 뿌리를 뽑아낼 수 없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 가운데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십자가의 희생과 죽음을 통해 죄값을 치렀다.
이렇게 좋은 믿음의 삶을 사는 우리는 세상의 것들에 현혹되어 점차 퇴색되어가는 자신의 믿음을 보게된다.
중세 유럽의 교회처럼 형식과 외식에 웅장함을 치장하고 안에는 도무지 채우지 못하는 욕심과 욕망으로 채우기위해 노력한다면 그 본질을 상실한지 오래이다.
나를 버린다는 것의 본질적 의미는 ​내안에 예수그리스도로 채우는 것인데 채우려면 버려야하는 것이 당연한 일임에도 버리기 아까운 본능을 청산하지 못하는 현실이다.
믿음의 고백은 한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매일의 연속이고 순간 순간 고백되어지는 우리의 삶이어야한다.인간이 멸망당하지 않고 영생을 얻을 수 있는 오직 한 길(the way)은 하나님이 준비해 주셨다.그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뿐이다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나는 지금 어떤 길로가고있는가?를 생각한다면 자다가도 번쩍 정신이 들어야 하는 지금의 현실이다.이 책은 우리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것은 그분을 실질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고 특히 교회와 성령과 삼위일체같이 까다로운 주제조차 하나님과 교제하며 평화를 누리는 삶의 현장에서 이해하도록 해준다.
피스티스는 본래는 신실함이란 뜻이다.그러나 바울은 이 단어를 신실함이 아닌 복음을 받아들이는 행위인 믿음의 표현으로 사용하였다.바울이 이처럼 믿음을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도식화한 이유를 그의 그리스도의 체험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아무런 일도 한 적이 없다.그런 그를 예수 그리스도는 다메섹에서 나타나 받아 주셨다.그때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인가를 깨달았다.
그것이 그가 복음을 강조하는 이유일 것이다.자기의 경험을 전도에 적용한 것이 전도의 방법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그는 순회 전도자(선교사)였기 때문에 사람들이 쉽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믿음을 말할 때 명사형을 사용함으로써, 바울은 어떤 역사적인 사실이 단번에 영원성을 지니게 됨을 나타내고자 했다고 저자는 이 책에서 밝히고 있다.지금 나는 하나님과 살고 있는가를 점검해보자.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과 관계 있다.그 거룩한 사건들을 내 전 인격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믿음이라면,그런 믿음의 수용은 한순간에 결정되는 일이다.그리고 그 믿음이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것이라면 의롭게 여겨 주시는 것도 한순간에 결정된다.그러므로 내가 설정한 규정에 의하여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정하는 믿음이어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 믿음을 인정하시면 우리는 하나님과 화평의 단계로 넘어간다.믿음과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은 순간일 수 있으나 하나님과 화평의 단계는 일생을, 영원히 지속되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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