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미네이터 : 미래전쟁의 시작 - Terminator Salv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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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인간에게 준 최고의 선물 - 힘찬 심장박동과 같은 영혼!”

산업혁명 이후 인간의 생각에서 비롯된 새로운 기술들은 더 신속하게 많은 물건을 만드는 것에 지나지 않고, 인공지능과 같은 인간의 생각을 대신할 아니 어쩌면 대체할 수 있는 발전에 이르고 발전시켜가고 있다.

그 발전의 그림자를 보여주는 것이 바로 영화 “터미네이터 - 미래전쟁의 시작”이다. 문명의 이기가 낳았을 “심판의 날”라는 기계의 반란으로 인류는 위기에 스스로 잉태시킨 것에 의한 최후에 직면하게 된다. 이는 아마도 욕망이 부른 전쟁으로 인류가 자멸할 수도 있다는 메시지를 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름 확대해석해 보았다. 분명 인간을 지배하려는 인공지능 로봇 또한 한 개인이든 집단의 욕망이 부른 발전 계획의 일환이었음은 분명할 테니까 말이다.

 

그러한 인간의 욕망을 그대로 전달받은 기계 역시 그 욕망의 크기를 키워가는 당연한 일이다. 여기에 인간보다 몇 십, 몇 백배 강한 몸과 능력은 가진 기계가 인간을 지배하고 그야말로 심판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하지만 영화의 반전은 기계 또한 인간과 마찬가지로 스스로 만든 욕망의 씨앗으로 말미암아 자멸하게 된다. 그 씨앗은 바로 기계의 몸에 인간의 생각과 심장을 갖고 있는 부활 된 ‘마커스’다. 몸이 기계임을 알고 잠시 인간과 기계사이의 정체성을 오가며 방황하지만, 살아있는 심장과 함께 간직한 신이 인간에게 내려 준 가장 귀한 선물인 영혼의 소중함을 깨닫고 보다 가치 있는 죽음을 택한다.

 

이는 마치 물질이기주의로 죽음에 이른 듯해 보이는 도덕과 가치가 사라져가는 인간사회를 새롭게 변화시켜 줄 심장의 박동을 일으키고, 다시금 희망의 영혼을 불어 넣어 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영화의 기술적인 면을 잠시 살펴본다면 역시 터미네이터의 진화는 계속되고 있음을 충분히 보여주고 남는다고 생각했다. 가장 단순한 뽀족한 촉수의 하이드 로봇에서 모터 터미네이터, 헌터킬러, 하베스터, 그리고 인간과 유사한 형태를 갖춘 T-600, T-800이라 불리는 인간형 터미네이터와의 전투와 격투를 벌이는 한 장면 한 장면을 접하는 순간순간 숨을 몰아쉴 수 밖에 없는 박진감과 흥분이 거대한 파도처럼 연신 밀려왔다. 이러한 박진감은 때론 롤러코스트의 스피드를 즐기는 기분까지 맛보게 해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터미네이터-미래전쟁의 시작>을 보며 인간의 욕망이 사라지지 않는 이상 인간 대 인간, 그리고 인간 대 기계 전쟁 역시도 끊임없이 계속되어야 한다는 안타까운 현실감이 마음을 무겁게 만들지만, 그러한 어두운 현실 앞에는 여전히 희망의 씨앗에서 비롯된 사랑과 신뢰라는 꽃과 열매가 인간사회의 곳곳에 피고 열리기에 그 씨앗, 신이 주신 가장 소중한 나의 작은 영혼에도 담아보렵니다. 지구상에서 전쟁이란 단어가 사라질 때까지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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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
노희경 지음 / 김영사on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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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는 일을 직업으로 즉 작가가 되기로 굳게 마음을 굳히고 행동에 옮겼던 적이 있었다. 대학 3학년 그것도 2학기 때였다. 남들 같으면 다들 취업을 대비한 자격증에 열을 올리거나 할 때인데, 나는 전혀 전공과 상관없는 길을 처음부터 다시 걸어가겠다고 마음을 먹었던 것이다. 발단은 평소에 좋은 강의와 더불어 우리들의 인생계획에도 귀를 기울여 주셨던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막 마치고 돌아와 시간강사를 시작한 여자 교수님과의 해묵은 대화에서 시작됐다. 그 교수님은 자신이 외국에서 혼자 오랫동안 유학생활을 하며 박사학위수료까지의 어려움을 참고 이겨내 결국 마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자신이 가장 즐기듯 할 수 있는 일을 택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순간 나는 귀가 번쩍 열렸고, 아마 일주일을 고심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래 잠시 경험하는 아르바이트 같으면 꼭 즐길 수 있는 일이 아니어도 할 수 있지만, 나의 직업으로 선택하는 일이라면 평생 나의 몸과 마음이 즐기듯 할 수 있는 일이어야 해. 그래야 행복할 수 있어!’ 라는 결론과 함께 작가가 되기 위한 길을 찾았다. 그리고 마침 자주 보던 월간지속에서 “방송작가 과정모집” 이란 문구가 눈에 들어왔고, 졸업할 때까지 전공과 병행했다. 그럼 작가가 되었냐구요? 아니요. 사실 데뷔도 못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렇게 내가 읽은 책에 대한 느낌을 나름 정리하고 여기에 또 나의 생각을 더해가는 이 순간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답니다.

사실 그동안 드라마작가에게 동경이나 관심은 단지 요즘은 드라마작가도 편당 꽤 많은 돈을 받는 다는 얘기에 솔깃해서 귀를 기울였을 뿐이지 큰 관심을 갖고 있지는 않았다. 노희경이란 작가 역시 그러했다. 하지만 TV드라마가 아닌 책을 통해서 그것도 자신의 자전적 에세이를 통해서 만난 노희경은 예쁜 이름처럼 빛나는 이미지가 아닌 천진스럽다 못해 바보스럽기까지한 순수한 마음의 미소를 내 맘속에 드리웠다. 제목부터가 남달랐던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을 펼쳐보기 전 먼저 어떤 사랑을 말하는 것일까 하는 궁금증을 던지고, 10년이라는 시간차 여행속으로 들어갔다. 대부분의 얘기들이 딱 10년 전의 것들이 아니라, 지난 10년간 노희경 작가가 드라마를 시작해 일을 해오며 더욱 확고해지거나 낡은 생각이라 반성하고는 바꿔버린 생각들을 담아 놓았다. 얼마전 문득 책을 읽는 다는 것에 대한 의미를 찾다가 이런 생각을 했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자신만이 간직할 수 있는 마음의 이력서를 써내려가는 것이다.” 라고 말이다. 그렇다면 글을 쓴다는 것은 아마도 이러한 자신이 간직하고 있는 마음의 이력서에 몸과 마음으로 체험한 기억들을 더해 드러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책속에서 작가의 경험에서 묻어난 생각을 깊게 하는 말들이 많았다. 작가 자신이 생각한 말들도 있었지만, 때론 드라마를 함께 만들며 인연을 갖게 된 연륜 있는 배우들의 값진 한 마디를 맘속에 담아 놓았다가 옮겨놓기도 했다. 그 중 이 말이 책을 읽는 동안 내내 아른거렸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상처를 받았다는 입장에서 상처를 주었다는 입장으로 가는 것. 상처 준 것을 알았을 때 우리는 비로소 어른이 된다.” 10년전 아니 그 이전의 작가 노희경은 아마도 세상 사람들이 던지는 모든 상처가 자신에게만 쏠려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훗날 돌이켜볼 때 그때 자신이 상처라 생각했던 것들은 남들이 준 것이 아니고 바로 자신이 스스로에게 던졌던 상처라는 것을 깨달은 듯하다. 오히려 그로 말미암아 주변사람들이 상처를 입었을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에서 말하는 사랑의 대상은 바로 자신이었다. 자신을 사랑할 수 없는 자는 그 누구도, 그 어떤 생각도 사랑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남녀가 육체로 주고받는 사랑, 부자와 가난한 자들이 돈으로 사고파는 사랑이 아닌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이 진정한 가족 사랑과 사람들 간의 사랑을 빚어낼 수 있다는 것을 책을 읽으며 느꼈다. 여전히 세상은 나를 포함해 자신을 덜 사랑하고 있는 죄인들로 넘쳐난다. 안에 있는 원인을 밖에서만 찾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진정한 사랑의 의미와 가치에서 점점 더 거리를 키워왔던 것 같다. 이제 자신의 지난 발자취들을 돌이켜 오늘의 자신을 좀 더 사랑할 때 우리는 무죄선고를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해묵은 일기나 노트 안에 담겨 있던 생각과 기억들이 나중에 값 나가는 골통품처럼 자신을 가꾸어 주기도 한다는 생각해 해본다. 비록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기록이 아닌 자신의 마음을 담은 작은 메모를 여기저기에 남겨보는 것 또한 자신의 미래에 대한 사랑일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글 쓰는 것을 직업으로 삼지 못한 지금 이 순간, 이렇게 책을 통한 나의 짧은 과거의 회상과 나를 사랑하고 싶은 마음을 갖게 돼서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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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벤트] 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이벤트 종료)
보트 - No Boys, No C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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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자신의 인생에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아무래도 현대의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하고, 경제위기를 지나고 있는 가운데 1순위는 돈일 것 같다. 그다음으로는 아마 직장이나 이성문제를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로 누구도 남들에게 쉽게 드러내기 힘들어 마음속에 담고 극복하려 발버둥치는 인생 최대의 발목잡이는 가족이 아닐까 생각한다. 마음속에서 지우고 싶다고 지울수 있는 것도 아니고, 곁에서 떼어내고 싶다고 쉽게 버릴 수 없는 숙명같은 가족. 하지만 자신의 존재의 가치는 바로 가족에서 시작된다는 점은 까맣게 잊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영화 <보트>에서 만나는 두 주인공 형구(하정우)와 토오루(츠마부키 사토시)의 가족은 우리가 접할 수 있는 평범한 가정이 아니다. 스트립댄서인 엄마에게 버려진 형구나 애 셋 딸린 미혼모 여동생과 치매 걸린 할머니를 부양해야하는 토오루에게 가족은 인생의 커다란 걸림돌처럼 여겨진다. 그래서 이들의 꿈은 큰 부자를 꿈꾸는 것이 아닌 지극히 평범한 가정 속에서 살고 싶은 게 전부다. 적당한 나이에 결혼해서 아들, 딸 낳아 키우며 사는 그런 삶 말이다. 이것은 어쩌면 모두의 꿈이기도 하다. 얼핏 생각하면 그게 뭐가 어려운 일인가 하지만 막상 가정을 이루고 사는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한 부족함과 불만으로 그 평범함을 받아들이려 하지 못하고, 비범한 삶이라 자책하기도 한다.

 

나는 영화 속에서 형구나 토오루 앞에 펼쳐진 암울한 일상도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누구보다 평범한 일상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어차피 각자의 인생은 사막의 다 같은 모래알속에 있어도 모습은 조금씩 다르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남 보기에 힘들고 벅차 보이는 운명을 이겨내는 것이 이 세상에 태어난 존재의 이유인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결국 누군가는 그 자리를 채워야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러한 존재의 의미를 두 배우의 암울한 일상에 항거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몸짓과 울분을 통해서 다시금 생각해보게 했다.

 



 

그러나 감독이 영화를 통해서 표현하고 싶었던 메시지나 생각이 종합적이지도, 단편적이지도 않은 다소 난립한 탓에 스토리 전개에까지 영향을 주어 집중력을 떨어뜨린 느낌이다. 결국 배우의 대사와 연기를 통해 전해지는 스토리의 긴장감마저 떨어지게 만들어 아쉬움을 남긴다. 가족에 대한 희생적인 사랑이든, 애인을 위한 열정이든 보다 단편적인 인간의 감성에 집중을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다. 이것은 마치 짬뽕을 먹고 나서 짬뽕국물의 종합적인 얼큰하고 시원한 맛도 못 찾고, 각각의 재료가 갖고 있는 독특한 맛도 찾지 못한 느낌이다.

 

역시 영화 <보트> 에서도 한일 양국의 감성연기를 대표하는 배우들답게 하정우와 츠마부키 사토시의 연기와 대사는 관객들이 밖으로 내뱉고 싶은 심정의 말과 행동을 대신해 주었다. 어머니가 볼모로 잡혀있다는 전화를 받고 자신을 버린 엄마였지만, 순간 피가 거꾸로 솟아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이나, 버리고 싶지만 보면 볼수록 지켜보는 자신보다 더욱 안타깝게 느끼기에 눈물을 머금고 버티며, 그러한 심정을 웃음 섞어 이야기할 때, 그리고, 조카의 장난감을 철창사이에서 꺼내다가 찔렸을 때 옆에 아무 죄 없는 자전거들을 짓밟으며 억눌린 감정을 표현하는 모습을 통해서 가슴에 담고 있던 나의 응어리진 심정까지도 함께 실려 폭발하는 듯 느꼈다. 더욱이 노래자랑 무대에서 형구와 토오루가 함께 목 놓아 노래“アジアのじゅんしん(아시아의 순진)”을 부르던 모습을 생각하면 지난날 품고 있던 답답함이 일순간 사라지는 듯 통쾌하다.

 



 

망망대해에 홀로 탄 체 떠도는 보트를 보고, 보트만을 바라본 다면 물론 그 보트는 외롭고 처량한 자신의 마음을 담기 마련이다. 하지만, 보트는 홀로 떠있지 않고 어머니의 품과 같은 바다가 감싸고 하늘이 지켜보고 있다 라며 바라본다면 결코 외롭거나 처량하게 느껴지지 않을 거다. 이는 망망대해에 홀로 선 느낌으로 자신의 감싸는 모든 일들을 홀로 싸워 이겨내야 한다는 마음의 짐만 벗어 던질 수 있다면 모든 것은 자신을 돕는 것들이 된다. 영화 <보트>는 이렇듯 한 줄 긍정의 힘을 나에게 선사한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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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난 사람들 - Hello, Stran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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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우리의 일상 중에 접하는 사람들은 보다 다양성을 갖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와 거주자의 숫자는 100만 명을 넘어선지 오래다. 또한 중국을 통해서 북한을 탈출한 후 대한민국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전혀 낯설 것 같지 않지만 서로 낯설게 바라보게 되는 탈북자들까지도 그 다양성 안에 공존한다. 이러한 사람들의 다양성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나 스스로 자문해본다. 가령 미국, 일본, 유럽 등의 선진국의 국적을 가진 이들을 지나치거나 마주할 때와 동남아의 저개발국가에서 온 이들을 대할 때의 마음이 같았는지를 말이다. 그리고 같은 동포임에도 말투가 다른 탈북자들을 따뜻하게 맞이할 수 있는 동포애를 가슴 한 구석에 갖고 있는지를 말이다.



 

영화 <처음 만난 사람들>에서 만나는 탈북자 진욱과 혜정, 베트남에서 온 노동자 팅윤은 물론 서먹한 존재인 것은 사실이다. 서로를 이해하기에 요즘의 우리가 사람을 대하는 시간을 무척 짧기 때문이다. 하지만, 따뜻한 눈길과 함께 상대방이 하는 말에 조금만 귀 기울이면 금새 친구가 되기도 하고 연인도 될 수 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선입견이라는 선글라스로 자신의 따뜻한 눈빛과 가슴마저 가리고 있기에 소통의 길이 멀고 험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빌미삼아 가차없이 그들을 향한 폭력을 날리기까지 한다.



 

영화 <처음 만난 사람들>은 우리가 앞으로 만나게 될 낯선 이들에 대한 예의를 생각하게 하는 영화이다. 그리고 인종과 빈부를 초월한 인간애의 필요성을 팅윤의 “나도 사람입니다. 제발 그만 때리세요!” 한 마디로 전하고 있다. 우리 사회는 앞으로 더욱더 다문화와 소통을 시도하고, 결국에는 그들과 화합하고 협력할 때 새로운 공동체의 희망과 행복을 열어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비록 탈북자 진욱이 시작하는 삶의 장소가 낯설고 차갑게 느껴지는 아파트의 숲속이고, 오히려 자신보다 어리둥절해 하는 시선들을 극복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다. 하지만, 탈북자 진욱이 처음 만난 베트남 청년과 통하지 않는 말을 한 두마디씩 섞고, 결국 자신의 진실 된 감정을 보여 줬을 때 마음이 통한 것처럼, 우리는 누구에게든 한결같은 관심과 배려로 자신을 스쳐가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만나는 사람들과 대화할 때, ‘처음 만나도 즐겁고 행복한 사람들이 될 수 있다’라는 이해와 포용심을 갖게 되리라 생각해 본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이 앞서는 이들에게 이 영화를 추천하고 싶다. 인간들 사이에서만 가능한 마음의 정(情) 느낄 수 있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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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출근길
법륜스님 지음 / 김영사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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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출근길에 만나는 사람들의 얼굴 속에서 일에 대한 즐거움이나 행복함보다는 피곤함과 무기력감과 같은 다소 맥이 빠진 모습들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하루 24시간 중 씻고 준비하는 시간을 포함해 수면 등의 휴식을 취하는 8시간, 출퇴근시간 2시간, 바로 퇴근해서 가족과 집에서 함께하는 시간은 길어야 4시간 남짓이다. 이를 뺀 나머지 10시간정도를 샐러리맨은 직장에서 상사든 부하들과 지지고 볶으며 하루를 보낸다. 야근에 회식으로 집으로 향하는 시간이 자정을 넘길 때가 많아지면 집은 그저 잠만 자고 옷 갈아입고 나오는 여인숙이나 별반 다를 게 없을 때도 있다. 이런 생활 속에서 행복한 출근길을 기대하기란 여간 쉽지 않거나, 남의 나라 얘기처럼도 느껴진다.

그렇다면 소위 사회에서 성공한 사람들은 매일매일 행복한 출근길을 걷고 있을까? 이 물음에도 전제가 있다. 단지 경제적인 성공만으로는 행복한 출근길이 보장되지는 않는다. 아무리 돈만 많이 벌 수 있는 직장에 다니거나 일을 하는 사람들도 늘 출근하는 얼굴에 수심은 가득하다. 그들은 여전히 사회적인 인정과 경제적인 안정에도 불구하고 마치 오래 피우던 담배를 쉽게 끊기 힘든 것과 같은 무한경쟁의 구도 속에서 사로잡혀 자신을 이길 다음 상대자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내색은 못하지만 초조하고 불안한 마음을 가슴 한 구석에 떠안고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사회적인 인정과 경제적인 안정도 행복한 출근길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면 과연 무엇이 우리의 출근길을 즐겁고 행복하게 만들어줄까? 그 해답은 바로 자기 자신에서 비롯된다는 것에 대하 깨달음이다. 그동안 우리는 너무나도 자신의 우월함이란 깊은 수렁에 빠져 있었기 때문에 자신에게서 찾을 수 있는 삶의 실마리를 다른 사람들이나 다른 일들에서 찾으려 했기 때문에 그 수렁의 깊이를 높여만 갔던 것 같다.

<행복한 출근길> 에서 우리는 법륜 스님과 그동안 출근하는 발걸음을 무겁게 만들었던 직장생활 중에 겪는 개인적인 고민, 혹은 넓게 가정과 개인적인 인간관계에서 스스로 풀지 못했던 어쩌면 인생의 의문점에 대해서 선문답의 형식을 빌어서 대화하게 된다. 이 대화를 마음으로 받아들이기 위해서 먼저 버려야할 것은 바로 종교적인 선입견이다. 분명 대한민국의 불교를 대표하시는 스님과의 대화 속에는 자연스럽게 불교적인 언어와 해석이 녹아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거기에 집착하면 진정한 의미에서 마음이 벗어나게 된다. 물론 최대한 법륜스님의 말씀 속에서도 그러한 종교적인 생각의 차이에서 느낄 수 있는 거부감을 최소화 시켜 그저 스승과 제자가 작은 가르침을 나누듯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배려를 아끼지 않으셨다.

나는 책속에서 만났던 단어들 중 아래의 단어들이 바로 법륜 스님께서 우리를 행복한 출근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이끄는 각별한 키워드라 생각했다. 바로 “우열”, “중도(中道)”, “업장(業障)”, “대결정심” 이다.

첫째, “우열” 대화에서 법륜 스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객관적인 존재에서는 우열이 없습니다. 우열은 비교에 의해서 생깁니다.” (p.40) 이 한마디에 그동안 우리는 모든 일의 결과에 대한 평가를 우등과 열등으로 꼭 가려야만 직성이 풀렸던 자신이 갖고 있던 생각의 오류를 발견할 수 있게 된다. 우리는 자신이나 남편, 부인, 자식들까지도 우등해야만 한다고 생각하고, 더욱이 남들에게 열등감을 느껴서는 더더욱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이다. 작은 열등감이라도 스스로 견뎌내는 법을 배울 수 없었다. 그런 탓에 조금만 주위로부터 열등감을 느끼게 되면 참을 수 없게 되고, 자학에까지 이르는 자신들의 지난 모습을 보게 된다.

둘째, “중도(中道)” 무엇보다 자학의 결과는 곧 화(禍)를 부르게 마련이다. 이에 불교에서는 화를 극복을 위한 해탈의 길을 화나면 화를 내 버리는 제1의 길 쾌락도 화를 무조건 참는 제2의 길인 고행도 아닌 마음의 화를 다스릴 수 있게 되는 제3의 길 중도(中道)로 삼고 있다. 우리는 순간순간 깨어있어 수시로 일어날 수 있는 화를 알아차리고 지속적으로 지켜보는 연습이 필요하다.

셋째, “업장(業障)” 바로 무엇보다 자신을 그동안 오래토록 새장처럼 가두고 있었으며 반복적으로 출근길의 발걸음을 무겁게 만들었던 좋지 못한 습관인 업장(業障)들을 뒤돌아보고 어떻게 바로 잡아야 하는지에 대한 각성과 노력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대결정심”‘죽어도 좋다’ 하는 마음가짐으로 자신의 업장들을 깨우침으로 바꿔가는 노력에 있어서의 신중함을 말한다. 스님께서는 이런 비유로 말씀하셨다. 담배가 나쁘다고 좋은 담배로 바꾼다고 몸에 좋아지는 것이 아니다. 그건 단지 자신과 남들에게 말하기 편한 변명을 만들어 위안으로 삼는 것일 뿐 제자리걸음과 같다는 것이다. 깨우침에 이를 수 있는 길의 방향을 전해 들었다면 결국 자신을 이겨내 진정한 승리자가 되었을 때, 앞으로 매일마다 선사 될 아침에 밝은 햇살을 축복삼아 행복한 출근길 발걸음을 일터로 옮겨 즐겁게 일할 수 있게 됨 깨달아야 한다.

내가 책속에서 크게 느낀 네 가지의 단어 외에도 회사와 가정에서 생길 수 있는 사소한 갈등들에 대처하는 마음가짐과 가르침은 두 번 세 번 지난 일상을 돌아보고 잘못된 업장들에 대해 반성하고, 그렇게 반성하는 마음을 갖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꼈다. 자신을 포함한 주위에 고된 직장생활과 복잡한 가정사에 무거운 발걸음을 매일매일 직장과 집으로 옮기는 이가 있다면 서슴없이 <행복한 출근길>로 법륜 스님과의 대화에 초대를 해보라. 분명 술 마시기전 숙취에 좋은 음료를 마셔 다음날 아침 맑은 정신으로 내일을 맞이하듯, 희망 가득한 가벼운 발걸음으로 회사에 나가 즐기듯 일을 하는 사람으로 변할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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