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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비 - 2017년 제13회 세계문학상 우수상 수상작
정미경 지음 / 나무옆의자 / 2017년 9월
평점 :
제13회 세계문학상 우수상인 <큰비>를 읽으며 역시 문학상 수상작 답다는 생각을 하였다.
사실 이 책의 초입부를 읽으며 많이 어려움을 느꼈다. 모르는 한글 용어, 어휘들로 인해 책을 읽는데 가속도가 떨어지기도 했고, 생소한 내용이라 그런지 이해도도 떨어졌던 것 같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모든 단어단어의 뜻을 속속들이 알지는 못하지만 작품성이 있는 소설을 내가 읽고 있구나란 생각을 계속하게 된다. 무속인의 삶에 대해 이렇게 묘사한 책이 또 있으랴. 게다가 우리나라에만 있을법한 무속인이지 않는가.
이 책은 무속인들의 이야기다. 조선 숙종 시절 도성에 큰비를 내려 기존의 모든 것을 쓸어버리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준다는 계시를 받아, 원향을 중점으로 경기도 양주에서 한양으로 가는 여정을 그린다. 큰비를 통해 새로운 세상을 꿈꾼다는 설정 자체가 소설을 끝까지 안 읽어도 어떤 결과를 가져다줄지 짐작을 하며 읽는다. 스토리의 전개에 초점을 맞추었다기보단 등장인물 하나하나의 심리적 묘사, 사연 소개 등에 더 초점을 두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익숙하지 않은 분야로 시작되어 이야기가 어디로 흐르려나 궁금한 마음으로 책을 읽어나갔다. 무당, 신내림, 빛줄기 등 신비하고 신화 같은 이야기들이 등장한다. 귀신 얘기를 할 때면 살짝 오싹하기도 하지만 무섭게 느껴지지는 않는 이야기이다. 뭔가 큰일이 일어날 것 같은데 무신년이 언제인지 모른 체 조선의 어느 왕 이야기인가... 하며 계속 궁금해하다 드디어 장옥정의 이름이 등장하며 시대적 배경은 책의 1/4을 읽을 때쯤 궁금증이 풀렸다. 이렇듯 책을 읽으며 뭔가 깔끔하게 배경이나 상황을 알고 시작하지 않아 조금 답답함을 느끼기도 했지만, 전반적으로 새로운 세계에 대해 간접경험을 하는 듯한 기분으로 읽었다.
왜 그들은 새로운 세상을 꿈꾸었는가? 미륵의 세상이란 무엇인가? 칼의 힘을 빌려 역모를 성사시키는 것이 아닌 영의 힘을 빌려 역모를 꿈꾸는 원향과 그를 따르는 많은 이들은 어떤 꿈이 있었던 것일까? 그리고 책 속이 아닌 현실에서 실제 무속인들이 진정 존재하는가에 대해 궁금하기도 하다.
여환이 처음 원향을 보았을 때, 그 얼굴에서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사람의 얼굴이었으나 어떤 사람인지를 가늠할 수가 없었다. 여인의 얼굴이었으나 어여쁘고 추함을 느낄 수 없었다. 있으되 텅 비어 있는 얼굴, 존재하되 이곳에 없는 얼굴, 그것이 원향이었다. 원향은 아무도 아니었다. 아무도 아니기에 누구도 되었다. 텅 빈 얼굴로 누구라도 불러들이고 붙들었다. 여환은 홀린 듯 원향의 얼굴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천불산 천 개의 미륵을 담고 있구나, 바로 저이로다. Pg39