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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하는 인간의 태도
카를로 로벨리 지음, 김동규 옮김 / 쌤앤파커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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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만난 지인은 ‘과학은 환상적인 것 같다’라고 말했고, 나도 ‘정말 황홀하지 않느냐’며 맞장구를 쳤다. 몇해 전 카를로 로벨리의 <나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을 읽었을 때의 감격을 기억한다. 그후로 다른 책들을 죄다 읽고 주변에 떠드느라 한동안 나는 카를로 로벨리의 전도사였다.

그의 책을 읽다보면 내가 믿었던 세계와 현대과학으로 밝혀낸 세계 사이의 간극에 눈 앞이 아득해진다. 점에서 출발해 가늠할 수 없이 팽창하는 우주, 고무줄처럼 휘어지는 시간, 보는 것만으로 모습을 바꾸는 불확실성의 세계라니. 단단한 아스팔트 위를 걸어 철판을 뒤집어 쓴 버스를 타고 시멘트로 고정된 빌딩 사이를 걸으며 체감하기는 어렵지만. 과학은 나의 직관과 세계에 대한 믿음을 배반하는 한 편의 이야기가 아닐까. 신화와 성서 속 이야기와는 다르게 진위 여부를 끊임없이 도전받는 이야기. 폭력이나 전쟁 대신 실험을 통해 증명하고, 실패하면 왕좌를 깨끗이 내려놓는 허약한(?) 이야기이다.

<과학하는 인간의 태도>는 첫 번째 과학자 ‘아낙시만드로스’로부터 시작된 과학의 역사를 통해 과학의 본질을 이야기한다. 내가 이해한대로 말하자면, 과학은 만고불변의 진리나 부동의 수식이 아니라 오히려 모든 의심을 허용하는 철학이고 삶의 태도에 가깝다. 신앙은 의심없는 믿음을 통해 완성되고, 과학은 의심을 통해 성장한다. 단단한 땅 위에 서 있다고 믿었던 인류는 ‘아낙시만드로스’에 의해 우주 공간에 떠있음을 알았다. 발 밑에 또다른 하늘이 있다니, 그 시절 사람들은 코웃음을 쳤겠지. 인간이 우주의 중심이었던 적도 없다. 가늠할 수 없는 우주, 티끌보다 작은 별, 그 주위를 도는 8개의 행성 중 하나, 지구에서 찰나의 시간을 산다. 심지어 그 찰나의 시간조차 희미하게 보는 인간의 주관적인 시선에 불과하다. 과학은 늘 믿음을 깨뜨리고 그 너머로 나아가는 현재진행형의 상태 자체에 가깝다.

독실했던 어머니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이 얼마나 혼란하고 불안정한지 말하고는 했다. 오랫동안 나도 동의해왔지만, 이제는 불경스럽게도 이 불확실한 세계를 사랑한다. 때로는 사칙연산처럼 쉽고 예측가능한 세계를 갈망하지만, 끊임없이 움직이는 우주 속에서 흔들리며 사는 삶을 사랑한다. 내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 우주의 일부라는 사실이 오히려 외롭지 않다.

관심을 보였던 지인에게 카를로 로벨리에 대한 나의 사랑을 지나치다싶게 표현했고, 몇 권의 책도 소개했다. <과학하는 인간의 태도>는 그 세계로 들어가는 최고의 입문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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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일 없는 밤
전지나 지음 / 거의동그라미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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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이 모두 새벽예배 가셔서 집을 비운 동안 깨서 서럽게 울었던 기억이 나요. 그래도 아무 일 없이 잘 자라왔다는 생각에 위로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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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마
전지나 지음 / 두두플래닛케이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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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책 아래쪽에 그림을 그리고 페이지를 다라락- 넘기면 졸라맨이 달리기하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마냥 재밌기만 했는데, 눈물 흘리던 소녀가 고래 등을 타고 환하게 웃는 모습으로 눈 앞에 다가올 때에는 가슴 벅찬 무언가가 느껴집니다.
위로가 필요한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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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홀
카를로 로벨리 지음, 김정훈 옮김, 이중원 감수 / 쌤앤파커스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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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홀이라는 매혹적인 소재에도 불구하고 <나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 비해 다소 싱겁게 느껴진다. 블랙홀을 통과해서 화이트홀을 통해 다른 차원이나 시간대로 이동할 수 있을까? 이런 판타지적이지만 흥미로운 의문은 허무하게 무너진다. 하지만 언제나 카를로 로벨리의 문장은 깊은 감흥을 불러 일으킨다. 양자와 우주, 이 광활한 공간의 중력과 시간, 블랙홀에 더해진 화이트홀이라는 미지의 세계에 취해 발이 5센치 쯤 공중에 떠올랐다가 금새 착지했다.

우주의 신비에 한발짝 다가서도, 시간의 개념이 뒤바뀐다 해도 내가 딛고 선 땅은 굳건하다. 아쉽겠지만 지금의 불행을 되돌릴 수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은 헛되다. 그래도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의 배열 속에서 내 몸이 차지한 공간, 이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 숨을 함께 숨을 내쉬는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또다시 아득해지고 만다. 여전히 땅은 굳건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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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과 나 - 배명훈 연작소설집
배명훈 지음 / 래빗홀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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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현 가능성이 높거나, 여전히 가능성이 제로는 아닌 미래, 혹은 외계'를 다룬 SF라는 측면에서 '화성과 나'를 좋아한다. 종종 왜 판타지가 아닌지 의문이 드는 SF 작품이 있다. 소재와 시대, 공간을 제외하면 판타지와 SF가 크게 다르지 않다. 실험실에서 우연히 투명인간이 되는 것과 망토를 둘러입고 투명해진 해리포터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을까. 하지만 나는 겨우 한 명의 독자에 불과해서 SF소설을 정의내리기는 어렵다. 다만 배명훈 작가의 소설을 읽다보면 SF소설은 이런 것이구나, 라고 생각하게 된다. 배명훈 작가의 작품 중 좋아하는 소설을 쉽게 꼽을 수 있지만, 앞서 말한 이유로 '화성과 나'는 더욱 각별하다.

화성 이주, 테라포밍의 가능성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지만, 여전히 일론 머스크는 우주선을 발사하고 있다. 뭐, 화성이 목성보다는 더 가능성이 있지 않나. 지구 생태, 환경 문제와 결부시키면 또 가타 부타 말할 거리는 많겠지만 일단은 접어두자. 그냥 인간이 발을 딛고 사는 지구에서 한 발짝보다 조금 더 떼서 화성까지 생각의 반경을 넓혀보자. 그러면 기존의 시간 관념이 바뀌고, 국가를 구분짓는 경계가 바뀐다. 물론, 실현되지 않은 미래의 세계관이 지금 유효하다고 주장할 수는 없지만, SF소설은 미래에서 도리어 지금 세계에 의문을 던지기도 한다. 연작 소설이라서 가볍게 읽히지만, 구성은 탄탄하고 무겁다. 법 체계와 식문화, 소통의 문제, 지구와 정치적 관계 등 큼지막한 주제들을 가볍게 다룬다. 배명훈 작가의 다른 작품처럼 큰소리로 웃음을 터뜨릴테지만, 결연한 의지의 인물들을 맘속 깊이 응원하게 될 것이다.

테드 창을 좋아하지만 겨우 단행본이 2권 뿐이다. 그렉 이건의 소설은 국내에 겨우 3권이 번역됐을 뿐이다. 하지만 괜찮다. 한국에는 배명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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