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내력 호밀밭 소설선 소설의 바다 2
오선영 지음 / 호밀밭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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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이 <모두의 내력>이란 것 외에는 아무것도 모른 채 책 읽기를 시작했다. 한국 작가의 책을, 해외 번역된 소설도 아니고, 베스트셀러도 아닌, 순수 우리나라 작가의 소설에 목말라하던 차였다.

그러던 중 오선영 작가의 <모두의 내력>이란 단편소설 묶음집을 만났다. 총 8개의 단편소설로 구성되어 있어 순서대로 읽을까, 중간중간 끌리는 제목부터 읽을까를 고민하다가, 그냥 처음부터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의 첫 작품인 <해바라기 벽>은 짧지만 엄청 충격을 주는 이야기였다. 첫 작품을 읽고, 작가의 소개를 읽었다. 오선영 작가의 소개 글은 매우 짧다. 81년생, 서울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자랐으며, 첫 작품인 <해바라기 벽>으로 등단했고 수상을 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나니, 왜 이 작품이 제일 첫 작품으로 수록이 되었는지, 그리고 왜 이 단편소설이 상을 받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해바라기 벽>을 읽으며 우리나라 현시점이 이런 상황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니 너무 씁쓸했다. 정말 그런 집이 여전히 존재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집에 화장실이 없어 공중 화장실을 사용해야만 하는 소녀의 사연이 담긴다. 소녀가 처한 어처구니없는 상황, 잠깐 비추어지는 학교의 실태, 파워블로거, 남의 말과 인생을 너무 쉽게 함부로 드는 인터넷 에티켓, 우리나라의 현 상황. 난 특별하게 크게 잘못한 것이 없는데 남의 입에 오르고 내리며, 심지어 욕까지 들어야 하는 상황에 놓일 때 얼마나 황당할까란 생각을 하니 소름마저 끼쳤다. 벗어날 수 없는 굴레, 어린 소녀가 여기서 뭘 더 어쩔 수 있을까. 나 같아도 그 해바라기를 다 없애버리고 싶었을 것 같다. 세상에 분풀이를 하고 싶은 생각들도 꽉 찼을 것 같다.

이어지는 단편 소설 <로드킬> 역시 눈을 뗄 수가 없는 흡수력으로 빠져든다. K가 처한 상황, 인턴으로 생활하며 겪는 고초 등을 적나라하게 짧고 굵게 표현된다. 요즘 젊은 인제들이 일자리 잡는 것이 어렵다고 기사로만 읽는데, 이 소설을 읽으니 한층 피부로 다가왔다.

곧 있으면 업무평간데, 좀만 신경 써. 이번에는 정규직 돼야지." '정규직'이라는 단어를 내뱉으며 대못을 가슴에 내려쳤다. 마무리는 언제나 같았다. 팀장은 자신이 들고 있는 무기의 종류와 용도를 정확히 꿰고 있는 사람이었다. 총알 하나 허투루 쓰는 법이 없었다. 언제든 적진에 나갈 준비가 돼 있는 최정예 군인처럼 매일 훈련을 하고 작전을 짰다. 자비나 양보는 없다. 전장에서는 누구든 적이 될 수 있다. 인턴, 신입사원이라는 이름의 가장 어린 신참병에게도 이는 예외 없이 적용되었다. pg47

사실 <로드킬>에서는 인턴이 살아가는 괴로운 직장생활, 휴가 계획을 세우며 스스로를 달래는 K를 생각하며, 사실 인턴뿐 아니라 현재 직장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정신적으로 궁핍한 생활을 하며 전장에서 백조처럼 싸우고 있다고 생각한다. <로드킬>을 읽으며, <미생>을 떠올리기도 했다. K는 '글로벌 네트워크 매니지먼트'를 나온 것이 K에게 행운이었을까? 불운이었을까?

<모두의 내력>은 다른 작품들보다 다소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왜 제목이 모두의 내력이었을까?를 세 번째 단편소설을 읽고 한참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력이란 단어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나 싶어 사전을 찾아보았다.

내력(來歷) : 1) 지금까지 지내온 경로나 경력. 2) 일정한 과정을 거치면서 이루어진 까닭.
내력(耐力) : 견디어 내는 힘

국어사전을 찾고 보니 더 미궁 속에 빠진듯하다. 성균 선배, 민주, 정교수님, 나와 나의 엄마, 나의 아버지와 아버지의 교통사고 발생 시 옆좌석에 탄 문방구 아줌마, 그들의 심리묘사를 보며 어떤 의미에서 단편소설 제목이 <모두의 내력>이며, 이 책의 중심임을 암시하듯 책 제목으로 꼽은 것일까? 어머니가 아버지의 바람피우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며 부인하는 것처럼, 혹 어머니의 믿고 싶은 것만 믿고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집안 내력처럼 등장인물인 '나' 역시 나 혼자 성균 선배와의 미래를 생각하고 배우자로 생각하고 있다가, 성균 선배와 민주가 썸다는 것을 목격하고 그저 현실을 회피하려고 행동하는 것일까. <모두의 내력>은 내가 충분히 이해하고 설득하기엔 어려웠다.

오선영 작가의 <모두의 내력>에 수록된 단편소설들은 그리 밝지는 않지만 소설을 읽으며 뭔가 우리가 사는 현실세계에 받는 고통과 슬픔을 막연히 위로받는 기분도 들었다. 오선영 작가는 아직 크게 알려진 대작가는 아닐지라도 이 작품들을 통해 머릿속에 꼭 남을 작가임은 틀림없다. 오랜만에 한국작가가 집필한 소설을 읽으니 더 흐뭇하고 기분이 좋다. 필력도, 가독성도, 흡수력도 매우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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