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인트 (양장)
이희영 지음 / 창비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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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를 선택할 수 있다면

누구를 고르시겠습니까?"

 

 

 

 

 

소설 속 배경은 NC(nation's children) 센터이다. 부모가 없는 아이들을 국가가 책임 진다. "이제 아이는 국가에서 책임지고 키웁니다." 일명 '국가의 아이들'이다. 부모를 선택해서 사회로 나가기 전까지 NC의 아이들에게는 이름이 없다. 그냥 태어난 달에 따라 제누, 준, 주니, 노아, 아키... 등으로 불린다. 부모에게 입양되는 즉시 아이들의 IC카드에서는 NC출신이라는 기록이 완전히 사라진다. 반면 열아홉 살까지도 부모를 선택하지 않으면 NC 출신이라는 꼬리표를 가지고 살아야한다.

갓 태어난 아기들과 미취학 아동을 관리하는 퍼스트 센터, 초등학교 입학 후 열두 살까지 교육하는 세컨드 센터, 열세 살부터 열아홉 살까지 부모 면접을 진행할 수 있는 라스트 센터로 이루어져있다. 손목에 찬 멀티워치, 헬퍼라는 로봇이 청소하고 음료를 서빙해주는 모습, 홀로그램, 아이들을 관리하는 가디 등 NC의 풍경은 낯설지만 왠지 미래에 실제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실은 보통 갓난 아이일 때 입양을 선호한다면 소설은 열세 살부터 부모를 선택할수 있다. 거기다가 부모가 아이를 선택하는 게 아니라 NC센터 아이들이 부모를 선택하는 시스템이다. 홀로그램으로 먼저 부모면접 신청자들을 살펴본 아이는1차, 2차, 3차 면접 후 합숙과 최종 부모 선택까지 모두 100% 아이에게 선택권을 준다.

주인공 제누 301은 열일곱 살이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이미 그보다 빠른 나이에 부모를 선택해서 NC를 나가지만 제누 301은 좀 특별하고 영리한 아이다. 부모 선택이 아주 까다롭다. 소설 제목이 왜 '페인트'일까 궁금했는데 부모 면접(parent's interview)을 영어 발음이 비슷한 '페인트'라는 은어로 부른 것이다. 미래사회에도 아이들이 '은어'를 사랑하는 일은 변치않으려나 보다. 그런데 소설 말미즈음 '페인트'에 담긴 진짜 의미를 다시 생각해볼 수 있다.

페인트, 즉 부모 면접, 생소한 시스템인데 이야기를 읽다보면 일리가 있다.

부모를 선택할 수 있는 아이들과

부모를 선택할 수 없는 아이들...

부모든 아이든 각자의 입장에서 여러 생각들을 해볼 수 있겠다 싶다.

소설의 배경은 '미래' 설정이지만 작가가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건 미래가 아니라 지금 상처와 아픔 중에 살아가고 있는 부모 혹은 자녀들의 '현재'가 아닐까!

 

내가 누구에게서 비롯되었는지 모른다는 것이 그렇게 큰 문제일까? 나는 그냥 나다. 물론 나를 태어나게 한 생물학적 부모는 존재할테지만, 내가 그들을 모른다고 해서, 그들에게서 키워지지 않았다 해서 불완전한 인간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나는 누구보다 나 자신을 잘 알고 있으니까. 내가 어떤 사람인지 정확히 알고 있다는 사실이, 나의 부모가 누구인지보다 훨씬 가치 있는 일 아닐까?

49쪽

가디 최와 면담할 때 했던

제누의 말이다.

 

"이게 다 너를 위해서야, 하면서 사랑을 가장한 억압과 통제 같은 거요?"

"저보고 어떤 부모를 선탹하겠냐, 묻는다면 저는 자기 감정에 솔직한 부모라고 답하겠어요. 그럴싸하게 포장하는 사람은 싫어요..."

84쪽

그리고 센터장 박에게 했던 말,

"저는 쫙 빼입은 정장에 준비된 인사말을 외듯미 내뱉는 사람들을 원하는 게 아니에요. 제가 말할 때 아, 그래? 그럼 다른 걸 해 볼까? 말할 수 있는 부모를 원한다고요."

103쪽

"어쩌면 이곳은 아주 거대한 미래인지도 모른다. 내가 선택한 색칠로 칠하는 미래. 엄마와 아빠를 미리 만나볼 수 있는 곳. 설령 면접이 성사되지 않아도 상관없다. 페인트를 하는 순간마다 우리는 미래에 갔다 오는 거니까."

222쪽

 

부모가 뱃속의 아이를 선택해서 낳을 수 없듯, 아이가 부모를 선택하는 일도 결국 완전한 일이 될 수 없고, 서로가 준비가 완벽히 안 된 상태에서 누군가는 부모가 되고, 누군가는 자녀가 된다는 점에서 어쩌면 우리 모두에게 '위로'가 되는 책이기도 하다.

 

똑부러지는 아이로, 생각이 깊은 아이로, 어른들과 친구와 동생을 살피는 속마음이 따뜻한 아이로 자란 제누 301, 참 매력있는 아이다. 제누가 바랬던 건 상처를 감추고 훌륭한 모습만 보여주려는 부모가 아닌 '친구'같은 부모였다. 나도 우리 아이들에게 부모이지만 '친구'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게 해준 소설이었다. 재미있고 신선한 배경 설정으로 청소년 자녀와 함께 읽어보면 좋을 책으로 추천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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