엿보는 자들의 밤
빅터 라발 지음, 배지은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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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분의 일 쯤 읽었을 때, 서평에서 이 소설의 어떤 작은 부분도 언급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전혀 짐작 못하게 아무 말도 안해줘야지. 옛날엔 소설이라는 것이 아주 하찮은 취급을 받았다고 한다. 밤이 되면 사람들이 촛불 아래 모여서 읽는 것이었고, 순전히 재미를 위한 것이었다고. 그러니까 사실 소설은 그냥 엄청나게 재밌는 것이 아닐까. 요즘은 넷플릭스로 밤을 지새우지만 그때는 소설책을 읽으면서 눈이 벌개졌겠지. 이런 면에서 '엿보는 자들의 밤'은 아주, 매우, 엄청 소설스럽다. 그러니까 그냥, 아주 재밌다. 전반부만큼은 지난 2년 동안 읽었던 어떤 책보다 잘 읽혔다.

하지만 나는 좋아하는 것에는 아주 호들갑을 떨고, 재밌는 것은 상세하게 떠벌리고 싶어하는 사람이라서 뭐라도 말하고 싶은데... 지하철이 등장하면 이를 악물거나 손을 꽉 쥐게 될것이다. 나는 솔직히 식은 땀을 흘렸는데, 그건 그냥 직장상사가 자리를 비운 시간에 몰래 책을 펼쳤기 때문일 수 있다. 아무튼 혹시 회사 출입문이 열리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면서도 책을 손에서 놓지 못했고, 이야기의 긴장감을 4DX로 체험했다. 그 짧은 에피소드가 끝나면 곧 평화가 찾아오지만, 결코 속지 않았다. 여기가 겨우 오분의 일이 지난 시점이고, 서평에 대해 생각한 시점이다.

아마 시간이 넉넉하다면 600페이지를 단숨에 읽을 수 있다. 출퇴근하는 버스에서 잠깐 읽고 끊어지는 순간들이 얼마나 아쉬웠는지 모른다. 아무튼 이야기는 출퇴근도 없이 전속력으로 전진한다. 고통의 순간에는 희망이 보이는 것 같고, 평화가 감돌 때에는 정체모를 긴장감이 선명하다. 아, 이런 게 소설을 읽는 맛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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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누군가는 더 검은 밤을 원한다
우다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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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 형언할 수 없을만큼 좋았다. 자아와 인과와 현재와 세계의 경계가 모두 흐릿해졌지만, 돌연 현실로 돌아와 내 삶이 더 없이 소중하다고 생각했다. 내 안에 신이 깃든줄 알았지만 또 먼지 같기도 했다. 어떤 소설 속 이야기는 텍스트를 허물고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다. 우다영을 읽어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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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저녁의 연인들
서윤빈 지음 / 래빗홀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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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SF작가 중에 가장 좋아하는 작가를 꼽으라면 김보영, 배명훈, 우다영 작가를 꼽는데, 이제 서윤빈 작가도 떠올리게 됐다. 파도가 닿는 미래, 날개절제술, 영원한 저녁의 연인들까지. 전부 좋았다. 이런 하드sf작가가 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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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저녁의 연인들
서윤빈 지음 / 래빗홀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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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저녁의 연인들> 서윤빈

그렉 이건의 ‘쿼런틴’을 떠올렸다. 보르헤스의 ‘기억의 천재 푸네스’나 영화 ‘이터널 선샤인’을 떠올리기도 했다. 깊이 연관 지을만큼 비슷하진 않다. 그냥 좋아하는 것을 떠올리며 이 소설을 읽었다는 말이다. 아, 떠올린 것이 하나 더 있다. 산책. 얼마 전에 누나(파트너)와 손을 꼭 잡고 길거리를 가득 메운 인파를 헤치며 걸었다. 한참을 걸어서 도착한 중식당에는 짜장면이 없어서 가지튀김을 먹었고, 돌아오는 길에는 조금 지쳤던 것 같은데 그래도 우리는 몇 번을 크게 웃었다.

어떤 SF는 잘 구축된 세계관 자체가 소설의 전부인 것처럼 느껴진다. 테드 창이나 그렉 이건의 작품처럼 대체로 하드SF라고 부르는 장르들이 그렇다. 그리고 영원한 저녁의 연인들이 그렇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버디, 모드, 명상, 장기 임플란트 등의 소재는 새롭지 않지만 그 기술의 등장 배경이 매우 설득력 있다. 각각의 소재를 연결시킨 맥락 자체도 개연성이 높다. 초지능, 생명연장에 대한 설득력은 기억과 죽음, 존재에 대한 철학적 고민으로 이어진다. 그러니까 SF팬이 SF 소설에서 기대할 수 있는 것은 다 들어있다.

하지만 진짜 재밌는 건 이런거다. 그러니까 잘 구축된 미래 세계가 펼쳐져 있다면, 주인공에게는 무슨 흥미진진한 일이 벌어질까? 작가는 주인공에게 어떤 시련을 줄까? 범죄, 살인, 초국가적 음모 같은 거대한 사건들이 일어나지 않겠는가, 하고 기대가 점점 커지는 순간… 그냥 걷는다. 어디로 가는지 모를 산책을 넋을 놓고 따라가게 된다. 두 주인공이 함께 걷는 풍경이 머릿속에 선명하다. 물론, 산책이 끝나면 존재통이 찾아오겠지. 그래도 다시 걷는다. 뛰기도 한다. 첨단의 기술과 초지능 사회 속에서 주인공이 하는 일이 걷는 것이라니. 또 존재통이 몰려올 것이고 그러면 페이지를 다시 앞으로 넘긴다. 이 아름다운 산책이 자꾸 머릿속을 맴돌아서 다시 읽고, 또 읽었다.

전에 샘플북을 읽고 서윤빈 작가의 소설에는 전혀 SF스럽지 않은 것이 천연덕스럽게 놓여있다고 생각했다. 해녀나 알파카 같은것. 그리고 산책 같은 것. 상상할 수 있거나 어쩌면 도달가능한 미래, 그것이 어떤 세계라도 우리는 산책을 하겠지 아마. 산책을 하고 사랑도 하겠지.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책을 읽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서윤빈 #래빗홀 #영원한저녁의연인들 #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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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절제술 트리플 21
서윤빈 지음 / 자음과모음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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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SF소설 작가 중 김보영, 배명훈 작가님을 가장 좋아하는데, 날개절제술을 읽고나서 서윤빈 작가님 역시 같은 반열에 올려두었다. 진짜 한국의, 과학 소설이다. 최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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