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
노희경 지음 / 김영사on / 2008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글 쓰는 일을 직업으로 즉 작가가 되기로 굳게 마음을 굳히고 행동에 옮겼던 적이 있었다. 대학 3학년 그것도 2학기 때였다. 남들 같으면 다들 취업을 대비한 자격증에 열을 올리거나 할 때인데, 나는 전혀 전공과 상관없는 길을 처음부터 다시 걸어가겠다고 마음을 먹었던 것이다. 발단은 평소에 좋은 강의와 더불어 우리들의 인생계획에도 귀를 기울여 주셨던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막 마치고 돌아와 시간강사를 시작한 여자 교수님과의 해묵은 대화에서 시작됐다. 그 교수님은 자신이 외국에서 혼자 오랫동안 유학생활을 하며 박사학위수료까지의 어려움을 참고 이겨내 결국 마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자신이 가장 즐기듯 할 수 있는 일을 택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순간 나는 귀가 번쩍 열렸고, 아마 일주일을 고심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래 잠시 경험하는 아르바이트 같으면 꼭 즐길 수 있는 일이 아니어도 할 수 있지만, 나의 직업으로 선택하는 일이라면 평생 나의 몸과 마음이 즐기듯 할 수 있는 일이어야 해. 그래야 행복할 수 있어!’ 라는 결론과 함께 작가가 되기 위한 길을 찾았다. 그리고 마침 자주 보던 월간지속에서 “방송작가 과정모집” 이란 문구가 눈에 들어왔고, 졸업할 때까지 전공과 병행했다. 그럼 작가가 되었냐구요? 아니요. 사실 데뷔도 못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렇게 내가 읽은 책에 대한 느낌을 나름 정리하고 여기에 또 나의 생각을 더해가는 이 순간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답니다.

사실 그동안 드라마작가에게 동경이나 관심은 단지 요즘은 드라마작가도 편당 꽤 많은 돈을 받는 다는 얘기에 솔깃해서 귀를 기울였을 뿐이지 큰 관심을 갖고 있지는 않았다. 노희경이란 작가 역시 그러했다. 하지만 TV드라마가 아닌 책을 통해서 그것도 자신의 자전적 에세이를 통해서 만난 노희경은 예쁜 이름처럼 빛나는 이미지가 아닌 천진스럽다 못해 바보스럽기까지한 순수한 마음의 미소를 내 맘속에 드리웠다. 제목부터가 남달랐던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을 펼쳐보기 전 먼저 어떤 사랑을 말하는 것일까 하는 궁금증을 던지고, 10년이라는 시간차 여행속으로 들어갔다. 대부분의 얘기들이 딱 10년 전의 것들이 아니라, 지난 10년간 노희경 작가가 드라마를 시작해 일을 해오며 더욱 확고해지거나 낡은 생각이라 반성하고는 바꿔버린 생각들을 담아 놓았다. 얼마전 문득 책을 읽는 다는 것에 대한 의미를 찾다가 이런 생각을 했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자신만이 간직할 수 있는 마음의 이력서를 써내려가는 것이다.” 라고 말이다. 그렇다면 글을 쓴다는 것은 아마도 이러한 자신이 간직하고 있는 마음의 이력서에 몸과 마음으로 체험한 기억들을 더해 드러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책속에서 작가의 경험에서 묻어난 생각을 깊게 하는 말들이 많았다. 작가 자신이 생각한 말들도 있었지만, 때론 드라마를 함께 만들며 인연을 갖게 된 연륜 있는 배우들의 값진 한 마디를 맘속에 담아 놓았다가 옮겨놓기도 했다. 그 중 이 말이 책을 읽는 동안 내내 아른거렸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상처를 받았다는 입장에서 상처를 주었다는 입장으로 가는 것. 상처 준 것을 알았을 때 우리는 비로소 어른이 된다.” 10년전 아니 그 이전의 작가 노희경은 아마도 세상 사람들이 던지는 모든 상처가 자신에게만 쏠려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훗날 돌이켜볼 때 그때 자신이 상처라 생각했던 것들은 남들이 준 것이 아니고 바로 자신이 스스로에게 던졌던 상처라는 것을 깨달은 듯하다. 오히려 그로 말미암아 주변사람들이 상처를 입었을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에서 말하는 사랑의 대상은 바로 자신이었다. 자신을 사랑할 수 없는 자는 그 누구도, 그 어떤 생각도 사랑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남녀가 육체로 주고받는 사랑, 부자와 가난한 자들이 돈으로 사고파는 사랑이 아닌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이 진정한 가족 사랑과 사람들 간의 사랑을 빚어낼 수 있다는 것을 책을 읽으며 느꼈다. 여전히 세상은 나를 포함해 자신을 덜 사랑하고 있는 죄인들로 넘쳐난다. 안에 있는 원인을 밖에서만 찾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진정한 사랑의 의미와 가치에서 점점 더 거리를 키워왔던 것 같다. 이제 자신의 지난 발자취들을 돌이켜 오늘의 자신을 좀 더 사랑할 때 우리는 무죄선고를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해묵은 일기나 노트 안에 담겨 있던 생각과 기억들이 나중에 값 나가는 골통품처럼 자신을 가꾸어 주기도 한다는 생각해 해본다. 비록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기록이 아닌 자신의 마음을 담은 작은 메모를 여기저기에 남겨보는 것 또한 자신의 미래에 대한 사랑일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글 쓰는 것을 직업으로 삼지 못한 지금 이 순간, 이렇게 책을 통한 나의 짧은 과거의 회상과 나를 사랑하고 싶은 마음을 갖게 돼서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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