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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의 아이들 ㅣ 북멘토 가치동화 17
이병승 지음, 강창권 그림 / 북멘토(도서출판) / 2015년 7월
평점 :
골목의 아이들(이병승 글, 강창권 그림, 북멘토 펴냄)
"황혼에 서쪽 하늘이 붉게 물들고 멀리 교회의 종탑에서 종소리가 댕그렁 댕그렁 날 때면 엄마들이 아이들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밥 먹어라!'"
엄마가 밥 먹으러 오라고 부를 때까지...그때까지 늘 골목에서 놀았던 시절!
해질녂까지 동네 목 좋은 골목은 오징어, 사방치기, 비석치기, 구슬치기로 시끄러웠고, 구슬 몇개와 딱지 몇장에 목숨을 걸던 아이들 소리, 고무줄 놀이하며 부르던 노래 구절이 흥겹게 흘러나던 소리...바로 골목의 소리다.
이 책의 작가는 1970년대 서울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자신의 이야기를 쓰면서 행복했다고 고백한다.
1980년대 시골에서 어린시절을 보낸 나 또한 책을 읽는 동안 행복했다. 70년대 서울의 골목에서 했던 놀이들을 80년대 경상도 산골 마을에서도 똑같이 했다게 참 신기했다. 그 시절 아이들의 놀이 문화를 소재로 하여 풀어나가는 이야기의 구성과 메시지는 우리집 두 남매보다도 어른인 나에게 따뜻한 추억과 깊은 교훈을 더 주는 듯 하였다.
골목의 아이들... 주인공 건우와 그 친구들에게 골목은 유일한 놀이터요, 삶이다.
우리에겐 좋은 놀이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구슬치기, 팽이치기, 고무줄 놀이, 인형 놀이, 딱지치기, 말뚝박기, 오징어...
지역적으로 명칭이 조금씩 다르기도 하고, 규칙이 조금씩 다르기도 하지만 70~80년대 아이들의 대명사인 갖가지 놀이들이다. 오래전 많이 방영되었던 70~8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TV 드라마를 다시 보는 느낌이었다. 반면 '골목'과 '놀이'를 잃어버린 요즘의 아이들은 나와 같은 어른이 되었을 적에 남아 있을 따뜻한 추억이 그만큼 적겠구나 하는 안타까움이 있기도 하였다.
이야기는 어느 정도의 질서와 규칙, 평화가 있던 골목의 아이들에게 석구라는 아이의 등장과 함께 펼쳐지는 사건으로 시작 된다.
아이들은 유리구슬, 사기구슬만 가지고 놀았는데 어느날 갑자기 혜성처럼 나타난 석구의 쇠구슬은 골목의 구슬을 모조리 휩쓸게 된다. 주인공 건우도 가지고 있던 구슬을 모두 잃고마는데... 쇠구슬을 어떻게라도 다시 찾아서 석구에게 잃은 구슬뿐 아니라 자존심까지 찾고 싶어서 갖가지 방법을 동원해 보지만 위기와 실패에 자꾸 부딪히게 된다. 그 과정에서 만나는 건우의 또다른 친구들인 상봉이, 정옥이, 금천이, 윤수...그리고 건우의 형과 누나, 연탄배달을 하는 아빠와 엄마, 교수님, 고물장수 아저씨, 똥개 메리...등장인물 하나하나를 통해서 작가가 말하고 싶어하는 메시지는 참 많았던 것 같다.
친구들에게 거짓말을 일삼고 비겁한 방법으로 골목의 대장 자리를 차지하려고 했던 석구에 맞선 건우는 교수님과 형의 충고를 가슴에 새기고 자신만큼은 정정당당한 방법으로 승부수를 걸어야겠다고 다짐한다. 그리고 그런 건우의 뜻에 힘을 실어준 친구들의 도움과 교수님과 가족들의 응원에 힘입어 말뚝박기 승부에서 멋지게 석구팀을 이긴다.
동네 모든 아이들을 무시하고 잘난체 하는 석구라는 아이를 어떻게든 이겨보려는 주인공 건우와 그 친구들의 순수한 노력을 보면서 아이들의 동심이 잔잔한 감동을 주는 이야기인 동시에 옛날이나 지금이나 힘과 돈, 권력을 가진 자들의 잘못된 행보에 대해서 비판하는 배경이 깔려 있는 동화이다.
초등학교 고학년을 대상으로 하는 동화이지만 어린이들에게 시대적 배경이 다소 낯설고 이해하기 힘든 용어들도 자주 등장한다. 그래서 작가는 책 중간중간 자세한 설명과 더불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정신까지도 함께 각주를 달아 이해를 돕는다. 어린이들이 동화로만 읽는 것이 아니라 70~80년대 역사박물관에 다녀온 느낌이 날 수 있는 책이 될 것이다. 더불어 책 중간 중간에는 약간의 흑백톤의 칼라를 입은 그림들이 그 시절의 문화를 간접적으로 보고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고 책 마지막에는 실제 놀이 방법에 대한 자세한 방법도 실어주었다.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옛 놀이들을 하던 우리집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었다.
어린이 독자들이 '골목의 아이들'을 읽으면서 아빠엄마가 자랐던 골목 속으로 시간여행을 떠나 보고, 우리가 더 소중하게 여겨야할 가치인 우정, 배려, 함께 사는 것, 함께 즐거워야하는 것...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수 있으면 좋겠다.
기억에 남는 대사들을 남겨보면...
"너 멋졌어. 누난 매일 작은 매표소 상자 안에서 갇혀서 한 발자국도 못 움직여. 마음만 날아다니지. 근데 넌 가고 싶은 곳으로 갔잖아."(건우 누나)
"전쟁 무기에는 총도 있고 탱크도 있고 전투기도 있지. 이쪽이 소총을 쓸 때 저쪽은 탱크를 쓸 수도 있고. 그렇지만 구슬치기에서 다들 유리구슬을 쓰는데 혼자만 쇠구슬을 써도 될까? 구슬치기는 전쟁이 아니라 놀이잖아? 모두가 즐거워야 할......" (교수님)
"몸이 부서져도 여기! 정신이 살아 있으면 진 게 아냐. 말타기에서 져도 돼, 넌 네 욕심 때문이 아니라 골목의 평화를 우해 싸우기로 한 거니까. 그런 마음이라면 승부를 내기로 한 순간 넌 벌써 이긴 거나 마찬가지야." (건우 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