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속 배경은 NC(nation's children) 센터이다. 부모가 없는 아이들을 국가가 책임 진다. "이제 아이는 국가에서 책임지고 키웁니다." 일명 '국가의 아이들'이다. 부모를 선택해서 사회로 나가기 전까지 NC의 아이들에게는 이름이 없다. 그냥 태어난 달에 따라 제누, 준, 주니, 노아, 아키... 등으로 불린다. 부모에게 입양되는 즉시 아이들의 IC카드에서는 NC출신이라는 기록이 완전히 사라진다. 반면 열아홉 살까지도 부모를 선택하지 않으면 NC 출신이라는 꼬리표를 가지고 살아야한다.
갓 태어난 아기들과 미취학 아동을 관리하는 퍼스트 센터, 초등학교 입학 후 열두 살까지 교육하는 세컨드 센터, 열세 살부터 열아홉 살까지 부모 면접을 진행할 수 있는 라스트 센터로 이루어져있다. 손목에 찬 멀티워치, 헬퍼라는 로봇이 청소하고 음료를 서빙해주는 모습, 홀로그램, 아이들을 관리하는 가디 등 NC의 풍경은 낯설지만 왠지 미래에 실제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실은 보통 갓난 아이일 때 입양을 선호한다면 소설은 열세 살부터 부모를 선택할수 있다. 거기다가 부모가 아이를 선택하는 게 아니라 NC센터 아이들이 부모를 선택하는 시스템이다. 홀로그램으로 먼저 부모면접 신청자들을 살펴본 아이는1차, 2차, 3차 면접 후 합숙과 최종 부모 선택까지 모두 100% 아이에게 선택권을 준다.
주인공 제누 301은 열일곱 살이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이미 그보다 빠른 나이에 부모를 선택해서 NC를 나가지만 제누 301은 좀 특별하고 영리한 아이다. 부모 선택이 아주 까다롭다. 소설 제목이 왜 '페인트'일까 궁금했는데 부모 면접(parent's interview)을 영어 발음이 비슷한 '페인트'라는 은어로 부른 것이다. 미래사회에도 아이들이 '은어'를 사랑하는 일은 변치않으려나 보다. 그런데 소설 말미즈음 '페인트'에 담긴 진짜 의미를 다시 생각해볼 수 있다.
페인트, 즉 부모 면접, 생소한 시스템인데 이야기를 읽다보면 일리가 있다.
부모를 선택할 수 있는 아이들과
부모를 선택할 수 없는 아이들...
부모든 아이든 각자의 입장에서 여러 생각들을 해볼 수 있겠다 싶다.
소설의 배경은 '미래' 설정이지만 작가가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건 미래가 아니라 지금 상처와 아픔 중에 살아가고 있는 부모 혹은 자녀들의 '현재'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